세월은 꿈처럼, 또 악몽처럼 흐른다
오랜 시간 동안 인생을 살아낸 할머니는 아름답다. 귀엽다. <사는 게 뭐라고>의 사노 요코 할머니는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며 가릴 것도 없이 솔직하다. 매력적인 할머니다. 게다가 명언을 쏟아낸다. 이게 바로 연륜에서 나오는 바이브일까. 나는 이 짧은 에세이집만 읽고도 그녀에게 흠뻑 빠져버렸다. (마치 그녀가 순식간에 욘사마와 이병헌과 류시원에게 빠진 것처럼)
생각해보면 요 몇 년 사이 베스트셀러 목록에서 '할머니'에 대한 책을 많이 발견했던 듯하다. 왠지 모르게 이끌려 몇 권 사 본 기억도 난다. <이상하고 자유로운 할머니가 되고 싶어>, <카페에서 공부하는 할머니>, <나의 할머니에게> 모두 비슷한 이유로 읽어본 책들이다. 요즈음의 우리는 왜 이다지도 할머니에게 끌리는 것일까. 수명은 점점 늘어가는데 정신 연령은 역사상 어느 세대보다도 젊기 때문일까. 멋지고 당당하고 명랑하게 나이들고자 하는 욕망이 일견 반영된 까닭일 것이다.
이제서야 사노 요코 할머니를 알게 되어 안타까운 마음이다. 그래도 돌아가시기 전까지 왕성하게 에세이를 써내셨으니, 아직도 책을 통해 그녀를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음에 감사하다. 사노 요코는 그림책 작가이자 수필가였으며 2006년에 유방암을 진단받고 2010년에 72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사는 게 뭐라고>는 그 시기 언저리의 에세이들을 담고 있다. 첫 장에서의 사노 요코는 아마 우리 엄마 뻘 쯤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사노씨 역시 할머니가 아닌 것 같은데, 그녀는 자꾸 본인이 치매에 걸렸다고 생각하며 '동지 할머니' 관찰에 열중한다.
"빵이 다 떨어져서 커피숍에 아침을 먹으러 갔다. 걸어서 2분만에 도착했다. 돈만 내면 아침을 먹을 수 있다니 도시는 굉장하다. 셀프서비스용 쟁반을 들고 막다른 곳까지 슬슬 걸어갔다. 작은 테이블 딱 한 자리가 비었고, 벽을 따라 테이블이 6개 정도 늘어서 있었다. 담배에 불을 붙인 다음 벽을 등지고 앉은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전부 여자였다. 전부 할머니였다. 그 중 넷은 담배를 뻑뻑 피우고 있었다."
프랑스 파리의 노파를 연상케하는 2003년 일본의 할머니들. 혼자지만 꽤 멋지다. 지금의 대한민국에도 이런 할머니들은 없는데 말이다. 대신 우리 할머니들은 다른 의미로 쾌활하다. 산스장에서 운동하고, 썬캡을 쓰고 서둘러 걷고, 정자 아래 옹기종기 모여앉아 수다를 떤다. 내가 할머니가 될 즈음에 동년배 할머니들은 어떤 모습으로 시간을 보낼까. 혹 가정용 로봇을 산책시키고 있는 건 아니겠지.
책을 읽는 동안 작가가 꽤 많이 지면을 할애한 부분은 '음식'이었다. 마치 영화 <리틀 포레스트>를 보는 것처럼 재료를 손질하고 음식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정성스레 담았다. 잘 모르는 일본 음식들이었지만 식욕이 돌고 군침이 나올 만큼 생생했다. 음식은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생명과 삶으로 연결되기에, 그녀가 얼마나 꾸준하고 성실히 삶을 살아내고 있는 지 엿볼 수 있었다.
"꽁치를 어떻게 요리할지 고민하다가 전부 토막 친 다음 냄비에 다시마를 깔고 그 위에 올렸다. 그러고는 마늘 한 통을 모조리 까 넣고, 간장과 맛술을 같은 분량으로 부어 약한 불로 조렸다. 어떤 맛이 날지 모르겠다.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뚜껑을 열어 보니 진한 갈색으로 변해 있었다."
그녀는 '은색으로 빛나는 꽁치 배처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하고 생각했다. 도미 영양밥과 꽁치 조림을 차려놓고 소파에 앉아 유일한 가족인 텔레비전과 함께 한다. 지금의 나의 생활과 별반 다르지 않다. 아니, 사실 다르다. 시간을 들여 신중하게 장을 보고 본인을 위한 요리를 한다는 점이 다르다. 이런 점에서 사노씨를 본받고 싶다고 생각했다. 한 끼를 먹더라도 나를 위한 정성스런 식탁을 차려 대접해주고 싶다는 생각. 올 가을부터는 조금이라도 요리를 해봐야할까.
유방암에 걸려 수술을 하고 입원해 있는 차에 그녀는 갑작스레 한류에 빠져버린다. 병문안 온 서른여섯살 남자가 가져온 <겨울연가> 비디오 전편 때문이었다. 다시금 생의 즐거움을 찾은 사노씨는 밥 먹는 시간도 아껴 한국 드라마를 본다. <가을동화>도 보고 <호텔리어>도 본다. <신귀공자도>도 <올인>도 보며 욘사마 뿐 아니라 원빈, 이병헌, 김승우, 최민수에게도 빠져버린다. 계속 한 방향으로 누워 오랫동안 드라마를 본 덕택으로 한쪽 턱도 돌아가버린다. 그러나 뭐 어떠한가. 그녀의 자조적인 말대로 예순여덟의 할머니는 한가하고 찾는 이가 아무도 없으며, 무얼 하든 말든 관심을 두는 사람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보시라. '살날이 얼마 없으니 어린아이처럼 살고 싶다'는 그녀가 얼마나 당당하고 귀여운지. 우리도 좀 더 좋아하는 것을 좇아도 되지 않을까. 덕후가 될 수 있는 것도 자산이자 능력이다.
다음은 꼭 옮겨 적고 싶은 책의 글귀들이다. 70년 가까이 산 어른의 생각은 나를 얼마간 깨닫게 하기도 하고, 공감하게 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부럽게 만들기도 한다.
"이유도 없이 기운이 솟아났다. 역사상 최초의 장수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 세대에게는 생활의 롤모델이 없다.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거리며 어떻게 아침밥을 먹을지 스스로 모색해나가야 한다. 저마다 각자의 방식을 찾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깨달았다. 사람을 사귀는 것보다 자기 자신과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 더 어렵다는 사실을. 나는 스스로와 사이좋게 지내지 못했다. 그것도 60년씩이나. 나는 나와 가장 먼저 절교하고 싶다."
"세월은 꿈처럼, 혹은 악몽처럼 흘러 일흔 가까이 먹은 내가 예전의 그 거대한 절을 이따금씩 차로 지나친다. 나는 두 번이나 이혼했으면서도 웅장한 절의 담장을 달리며 생각한다. '아깝다. 이 절에 시집갔더라면 내 인생은 어떻게 되었을까?' 그랬다면 이혼을 세 번 했을지도 모르겠다."
"내게는 지금 그 어떤 의무도 없다. 아들은 다 컸고 엄마는 2년 전에 죽었다.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죽지 못할 정도로 일을 좋아하지도 않는다. 남은 날이 2년이라는 말을 듣자 십수 년 동안 나를 괴롭힌 우울증이 거의 사라졌다. 인간은 신기하다. 인생이 갑자기 알차게 변했다. 매일이 즐거워서 견딜 수 없다.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건 자유의 획득이나 다름없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도 매일이 즐거울 수 있다니. 지금의 나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마음이지만, 앞으로 사오십 년을 더 살아내면 공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앞서 생애를 경험한 멋진 어른의 글을 읽는 건 즐겁다. 똑같이 흔들리고 절망하면서도, 생의 기쁨을 찾고 의연해지는 모습이 멋지다. 책을 읽으며 내내 생각했다. 나도 이렇게 솔직하고 사랑스러운 할머니로 늙어가야지. 왜인지 모르게 설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