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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0. 2023

우리가 알지 못하는 고통에 대하여

월간 옥이네 2020년 2월호(VOL.32) 여는 글

따뜻한 겨울이 이어지더니 입춘(2월 4일)엔 눈이 왔습니다. 바람도 부쩍 차가워져 새삼 옷깃을 여미게 됩니다. 봄 같은 날씨가 걱정이었는데, 이렇게 겨울이 떠나는 길목에서라도 추위를 만나게 되니 반가워해야 할 일이려나요.     


막상 추워지니 걱정되는 이들이 있습니다. 판잣집 한편에서, 좁은 고시원 침대 위에서, 또 우리가 알지 못하는 어딘가에서 이 겨울의 웃풍을 온몸으로 받아내야 하는 이들입니다.     


이렇게 고단한 겨울을 보내는 이는 길 위에도 있습니다. 월간 옥이네 2월호에서 특집으로 다룬 ‘길고양이’입니다.     


고양이는 한국사회에서 특히 많은 오해를 받아온 동물입니다. 과거, 복수와 저주의 상징이 되는가 하면 현대에 와선 ‘도둑’으로 몰리며 미움 받아왔습니다. 이뿐인가요. 마치 ‘감정’이 없는 동물인 양 대하기도 했지요.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조차 ‘고양이는 외로움을 타지 않는다’는 인식이 널리 퍼져있었으니까요. 저 역시 두 고양이와 함께 사는 집사이지만, 고양이와 살기 전까지는 그런 잘못된 인식을 갖고 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생명 중에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 것이 있을까요. 숨이 붙어있는 것 중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것이 있을까요. 최근 이스라엘의 한 대학에서 ‘가뭄이나 물리적 손상을 가하는 상황에서 채소도 비명을 지른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고 하니, 이쯤 되면 인간이 인위적으로 만들어낸 것 외에 자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느끼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너무 감상적이라고요? 네, 그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아는 인간이기에, 내가 모르는 고통과 슬픔과 외로움을 상상하고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지역사회가 왜 길고양이를 함께 돌봐야하는지, 이것이 왜 지역사회 공동의 문제가 됐는지 묻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길고양이를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을 안전하게 지속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실천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요. 당장 내 앞의 고통을 해결하지 못했는데 남의 고통에, 그것도 무릎을 굽히고 시선을 낮춰야 볼 수 있는 한낱 미물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래서 함께 이야기하고 나눠야 하는 자리가 필요한 것일 테고요.     


월간 옥이네 2월호가 그런 자리가 되길 바랍니다. 길고양이에서 시작된 생명에 대한 관심이 지역에 사는 또 다른 약자에게 가 닿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길고양이는 현대사회에 주어진 커다란 숙제인 동시에 새로운 선물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숙제를 숙제로만 남겨둘 것인지, 말 것인지는 결국 우리 손에 달려있습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로 전국이 시끄럽습니다. 건강과 개인위생에 유념하시길 바랍니다. 아, 길고양이는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와 무관합니다. 노파심에 덧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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