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으로부터 멀어지려고 했다. 한국에 관심을 두지 않으려고 한국 뉴스를 멀리했고, 사람들과의 연락은 해외라는 이유로 끊어냈다. 새 땅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한국인 자아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단순한 판단이었다. 스리랑카의 민낯을 보려면 서민의 삶으로 들어가야 했고, 한국인으로서 고착된 습관을 잠시 접어두는 게 유리했으니까. 스리랑카 자아를 만드는 것은 이곳의 문화를 배우고, 그들과 가까워지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되었다.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지우고 싶기도 했다.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과하게 호의적인 사람들을 만나며, 더구나 그 호의가 진심이 아니라 이용하려는 의도였던 경험까지 더해지며 사람들의 친절이 한국을 향한 건지, 나를 향한 건지 헷갈렸다. 이방인으로서의 피로와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겹쳐지며 이 모든 게 한국의 후광때문에 힘든 거라고 합리화했고, 한국인처럼 보이는 나를 미워하는 방식으로 복잡한 감정을 정리하려고 했다.
그렇게 스리랑카에서 새로운 나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나의 한국 자아와 스리랑카 자아는 마치 지킬 박사와 하이드 마냥 180도 다른 모습이다. 한국어를 할 때는 얌전하지만, 싱할라어를 쓸 때는 천방지축 말괄량이가 된다. 목소리도 커진다. 그건 스리랑카 사람들이 나의 발음을 알아듣기 쉽도록 배려하는 것이기도 하고,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얕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일부러 센 척하며 기선 제압하려는 것이기도 하다. 목소리 크게 내기는 조금 유치한 발상이지만 스리랑카에서 나를 지키기엔 꽤 좋은 방법이다.
목소리 크기야 의도적으로 바꿀 수 있어도, 농담 실력마저 바꾸기는 쉽지 않다. 그건 사고 체계를 뒤집어야 하기 때문이다. 농담 한 번 하려면 마음 속에서 돌다리를 수없이 두드리다가 닳게 만들 정도로 남을 웃기는 데 인색했던 나는, 스리랑카에서 농담 없는 하루를 상상할 수도 없게 됐다. 처음 만난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도 "오야 하리 졸리(너 정말 유쾌하구나)"라는 말을 자주 듣고, 한국에서 온 희극인이냐는 질문을 받기도 한다. 한국에서 너무 진지하다고 놀림받던 나는 어쩌다 스리랑카에서 재미있는 외국인이 되었을까?
싱할라어를 알려준 사람 얘기부터 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나라의 장애인 학생들과 수다를 떨며 언어를 배웠다. 그들은 농담을 아주 잘했다. 단순한 단어를 반복해서 말하거나, 말꼬리를 올리곤 했고, 엉뚱한 이야기를 좋아했다. 사랑하면 닮는다고 하지 않던가. 나는 지적장애인 학생들의 과장된 웃음과 말투를 모방했고, 농인 학생들의 풍부한 표정과 손짓이 몸에 붙었다. 게다가 놀면서 말을 배웠더니, 싱할라어를 할 때는 개구쟁이가 되어버린다. 싱할라어를 할 때만 느낄 수 있는 묘한 해방감이 있다.
그렇게 스리랑카 자아에 한껏 심취해있었는데, 한국의 한 사찰에서 스리랑카 아이들에게 학용품 기부를 하러 와 사진 촬영을 도우러 갔다. 한국 사람에게는 한국어로, 현지 관계자에게는 싱할라어로 말을 걸면서 자아 충돌이 일어났다. 한국어 화자일 때는 필요한 말만 하는 정돈된 사람이었다가, 싱할라어 화자일 때는 감정 표현이 직설적인 어린아이가 됐다. 한국어는 아는 어휘가 많고 존댓말 체계가 있다 보니 정중하게 에둘러 표현하는 게 가능한데, 싱할라어는 아는 어휘가 적다 보니 직관적으로 의사를 표현하게 돼서 그렇다.
그래서 싱할라어를 나의 감정 언어라고 생각할 때도 있었다. 싱할라어를 할 때는 미사여구 없이 솔직담백하게 마음을 드러낼 수 있으니까 오히려 감정을 표현하기 편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오산이었다. 한국에서 오신 분들이 스리랑카 생활을 궁금해하셔서, 이곳에서 느끼는 희로애락을 털어놓다가 나의 감정을 심도 있게 느낄 수 있는 언어는 역시 모국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내 마음 깊은 곳에서 올라오는 감정을 모국어로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나는 모국어로 사유하는 인간이었다. 여행은 낯선 환경에서 자기에게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하루의 끝은 언제나 깊은 사색의 시간으로 돌아왔는데, 그때마다 모국어로 화두를 던졌다. 마음에서 가장 많이 쓰는 언어가 한국어였음에도 불구하고, 스리랑카 사람처럼 살고 있다고 어리석은 착각을 하고 있던 것이다. 다른 문화의 사람들과 전혀 다른 언어로 살아간다 해도, 나의 내면 깊숙이 자리한 모국어를 대신할 수 있는 건 없다.
모국어야말로 삶의 중심이었다. 모국어에는 자기 자신을 탐구하고 통찰하게 해주는 무형의 기운이 있다. 내 안에서 모국어로 나를 표현하는 능력이 있기에 외국어도 자신 있게 내뱉을 수 있었던 것이다. 싱할라어에서 해방감을 느끼는 건 모국어가 속에서 단단히 받쳐주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스리랑카가 나를 회복해준다고 믿고 있었지만, 사실 그건 스리랑카 안에서 조용히 성찰하는 나의 모국어였다.
모국어와 멀어지지 않을 것이다. 외국어는 나의 세계를 넓게 만들고, 모국어는 나의 세계를 깊게 만든다. 스리랑카 사람들에게는 싱할라어로 진심을 전하고, 깊은 성찰이 필요할 때는 모국어를 꺼내 나의 내면을 들여다 볼 것이다. 한국어는 스리랑카어가 되었다가 다시 한국어로 돌아올 것이다. 그렇게 두꺼워질 나만의 언어로 더 깊은 문장을 만들어 내고 싶다. 나의 소중한 모국어를 잃지 않도록 열심히 사유해야겠다. 스리랑카 살이는 모국어와 깊이 연결되는 시간이 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