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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생에 죄를 지은 사람들

by 미누리

죄를 지은 사람은 벌을 받는다. 캔디 시내에는 수백 명의 죄인을 수감하던 보감바라 교도소(Bogambara Prison)가 있다. 1870년대에 세워진 이 감옥은 2014년에 폐쇄되었고, 지금은 유료 관광지로 개방된 상태다. 건물 내부 곳곳에는 법륜 그림과 불교 격언이 적혀 있다. 교도소는 단순히 벌을 받거나 격리되는 곳만은 아니다. 잘못을 뉘우치고 사회에 복귀할 수 있도록 돕는 재사회화의 공간이기도 하다. 햇빛 한 점 들지 않는 어두운 수용실을 보며 그 시대의 죄인들은 지금 어디서 어떤 삶을 살고 있을지 궁금해졌다.


우리 하숙집에도 죄인과 감옥이 있다. 아침마다 아빠는 거실의 작은 재단에서 향을 피우고 예불 의식을 행한다. 나도 가끔 옆에 앉아 염불을 따라 읊조린다. 아빠의 하얗게 센 머리칼과 쇠약해진 모습을 바라보면 세월이 참 야속하게 느껴진다. 아빠는 나를 붙잡고 자주 눈물을 흘린다. 그리고 어김없이 교통사고 이야기를 꺼낸다. 그 일이 발생한 건 마히가 세 살 때였다. 아빠는 삼륜차를 몰았고, 뒷자리에는 엄마와 마히가 앉았다. 맞은편 트럭 기사의 실수로 차가 전복되어 가족들은 크게 다쳤다. 그 사고로 엄마의 얼굴에는 큰 흉터가 남았고, 마히는 뇌 손상으로 지적장애인이 되었다.


아빠는 사과하러 온 가해 차량의 운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나는 당신을 용서했습니다. 이건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우리의 업보입니다." 그리고 아빠는 자신이 전생에 죄를 지어 이런 불행이 닥친 것이라는 죄책감 속에서 20년 넘게 살고 있다. 다음 생에서는 이런 비극을 겪지 않기 위해 이번 생에서 공덕을 쌓고자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그리고 내게 부처님의 말씀을 전한다. 법 보시는 재물 보시보다 공덕이 크다고 여겨진다. 나는 아빠의 마음이 평안해지도록 묵묵히 이야기를 듣는다.


스리랑카 사람들은 복(福)을 좋아한다. 복을 쌓으라고 권하고, 복을 받으라고 말한다. 그리고 카르마(Karma)를 무서워한다. 카르마는 산스크리트어로 업보, 자업자득, 인과응보를 뜻한다. 선한 업은 선한 결과를, 악한 업은 악한 결과를. 쉽게 말해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것이다. 우리의 생각, 말, 행동은 씨앗과 같다. 어떤 의도로 씨앗을 심었느냐에 따라 거두는 작물이 달라진다. 카르마 원리를 이해하면 작은 불운에 위안이 될 수 있지만, 사회 부조리나 타인의 폭력을 정당화하고 지나친 자책으로 이어질 위험도 있다. 모든 것이 정해져 있다면 어차피 노력해도 소용없다는 무력감에 빠지기도 쉽다.


부처님께서 업보와 윤회를 말씀하신 건 현재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강조하신 게 아닐까. 하지만 사람들은 가끔 본래 뜻을 왜곡하여 과거와 미래에 집착한다. 과거의 죄를 지우고 미래에 보상받기 위해 현재를 사는 것이다. 거짓말하면 -10점, 도둑질하면 -20점 차감되고, 그 점수를 만회하기 위해 착한 말을 하거나 굶주린 사람에게 밥을 주며 +10점, +20점을 쌓는 방식으로 말이다. 인생 총점이 높아야 다음 생에 좋은 곳에서 태어난다고 믿는다. 현생도 벅찬데 전생의 죄와 후생의 복까지 챙겨야 한다니 너무 가혹한 거 아닌가. 게다가 사람들은 전생까지 서열을 매긴다. 얘는 전생에 복을 많이 지은 사람, 쟤는 죄를 많이 지은 사람.


하숙집 식구들은 후자에 가깝다. 신장병에 걸린 남자와 병든 남편을 간호하는 여자, 자폐아를 낳은 여자와 자폐아로 태어난 남자, 자신의 차로 가족을 다치게 한 남자와 사고로 얼굴에 흉터가 생긴 여자와 지적장애인이 된 남자, 그 형제로 태어난 사람들. 그들은 스스로 죄인이라 여겼다. 자기 삶에 일어난 고통이 전생의 업보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 전생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이런 시련을 겪는 거라고. 그래서 착한 일을 많이 해야 다음 생엔 행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다정하고 자비로운 사람들이 오랜 시간 자기 안의 감옥에 갇혀있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건 보감바라보다 어둡고 무서운 감옥이었다.


나도 카르마로부터 자유롭진 않다. 몇 년 전, 스리랑카 거리에서 불쾌한 신체 접촉을 당했을 때, 사람들은 내게 전생에 지은 죄가 소멸한 것이니 너무 속상해하지 말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건넸다. 나는 피해자였지만 그들의 논리대로라면 전생에는 가해자였던 셈이다. 사람들은 잘 된 것도 내 탓, 못 된 것도 내 탓이라고 했다. 그건 한국에서 스리랑카 이주민들과의 관계에서 힘든 일을 겪을 때도 내가 전생에 공덕이 부족해서 그런 거라고 자책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나는 현생의 나뿐만 아니라, 본 적조차 없는 전생의 수많은 나를 미워하며 내 삶을 벌처럼 받아들이고 있었다.


사람들은 업을 짓지 않는 것이 어려워 복을 짓는 것을 택한다. 내가 이곳에서 할 수 있는 건 사람들이 복을 지을 수 있도록 기꺼이 도움받는 것이었다. 때로는 혼자 할 수 있는 일도 서툰 척하며 도움을 청하곤 했다. 마히에게 마당을 쓸 때 가로로 쓸어야 하는지 세로로 쓸어야 하는지 물었다. 일부러 갈지자로 어설프게 움직이면 마히는 그런 나를 보고 웃으며 제대로 하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아세니에게는 머리를 땋아달라고 부탁했고, 마담에게는 전통 옷을 입혀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면 그들은 기쁘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나는 "핑 싯더 웨와(복 받으세요.)"라고 감사 인사를 꼭 전했다. 우리는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주며 복을 지었다.


우리는 죄인이 아니다. 고통을 묵묵히 견디며 다른 이의 손을 잡아주는 사람이다. 그들이 내게 자비를 베풀도록 내가 의도한 것이 그들의 후생에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현생에서 이것만큼은 확신할 수 있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됐던 경험은 자신이 가치 있는 존재임을 느끼게 해주고, 그 작은 보람은 오늘을 살아갈 용기가 되어준다. 사람은 모두 불완전한 존재다. 그렇기 때문에 함께 살아갈 이유가 된다. 때로 삶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아프고, 또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치유되기도 한다. 나는 고통받는 사람의 전생을 탓하기보다는 현재의 고단함을 위로해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쳇바퀴는 다람쥐가 굴려야 돌아가지만, 다람쥐는 아무리 뛰어도 제자리걸음이다. 우리는 카르마 위를 숨 가삐 굴러가는 중생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지로 쳇바퀴에서 벗어날 수 있다. 진정한 자유는 교도소의 철창 너머에 있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든 마음의 감옥에서 벗어날 때 만날 수 있는 것이다.


"미누리는 전생에 스리랑카 사람이었을 거야. 그래서 스리랑카를 좋아하는 거야."

"맞아, 분명히 우리나라를 구했을 거야. 그래서 이렇게 사랑받는 거지."

"너처럼 잘 웃는 얼굴로 태어난 건 전생에 복을 많이 지었다는 거야."

"그럼 나 같은 복덩이가 굴러왔으면 여러분도 복이 많은 거네요?"

"그래, 우리 모두 복이 많은 사람이구나!"


전생을 유달리 좋아하는 스리랑카 사람들은 내가 전생에 스리랑카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곳에 오게 된 거라고 말한다. 그들의 말마따나 첫 번째 스리랑카는 전생의 인연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세 번째 스리랑카까지 그 인연을 이어온 건 현생의 사람과 사랑이었다. 사람들은 내게 복을 주었고, 나는 그들의 복이 되었다. 우리에게 주어진 장애는 형벌이 아니라 서로를 묶어주는 매듭이었다. 그 매듭 안에서 상처를 보듬고 복을 쌓았다. 하숙집에서 보낸 한 달은 행복, 축복 그리고 전화위복이었다.


보감바라 교도소(Bogambara Pris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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