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숲으로]

by 채부장
2025. 7. 20

요 몇 달간 내 머릿 속을 지배했던 주제는 '남은 삶의 목적'이란 것이었다. 서른 여섯 해하고도 반 년을 더 살았는데 이제 와서 삶의 목적이라니, 꽤 거창하게 들려 우스울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사실은 사실이니까. 엄마를 포함해 주위의 가까운 선배들에게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보통 우리는 유사한 목표를 가지고 살아가니까 말이다. 좋은 대학, 좋은 직업 혹은 직장, 결혼, 그리고 자식을 낳아 잘 키우는 일. 물론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아직 대부분은 그렇다.


그렇다면 저 트랙을 완벽하게 타지 못한-혹은 타지 않은-나의 경우에는 어떻게 살아가야할까. 그게 내가 당면한 현재의 문제였다. 가정을 꾸리는 일을 선택하지 않았으니 자식을 통해 제 2의 인생을 살아갈 수 없고, 당장 무언가를 꼭 해야하는 의무도 없는 삶. 하지만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살다보면 10년 뒤, 20년 뒤의 삶이 지금같지 않고 어쩌면 공허해질까봐 걱정됐다. 얘길 들은 엄마는 '꼭 목적을 가지고 살아가야만 하는 걸까'하고 되려 질문했지만, 적어도 나라는 사람에게는 그게 있어야 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이가 들며 좋아하는 것과 좋아하지 않는 것이 더욱 선명해진다. 그건 기쁜 일이다. 지금 좋아하는 것을 언제까지고 좋아할지 모른다는 걱정이 들긴 하지만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좋아하는 유일한 것은 아마 책읽기, 강아지와 고양이, 그리고 요즘 좋아하기 시작한 건 요가. 이국적인 곳에 가서 낯선 사람들을 보는 것, 새로운 누군가와 이야기하며 그에 대해 알게 되는 것. (그들과 친해지고 깊어지는 것은 별개다) 새로이 자연에 대한 애정도 생겼는데 그 안에 벌레가 있다면 그것까지 좋아할 수는 없다는 것도 깨달았다. 재미있는 사실은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는 것도 좋아하는 것의 범주에 든다는 것이다. 회사를 그만두고 그 시간을 더 의미있는 일에 몰두해 쓰기에는 아직 그만큼의 기회 비용을 지불할 만한 것도, 그만큼의 용기도 없는 게 사실이다.


재능에 대해서는 어떤가. 남는 시간에 짧은 영상도 만들어보고, 책 읽은 후의 단상을 적은 글도 써보고, 요가 자격증을 따볼까 하고 고민도 해보지만 무엇도 일이 될 만큼 잘하는 것 같진 않다. 전력투구하지 않아서 그런 거라고 비난할 수도 있겠지만 내 마음이 딱 그정도여서가 아닐까 싶다. 이대로 꾸준히 시간을 투자해 만 시간을 채우면 전문가가 될까. 아직 머리 서기만 하는 수준이니 바카 아사나도, 시르다파다도 머나먼 이야기같다. 나는 그냥 딱 적당히 그 정도의 재능만 있는 사람인 것처럼 느껴진다.


여러 생각을 가지고 썸숲에 왔다. 썸숲은 춘천에 있는 '썸원스페이지숲'이라는 북스테이다. 농담처럼 흔히 얘기하곤 하는데, 나는 경제적인 자유를 얻으면 서점을 겸한 북스테이를 운영하고 싶다. 커피도 팔고 요가 클래스도 운영하는 그런 곳. 나와 같은 취향의, 같은 것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곳. 썸숲이 그런 곳의 전형인데 심지어 인테리어가 정말 예쁘고 고양이가 두 마리나 산다. 사장님이 싸이월드에서 웹디자이너로 일하셨던 까닭일지 감성이 남다르다. 어떻게 하다 썸숲을 만들게 되셨는지 궁금하지만 아직 여쭤보진 못했다. 내일 기회가 있으면 물어보고 싶다.


대신 사장님이 추천해주신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를 읽었다. 몇 년 전에 '수짱 시리즈'를 읽으며 그 때도 꽤 많은 부분에서 공감했던 걸 기억한다. 그런데 이번 책은 짧은 만화 중간 중간에도 머리를 탁 치고 지나가는 깨달음의 순간이 많았다. [주말엔 숲으로]는 시골에 내려가 살고 있는 프리랜서인 주인공 '하야카와'와 그녀의 두 친구 '마유미', '세스코'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두 친구들은 하야카와와 함께 숲과 그 안의 생명들을 알게 되고, 호수에서 카약도 타고, 밤 하늘도 본다. 그들이 숲에서 보낸 시간은 도시에서의 삶도 좀 더 유연하고 폭넓게 만들어준다. 마유미와 세스코가 조금씩 성장할 때마다 나 역시 그 과정을 함께 하고 있는 듯하다.


"인간은 도착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만 걷는 건 아니다."


"숲에는 돌이나 나무뿌리가 있어서 어두울 때는 발밑보다는 조금 더 멀리 보면서 가야 해."


"손끝만 보지 말고 가고 싶은 곳을 보면서 저으면, 그곳에 다가갈 수 있어."


"큰 바다에서 목적지를 향할 때는 똑바로 나가는 것이 빠를 테고. 강이나 호수에서는 작게 회전할 수 있는 것이 편리하고. 똑바로 나갈 것인지, 작게 회전하면서 빠져나갈 것인지, 상황에 맞는 것을 선택하는 편이 좋지 않을까."


"내년을 약속하는 건 좋은 거 같아. 자신이 내년에도 건강하게 있을 거라고 생각할 수 있는 지금, 좋지 않아?"


"그렇지만, 날다람쥐라고 날기만 하는 것은 아니야. 날다람쥐는 위에서 아래를 향해 날지만, 아래에서 위로는 날지 못해. 아래로 내려오면 다시 나무를 오르지 않으면 안 돼. 편하기만 할 수는 없는 법이니까."


"어른이 되면 뭐든지 알게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어? 그렇지만 모르는 게 산더미처럼 많아. 뭔가, 모르는 세계가 가득하다는 것을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된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어."


좋았던 부분을 옮겨 적다 보니 썸숲의 사장님의 왜 이 책을 추천하셨는지 알 것 같다. 이 곳을 찾아오는 수많은 여행자들에게 이 책은 조그만 위안같은 것이 아닐까. 말 그대로 주말에 숲으로 찾아온 우리들을 가만히 따뜻하게 감싸안아주는 것 같은 책. 나 역시 이 책의 마유미처럼, 세스코처럼 삶에 부딪혀 화나고 억울해하고 자괴감에 빠지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하야카와같은 나를 다시 불러내 자신을 다독여줄 것이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도 하야카와같은 친구가 되어줘야지.


사실 엄마 말대로 꼭 목적을 가지고 살아야만 하는 건 아니다. 엄마는 그 고민이 나를 갉아먹지 않기를 바라서 순간 한 말이겠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 말에 큰 위로를 받고 있다. 지금의 건강하고 즐거운 삶이 계속될 수 없을 것 같다는 불안감이 혹여나 현재를 좀먹지 않도록 잘 돌보려고 한다. 썸숲 혼자만의 방에서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써둔 구절을 찾았다. 지금의 나에게 꼭 필요한 문구라 붙여둔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급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빈센트 반 고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