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8일
파리에 온 지 하루가 지났다. 자려고 누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생각보다 많은 돈을 쓰고 있는 것 같아서 불안해졌다. 애써서 모아둔 돈이 이토록 짧은 시간에 금방 사라진다니. 돈을 벌 때의 괴로움이 떠올라, 파리에 괜히 왔나 고민하며 머리를 쥐 뜯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다. 소심하고 현실적인.
세 달 동안 빌린 방의 주인은 이십 대 초반의 학생이었다. 어린 학생이 얼마나 야무지게 집관리를 하는지. 저 정도로 똑 부러지니 부모님께서 선뜻 해외 유학을 시켜주셨나 보다. 한편 나는 아직 엄마아빠의 세계에서 살고 있다. 여행을 간다고 하니, 아빠는 짐 가방에 컵라면과 컵밥을 싸주었다. 카톡으로 메시지를 하면, 엄마는 지치면 빨리 돌아오라고 한다. 그 친구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데도 불구하고. 왠지 부끄러워진다.
여하간 어리고 똑똑한 친구는 열쇠를 잘 챙기라고 신신당부했다. 한국에서 번호키를 쓰는데, 이곳은 아직도 무겁게 열쇠를 들고 다닌다. 문을 닫으면 문이 자동으로 잠기기 때문에 열쇠를 가지고 나오지 않았다면 큰 일이다. 열쇠공을 불러야 하는데, 휴일에 열쇠공을 부를 때는 거의 부르는 게 값이라고 한다. 거기다가 집 앞 공용 현관문을 열 때도 열쇠가 필요하다. 최악의 상황은 열쇠를 잃어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같은 아파트의 모든 이들의 열쇠를 바꿔줘야 할 것이다. 그걸 해주려면 도대체 얼마가 들까. 나갈 때마다 항상 “열쇠! 열쇠!”하고 되뇌며 다녀야겠다. 나는 열쇠 강박증이 생길 것만 같은데, 프랑스 인들은 열쇠를 챙기는 것에 스트레스받지 않는 걸까.
문은 또 어찌나 무거운지 정말 팔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다. 문을 여는 게 거의 스포츠라고 봐도 무방하다. ‘이 문 고장 난 거 아니야?’ 하고 온 힘을 다해 열면, 겨우겨우 열린다. 기본적으로 나에 비하면 프랑스 인들은 근력이 좋은 모양이다.
내가 사는 곳의 엘리베이터는 굉장히 오래되었다. 여닫는 문으로 되어있는, 유럽에서는 아주 흔한 형태의 엘리베이터이기는 하다. 요란하게 덜거덕거리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이동할 때마다 한세월 기다리다 보니, 언제부터 이 사람들이 이렇게 보수화된 것인지 궁금해졌다. 여하간 엘리베이터가 처음 나왔을 때는 신문물을 즐겼던 것 아닌가. 혁신이라고 생각하면서 좋아했을 텐데 어느 날 갑자기 마음을 달리 먹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지 않기로 한 것인지. 물론 엘리베이터 문조차 무거웠기에 든 생각이다. 어쩌면 나라 차원에서 모든 문을 무겁게 만들어, 국민들의 건강관리를 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나도 귀국할 때쯤에는 이두박근 정도는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프랑스인들은 신문물을 잘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근력도 좋고, 열쇠도 꼼꼼하게 챙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프랑스어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써보고 싶었다. “크루아상 하나 주세요. 실부쁠레.”하고 프랑스어를 써 크루아상을 사서 돌아오는 길은 뿌듯했다. 어린이가 처음 엄마 심부름을 성공적으로 해서 신났을 때 정도의 기쁨이었다. 따뜻한 빵을 보자 참지 못하고, 길에 서서 먹었다. 맞은편에서도 한 여자분이 길에 서서 빵을 먹고 있었다. 왜인지 다들 길에서 빵을 먹는 분위기인가 보다. 이렇게 프랑스 문화에 젖어들고 있다. 비록 아직은 열쇠를 편안하게 생각하는 마음가짐과 문을 여는 팔 근력은 부족하지만 말이다.
크루아상은 지나치게 맛있었다. 여기 온 것이 후회되지 않을 정도로. 또 어제의 고민을 잊을 수 있을 정도로.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잘 지내고 싶다. 열쇠를 들고 다녀야 하는 불편과 안간힘을 써야 열리는 문과 덜컹거리는 엘리베이터에도 아무렇지 않게 적응하게 되길. 나를 이해해 주는 새로운 만남들로 이 시간이 가득 차게 되기를. 그리고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