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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 Mar 11. 2023

다음 세상을 향한 상상, 바로 지금, 여기부터

월간 옥이네 2020년 6월호(VOL.36) 여는 글 

봄이 훌쩍 지났습니다. 언제나 그렇지만 올해는 더, 언제 다녀갔는지도 모르게 봄이 갔습니다.     


코로나19로 일상이 멈추었다는 이야기를 많이들 합니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본 투 비 집순이’인 저에겐, 바깥나들이가 쉽지 않다는 불편과 불만이 그리 크게 와 닿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그 흔한 꽃구경 한 번 하지 못한 것에 아쉬움이 듭니다. 어쩌면 그래서 올 봄이 이토록 빠르게 지난 것처럼 느껴지는 지도 모릅니다.      


텃밭을 가꾸면서, 싹이 나고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모습을 보는 것이 인간에게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새삼 깨닫습니다. 시간의 흐름, 계절의 변화를 옆에서 보고 인식하는 것이야 말로 인간이 이 우주 만물 속 아주 작은 존재임을, 그래서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 없음을 배우게 하는 것이기 때문일 터입니다.     


코로나19로 이 시간의 흐름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매일 걷던 길에서 만나던 이웃과 동네 풍경, 때로 저 멀리 보이던 산과 들이 아니라 방 한 구석 손에 쥔 작은 화면 속에서 만나는 장면에 매몰돼 중요한 때를 놓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코로나19를 불러온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는 환경파괴, 그리고 그것이 야기한 기후위기 앞에 현재의 단절은 또 다른 우려를 낳게 합니다.     


그래서 그런 생각을 해봤습니다. 옆에 있다고, 매일 보는 것이라고 눈여겨보지 않던 풍경 속에 우리가 찾아야 할 답이 있는 것은 아닐까. 월간 옥이네 6월호를 지역 풍경을 담은 사진으로 시작하는 이유입니다. 지면의 제약으로 모든 풍경을 싣지는 못했지만, 대신 고개를 들면 보이는 집 주변, 매일 오가는 길 위의 모습을 독자 여러분의 두 눈 속에 가득 담으시길 바랍니다.     


코로나 이후를 상상하는 것은 여기서 시작해야 합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단절과 거리 두기가 아니라 내 옆의 사람과 풍경과 자연을 만나고 함께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것부터 말입니다. 저 멀리 다른 곳이 아니라 우리 동네 안에서, 이웃과 손잡고, 공동체가 연대하며,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를 찾는 것. ‘비대면’이 사회 주요 흐름이자 서로를 위한 배려와 예의가 돼버린 세상에 그런 방법을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고민스럽기도 합니다.     


다소 장황한 이야기를 늘어놓았습니다. 이런 고민을 지면 안에 다 녹여낼 수 없었음에 아쉬움이 남습니다. 하지만 흐르는 시간이 연결되듯 지금의 이야기를 토대로 언젠가 또 다음 이야기를 풀어놓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지면이든, 지역사회 안에서든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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