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욕을 들어야 할 사람은 내가 아니었는데.

긴장감 넘치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 04

by 누리달


어린 시절 아버지는 거의 매일 술을 드셨다. 두꺼비가 그려져 있는 유리병.


참 웃긴 게, 지금의 난 술을 좋아하지도 않는데 최근 알코올 도수를 낮추어 다시 나온 두꺼비 그림이 왜 익숙하고 반가운 건지. 그것을 보고 피식- 웃다가도 그런 내가 짜증이 나기도 했다. 내 어린 시절의 안 좋은 기억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그 술병이 뭐 그리 좋다고.






아버지가 술을 조금 더 많이 드신 날이면 나는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일찍 잠을 자려 노력했다. 가능하면 수면제라도 먹고 정말로 못 일어나게 되길 바랬다. 깨어있으면 몇 시간이고 같은 말 고문을 당해야 했으니까.


처음에는 말려보려 노력도 했었다. 아버지가 뭐라 뭐라 하시면 어린 내 딴에 논리적으로 반박을 하고 설명을 하기도 했다. 엄마는 옆에서 '소용없어'라고 하셨는데 나는 오히려 그런 엄마가 답답했었다. 말이 안 통한다며 그저 놔두는 엄마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겠지만 내가 보기에 엄마는 최선을 다 하지 않았다.


왜 이런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들어주고 있어야 하는 것인지도 이해하기 어려웠지만, 초등 고학년 즈음이 되어서는 나도 지쳐서 '그래 당신이 다 옳다'라고 하기도 했는데, 그럼에도 끝나지가 않는 상황은 더 힘들었다.


아니, 하는 말마다 다 맞다고 해 주는데도 어떻게 끊임없이 불평불만이 나올 수 있는 것일까. 게다가, 상관도 없는 옛날 일까지 끄집어내어서.





무슨 말씀을 그리 많이 하셨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버지는 온갖 것에 안 좋은 감정을 붙여서 화를 내셨다. 이웃의 어떤 행동이나 말투, 본인의 많은 형님들에 대한 험담 등등. 그러다 보면 고등학생 때 돌아가셨다는 본인의 엄마까지 찾으시곤 했다.


술을 드신 주정의 어느 부분에서는 사춘기 때까지 엄마의 가슴을 만지며 자랐다는 고정 레퍼토리가 나오는 날도 있었다. 한 동안 안 듣고 살아서 잊고 지냈었는데, 최근 어느 날엔가 나의 다 큰 아이들(손주들) 앞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들었을 때에는 정말 머릿속이 하얘졌었다.


나는 왜, 내 아이들 앞에서까지 이 이야기를 듣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아마 내 기억이 맞다면, 그날이 내가 아이들 앞에서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그만 좀 하라고 버럭버럭 큰 소리를 내고 그 술자리를 끝낸 날이었을 것이다)





더 싫은 건, 아버지의 불만은 대부분 외부 다른 사람과 관련된 것이었는데 왜 그 사람과 직접 담판을 짓지 않고 집에 와서만, 내 잘못도 아닌데 왜 그 욕은 내가 듣고 있어야 하느냐는 것이었다.


어디선가 술을 거나하게 드시고 와서는 현관문 닫자마자 온갖 욕설을,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몇 시간이고 쏟아내시다가 지쳐서 잠이 드시는 모습을 한 달에도 몇 번씩 봐야 하는 것은 어렸던 나였다.


물론 밖에서도 뭐 그리 좋은 사람은 아니었을 것이다. 내 어린 시절 기억에도 골목길에서 혹은 길바닥에 주저앉아 누군가에게 욕을 날리시거나 소리를 지르시는 일들도 많았으니.


아무튼. 사람들의 부정적인 면만 보인다면 안 만나면 될 것을, 성격 안 맞는 것을 뻔히 알면서 왜 그렇게 만나고 감정 상하고 집에 와서 욕하고 술주정하느라 애꿎은 가족들에게만 피해를 주시는 것인지.

(결국 그래서 지금은 만나는 친구 한 분이 없으시지만)


내가 아버지의 편을 들어도 들지 않아도, 내가 앉아서 듣고 있어도 듣고 있지 않아도 나는(엄마와 동생도) 아버지의 온갖 부정적 감정을 다 받아내야만 했다.


차라리 입을 다무는 것이 그나마 나은 선택이었고, 도망칠 곳조차 없던 그 당시에는 그것이 최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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