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거머리가 다리에 달라붙어 피를 빨아먹어도 ‘악’ 소리 한번 지르고 털어내면 그만이었다.
그 여름 골목길은 아이들이 첨벙 대고 재잘대는 소리로 시끌벅적했다.
물놀이를 하다 가끔 깨진 유리 조각을 밟아 발바닥을 다치기도 했다.
그렇다고 물놀이를 그만두진 않았다.
엄마는 발을 다친 내게 그날은 물놀이를 그만하라고 했지만, 아예 물놀이를 못 하게 하진 않았다.
나는 상처가 아물면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그 좁고 얕은 도랑물에 우린 자주 다이빙을 했고, 잠수로 누가 멀리까지 가나 시합도 벌이며 신나게 놀았다. 물놀이는 여름 한 철만 할 수 있으니까.
뜨거운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오면 도랑물도 얼어붙으니까.
할 수 있을 때 실컷 놀아두어야 했다.
지칠 줄 모르는 아이들로 그득한 도랑 옆에는 우리 엄마가 앉아 있었다.
더운지 연신 부채질을 하며 남의 집 담장 옆 그늘에 앉아 물놀이하는 나와 언니를 지켜보고 있었다.
엄마가 어떤 표정이었는지, 누구와 함께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엄마가 거기 그렇게 앉아 딸들이 혹시나 다치진 않는지,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기진 않는지 지켜보고 있었다는 것이다.
마치 요즘 엄마들이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뛰어놀 때 지켜보고 있는 것처럼, 그때 우리 엄마는 유독 물놀이를 할 때는 그렇게 옆에 앉아 있곤 했다.
엄마가 거기 그렇게 앉아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든든했다.
두 아이와 함께 도망치듯 간 친정 동네에 이제 도랑은 없다.
도랑의 물을 다 빼버리고 시멘트로 덮어버린 것이 꽤 오래전 일이다.
도랑물을 다 빼고 보니 그 아래 거머리들만 잔뜩 남아 꿈틀대고 있었다.
내가 저 물에서 놀았단 말이지…
그 골목엔 더는 뛰어노는 아이도, 첨벙 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시끌벅적하고 찬란했던 시절도 시멘트와 함께 땅속 깊이 묻혀버렸다.
이제 그 골목길엔 빚덩이에 놀라 도망치듯 달려가 우두커니 서 있는 내가 서 있다.
환하고 눈부시게 반짝이던 골목길은 먹구름이 태양을 가려 어둡고 축축한 터널로 변해버렸다.
딸이 잘살고 있는 줄로만 알았던 부모님은 많이 놀랐고, 분노했고, 가슴 아파하셨다.
하지만 외갓집에 가서 마냥 즐거운 두 아이는 웃고 있었고, 그 시절 골목길처럼 환했고, 반짝거렸다.
그저 외갓집에 놀러 간 줄로만 아는 아이들을 데리고 냇가로 갔다.
돌멩이 던지며 노는 법을 가르쳐 주었더니 자기 주먹 안에 쏙 들어가는 돌멩이를 찾아와 연신 물속으로 던지며 꺄르륵거렸다.
아이들은 퐁퐁 소리를 내며 물속으로 사라지는 돌멩이를 신기해했다.
나는 꺄르륵 소리가 좋아서 작은 돌멩이를 더 열심히 찾아 모았다.
돌멩이 던지는 놀이가 뭐가 그렇게 재밌다고 신나 하는 두 아이를 보고 있자니,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 시절 도랑에서 물놀이하는 내 모습을 지켜보던 엄마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이제 그 시절의 엄마와 비슷한 나이가 된 나.
그저 아이들이 계속 웃게 해주고 싶었다.
돌멩이 따위에도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지을 수 있는 두 아이가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저 두 영혼이 행복하게만 자랄 수 있다면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부모님은 근처 예쁜 공원으로 나와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가을이라 예쁘게 핀 가을꽃들이 한창이었다.
하늘은 유난히도 파랬고, 두 아이를 보는 부모님의 표정은 밝았다.
아직 브이도 제대로 못 하는 네 살배기 첫째가 구부린 손가락이 앙증맞았다.
짧은 다리로 걸어보겠다며 아장거리는 둘째의 뒷모습은 사랑스러웠다.
우린 마치 아무 걱정 근심 없는 가족 같았고, 그 그림 안에 있는 나 역시 웃고 있었다.
그래야 할 것 같았다.
당장 내 삶에 눈에 보이는 큰 변화가 생긴 건 아니었으니까.
정면으로 피할 수 없는 기차가 나를 들이받을 것처럼 달려오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두 아이를 내던질 순 없었다. 유리조각이 발바닥에 박혀도 물놀이를 그만둘 수 없었던 것처럼.
그 시절 골목길에서 나를 지켜보고 있었던 엄마는 젊었고, 아빠는 사업을 부지런히 키워가는 중이셨다.
안팎으로 든든하게 지켜주고 계신 부모님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나는 티 없이 맑고 밝게 자랄 수 있었다.
내 아이들도 그렇게 든든한 울타리 안에서 자라게 해주고 싶었다.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지켜주어야 할 책임이 내겐 있었다.
“얼마 전에 읽은 책에서 인생은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과 같은 거라고 했다. 나에게 주어진 잔 속의 물을 꿀꺽꿀꺽 삼키는 것.”
박선희 작가의 『매일 아침 6시, 일기를 씁니다』를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나고 깨달았다.
그때 나는 내게 주어진 잔 속의 물을 꿀꺽꿀꺽 삼키기로 결정했었다는 것을.
“결정된 운이 7이면 내 몫의 3이 있다네. 그 3이 바로 자유의지야. 모든 것이 갖춰진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그게 설사 어리석음일지라도 그게 인간이 행사한 자유의지라네. 아버지 집에서 지냈으면 편하게 살았을 텐데, 굳이 집을 떠나 고생하고 돌아온 탕자처럼……. 어차피 집으로 돌아올 운명일지라도, 떠나기 전의 탕자와 돌아온 후의 탕자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네. 그렇게 제 몸을 던져 깨달아야, 잘났거나 못났거나 진짜 자기가 되는 거지. 알겠나? 인간은 자신의 자유의지로 수만 가지 희비극을 다 겪어야 만족하는 존재라네.”
이어령 선생님께서 마지막 수업에서 말씀하신 바로 그 3만큼의 자유의지.
나는 그걸 발휘해 보기로 했다.
내 선택이 현명한지 어리석은지 따지지 않았다.
내 앞길이 고생길이 될 것은 뻔한 일이었지만, 내 의지로 낳은 두 아이의 앞길마저 고생길로 만들 수는 없었다.
두 아이 역시 살면서 희비극을 겪게 될 터지만, 적어도 내 손으로 비극을 만들어 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어렸던 시절,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아주 여유롭진 않았다.
그럼에도 부모님이 만들어 준 그늘은 내 어린 시절을 춥지도 덥지도 않은 공기로 기억하게 만들어주었다.
적어도 내 아이들이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희비극을 선택하기 전까지 나 역시도 내 아이들에게 쉴 수 있는 그늘,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주어야 했다.
“누가 봐도 불행하다고 할 만한 상황이지만 나는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어떻게 내가 나를 불행하다고 생각할 수가 있겠어. 끝장은 그런 게 끝장이다. 어떤 일을 겪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겪어내느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며 마음을 꽉 다잡는다.”
박선희 작가는 남편을 먼저 떠나보내는 불행을 겪었다.
생각만 해도 막막한 그 순간의 다짐이어서 한층 더 존경심이 우러나오는 문장이다.
당시의 나 역시 세상 누구보다 불행하다 여길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막막했지만 그 막막함을 뚫고 나가보기로 했다.
그건 내 사랑하는 아이들을 지키려는 본능이 만들어낸 용기였다.
다시 가방을 쌌다.
도랑에서 물놀이를 하다가 유리조각이 박혀 살이 찢어지고 피가 흘러도 다시 물속으로 뛰어들었던 건 내 의지였다.
내 마음에 상처 낸 곳으로 다시 돌아가겠다고 결정한 것 역시 내 의지였다.
부모님은 그런 나를 말리지 않으셨다. 그저
"어떡하겠냐. 그래도 살아봐야지."
라는 말로 복잡한 마음을 대신하셨다.
두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아이들을 위해 노래를 하고, 이야기하고, 웃었다.
동시에 막막함과 비장함, 용기와 절망이 한 마음 안에서 싸웠다.
나는 불행했지만,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감사한 것은 시간은 불행한 나도 예외로 두지 않고 함께 흘러가도록 데려가 주었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