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30일
유럽은 변하지 않는다고들 이야기한다.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고풍스러운 건축물들과 느리고 불편한 아날로그식 서비스들도 포함한 이야기일 것이다.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는 유럽도 많이 변했다. 2019년에서 2020년으로 넘어가던 겨울, 코로나가 창궐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유럽에 왔었다. 그리고 불과 3년 만에 유럽에 돌아왔다. 이토록 짧은 시간에 유럽이 크게 달라졌다고 느끼는 점이 두 가지가 있다.
첫 번째는 유럽인들이 카드 결제를 하기 시작했다. 울랄라! 영국, 아일랜드 그리고 프랑스까지! 심지어 우리보다 좋은 기계를 쓰는 것 같다. 카드를 꽂거나 긁지 않아도, 멀리서 카드를 대기만 하면 자동으로 결제된다. 예전에는 유럽을 여행한다고 치면, 200만 원씩 환전해서 복대에 차고 다니면서 소매치기를 만날까 봐 두려워했지 않았던가. 심지어 지퍼로 만든 팬티 속에 여권과 현금을 숨기고 다니라는 이야기까지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가 없어졌다. 오히려 현금을 받지 않는 가게들이 더 늘어나는 추세다. 어떻게 이렇게 짧은 순간에 고집스러운 유럽인들이 마음을 달리 먹을 수 있는지 신기한 지경이다.
두 번째는 드디어 지하철 안에서 인터넷이 된다. 울랄라! 파리 지하철에서 인터넷이 되기 시작하다니. 흔히들 서울의 지하철 1호선을 달리는 걸레라고 부른다. 하지만 파리의 지하철에 비하면 서울의 1호선은 애교에 가깝다. 이게 어떻게 달리는 거지 싶을 정도로 지저분하고 오래된 고철 덩어리가 파리의 지하철이니까. 그러면 파리의 지하철은 도대체 뭘까. 달리는 쓰레기통? 달리는 변기통? 아무튼 그 고통스러운 달리는 변기통 안에서 파리지앵들은 지린내를 잊고 인터넷을 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알게 되었다. 예전에 유럽인들은 한국인들보다 지하철 안에서 책을 더 많이 읽는다는 방송을 본 적 있다. 하지만 이제는 유러피안들도 책을 읽기보다는 인터넷을 한다. 그들이 책을 읽었던 이유는 지하철 안에서는 인터넷이 안 됐기 때문도 있을 것이다. 인터넷을 할 수 있다면, 인터넷이 책 보다 훨씬 더 고자극이니 마음을 뺏기는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지하철에서 인터넷을 많이 한다고 자조할 필요가 없었다. 알고 보니 우리는 전 세계의 트렌드 세터였던 것이다.
하지만 부디 달라졌으면 하고 바라는데도 달라지지 않은 것이 있다. 바로 파리의 노상방뇨다. 이상하게도 파리에 올 때마다 여인들이 노상방뇨를 하는 것을 본다. 십 년 전에 파리에 왔을 때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머리에 히잡을 쓴 집시여인이 노상방뇨를 하고 흐르는 오줌을 발로 치우는 것을 보았다. 오늘은 달리는 변기통을 기다리던 역 안에서 한 흑인 여인이 노상방뇨를 하고 흐르는 오줌을 발로 치우는 것을 보았다. 아주 급했다면 노상방뇨까지는 너른 마음으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왜 자신이 본 소변을 굳이 발로 치우는 걸까. 그게 마지막 양심인 걸까. 아무튼 센강처럼 흐르는 타인의 따끈한 소변을 눈으로 확인하는 것이 참 묘했다.
세상에 영원한 것이 있을까? 영원한 것이 한 가지 있다면 프랑스인들이 길거리를 화장실 삼아 배뇨욕구를 해결하는 것이다. 하이힐이 개발된 이유이기도 하므로 이는 수백 년은 된 전통이다. 이거야 말로 진짜 프랑스 문화가 아닐까. 손으로 웨이터만 불러도 화가 나고, 식탁에 팔꿈치만 올려도 예의 없다고 여기는 프랑스인들이 노상방뇨에는 왜 이리 관대한지 모르겠다. 영원한 것이 좋다지만, 부디 영원하지 않았으면 하고 바라게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오늘은 프랑스 문화와 거리 두기를 하고 싶어 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