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남편, 아빠가 해줄 수 있는 산후(육아) 우울증 예방법
산후 우울감을 경험하거나 산후우울증을 가진 산모 혹은 엄마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물론 전문적인 심리상담이나 약물치료를 위해 주변의 심리상담센터나 정신건강의학과에 방문하는 것이 가장 좋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상담이나 치료를 위한 행위에 대해 아직도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경우가 많아 쉽지는 않다. 이 글에서는 사실 아빠 육아에 관련한 내용이므로 전문적인 내용에 대해서 소개하기보다는 남편으로서, 아빠로서 내가 경험했던 내용을 소개하는 정도로 글을 써볼까 한다. 또한 이 글에서 산후우울과 육아 우울을 완벽히 구분하지는 않았는데, 산후 우울감의 경험에서는 호르몬과 같은 생물학적 요인들이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을 뿐, 산후우울이나 육아 우울 모두 심리적인 요인이 크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산후, 육아) 우울과 관련된 여러 경험들은 호르몬의 변화에도 기인하지만 심리적인 요인도 작용한다. (산후, 육아) 우울과 관련해서 아내, 엄마들이 느끼는 가장 큰 변화는 자존감(Self-esteem)의 하락과 자기 통제감(Self-control)의 변화가 아닐까 한다.
아이가 태어나게 되면 아이가 스스로 독립된 존재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절대적으로 부모의 도움이 필요하다. 아이가 말을 하게 되고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게 되면 그나마 낫지만 울음과 온몸으로 의사를 표현하게 되는 영유아기에는 부모들은 아이에게 많은 신경을 쏟아야 한다. 특히, 모유수유를 하는 엄마들은 밤중에도 수시로 일어나 아기에게 젖을 물리고, 유축을 해야 한다. 분유를 먹인다 해도 크게 다르지 않다. 단지, 분유는 아빠들이 해줄 수 있다는 점이 다를 뿐 밤잠을 설쳐야 한다는 점은 대동소이하다. 게다가 낮이고 밤이고 아이에게 기계적으로 젖을 물리고, 분유를 먹이고, 단순 반복되는 일과를 하다 보면 자신이 무가치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본인이 지금까지 해왔던 역할과는 다르고, 그렇게 처음 하는 일이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단순 반복적인, 거기다가 워낙 원초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물론, 생명의 고귀함이나 아이에게 모유 수유하는 산모의 모습에서 아름다움을 떠올리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소수이지만 말이다.
한 번은 아내가 수유 중 문득 웃으면서 얘기한 적이 있다. "주변 사람들이 그러길래 그냥 웃어넘겼는데 젖소가 된 거 같아" 더군다나 아내는 대학교 졸업 이후 계속 직장생활을 해왔기 때문에 아이와 함께 보내는 시간이 꽤나 단조로울만했다.
아이가 조금 자라 기기 시작하면서부터는 행동반경의 범위가 넓어진다. 집 안에 위험한 물건들은 모두 치우거나 다치지 않도록 조치를 취해야 하고, 잠시도 아이로부터 시선을 뗄 수가 없다. 우리 아이는 구강기에 맞는 신기한 체험(?)을 우리 부부에게 꽤 많이 선사해주었다. 한 번은 바나나우유 뚜껑의 은박지를 삼켜서 놀라게 하더니, 돌잔치 날은 우리 부부가 옷을 갈아입는 사이 머리 묶는 고무줄을 삼켜 아이 엄마가 사색이 되어 펑펑 울게 만들기도 했다. 정말 잠깐이라도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
정말 내 한 몸이면 내가 통제하는 것이 가능한데, 아이 때문에 내 몸을 내 맘대로 못하니 자기 통제감(self-control)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많은 엄마들이 경험하겠지만, 화장실에 변기에 앉아 아이를 안고 있는 장면은 꽤나 익숙한 장면일 것이다. 아빠인 나 역시도 그런 경험이 종종 있었다. 혹은 샤워 중에 아이가 화장실 문밖에서 벌컥 문을 열고 들어와서는 알몸인 채로 돌아다녀야 하는 상황 역시 당황스럽다. 가장 은밀하고 사적인 공간인 화장실조차도 완벽히 혼자일 수 없는 상황이 아이를 키우면서 수없이 반복되었다.
이런 소소한 에피소드들을 겪게 되면, 많은 엄마들이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라는 생각이 들기 마련이다. 아마 아이를 낳기 전에 활발히 활동하고,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았던 엄마들일수록 더 그럴 것이다.
그래서 사실 나는 산후우울증이나 육아 우울을 경험하는 엄마들을 위해 남편, 아빠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잠시라도 자존감이나 자기 통제감을 회복할 수 있도록 심리적으로 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다고 생각한다. 단기적으로는 아빠 입장에서 힘들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산후 우울감이나 산후우울증 같은 심리적인 증상이 아이에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아빠들이 꼭 해주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먼저, 나는 아이 엄마가 수유하는 밤에 함께 일어나주는 것을 추천한다. 사실 아이가 태어나면 출근해야 하는 아빠를 위해 각방을 쓰는 경우도 꽤 있다는 것을 안다. 그렇지만 밤중에 남편, 아빠들이 함께 일어나 주는 것만으로도 아내, 엄마들의 정신적 피로를 크게 덜어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엄마 입장에서 보면 아이가 울어대는데 코 골며 자고 있는 남편이 얼마나 꼴 보기 싫을까?
사실 독박 육아라는 표현은 아빠보다는 엄마에게 해당되는 표현이고, 부부 공동의 육아가 아닌 엄마들의 몫이 되어버린데 기인한다. 여자로서의 삶에, 아내의 삶이 추가되고, 거기다가 엄마로서의 삶이 추가되면서 엄마의 역할은 처음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처음 하는 일상적인 행위에 남편이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아내에게는 큰 힘이 된다.
두 번째는 아내에게 하루 중 단 몇십 분, 몇 시간만이라도 자유시간을 주는 것이다. 나의 아내는 아이를 낳고, 손목이 아파 병원에 치료를 받으러 가는 그 시간이 그렇게 즐거울 수가 없었다고 했다. 엄마들은 아이가 태어나면 온통 아이에게만 신경을 쓰고 있어서 사실 많은 시간밖에 나가 있기도 어렵다. 가장 좋은 것은 친정부모님, 시부모님 찬스이지만, 그래도 부부가 함께 시간을 보낼 여유가 없다면 잠시라도 아내에게 산책하고 커피 한잔 할 수 있는 시간을 주면 어떨까? 그 잠깐의 시간 동안 아내는 엄마가 아닌 온전한 '나'로서의 시간을 가질 테니 말이다.
마지막으로 남편이 육아의 보조자가 아닌 공동의 책임을 갖는 주 양육자로서 태도를 갖는 것이다. 시대가 바뀌고, 남녀의 역할이 많이 바뀌었다고 하지만, 여전히 독박 육아라는 용어가 쓰이는 걸 보면 육아는 여전히 엄마의 몫인 것 같다. 어쩌면 육아에 소요되는 절대적인 시간은 엄마가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시간의 문제가 아니라 태도의 문제이다.
이렇게 된 이유는 엄마들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본다. 아빠들은 뭘 해도 엄마의 성에는 안찬다. 분유를 타는 것도, 기저귀를 가는 것도, 목욕을 시키는 것도.. 그러다 보니 맘에 안 드는 부분이 있으면 아빠에 대한 비난을 퍼붓고, 이에 아빠들은 의기소침해져서 육아에 무관심하게 되기도 한다. 나 역시 그랬다. 하지만 조금 생각을 바꿔보자. 엄마로서의 역할, 아빠로서의 역할은 누구나 처음이고 익숙해지는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엄마들은 아빠가 서툴다는 걸 조금은 인정하고, 함께 참여할 기회를 많이 주자. 아빠 역시 아빠의 역할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며, 아이를 키우는 일은 함께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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