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2일
아기다리고기다리던 어학원의 레벨테스트를 드디어 치렀다. 나는 원래 시험에 대한 불안이 높다. 그래서 이런 간단한 시험을 보기 전에도 화장실을 수차례나 들락날락했다. 제일 낮은 반으로 보내달라고 할걸 괜히 테스트를 신청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다. 후회가 자학으로 변모해갈 무렵 이메일로 줌 링크가 도착했다. 걱정과는 달리 테스트를 진행하는 선생님은 생각보다 매우 젠틀했다. 비록 “네? 네?” 하면서 선생님의 질문을 연이어 못 알아들었다는 게 슬픈 점이긴 하지만. 내 프랑스어를 들으며 여느 프랑스인들처럼 한숨을 쉬지 않아 주어서 고마울 따름이었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시험은 끝났으나 무슨 반에 배정받았는지는 모르겠다. 하긴 레벨테스트를 받는 것만도 무려 일주일이 걸렸으니…. 월요일에 학원에 가서 확인해 봐야겠다. 막상 학원에 가면 왜 왔냐고 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덜컥 겁부터 난다. 이 나라의 시스템에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다.
되지도 않는 프랑스어로 떠들다 보니 한국어로도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보기와 다르게 나는 비교적 외로움에 강한 편이다. 하지만 이렇게 타지에 나오니 좀 외롭기는 하다. 하루 중에 입을 열 때라고는, 카페에서 커피를 주문할 때뿐이니 말이다. 동생과 통화하면서 요즘 조금 외롭다고 말했다. 그러자 동생은 말했다. 다들 외롭고 싶어서 휴직을 하는 거라고. 작년에 사람들과 지지고 볶고 할 때 행복했었느냐고. 동생은 건강상의 이유로 작년에 휴직을 했었다. 그리고 지금 생각해 봐도 그때가 무척 그립다고 했다. 사회생활에 이리치이고 저리치인 동생의 목소리엔 삶의 무거움마저 묻어났다.
동생의 말에 동의한다. 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이 버거웠기 때문에 무급 휴직까지 감행했다. 게다가 더 외롭고 싶어서 파리까지 날아왔다. 지금 느끼는 외로움을 금전으로 환산하면 왠만한 명품백보다 훨씬 값비싼 감정이다. 미디어에서는 외로움을 항상 부정적인 것으로 묘사하지만, 사실 인간은 외로운만큼 자유로울 수 있다. 외로운 덕택에, 누구도 신경 쓰지 않고 일어나는 시간과 잠자는 시간을 마음대로 결정하고 있다. 먹고 싶은 메뉴를 선택하고, 스스로를 먹이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혼자서 생각을 정리하고 글로 적어낼 시간도 충분하다. 이 시간이야말로 나 자신을 알아가는데 가장 소중한 시간이 아닐까.
외로울 수 있을 때 많이 외로워두기로 했다. 지금의 이 호사스러운 감정이 눈물 나게 그리워질 날이 올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