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제 계좌로 돈 좀 보내주세요.

긴장감 넘치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 05

by 누리달


친구들과 놀러 간 아이가 톡을 보냈다.

"엄마, 제 계좌로 얼마 보내주세요."

집에 용돈이 충분히 있는 아이였기에 미리 안 챙겨갔냐고 물었더니 그렇단다.


바로 아이에게 계좌에 돈을 보내주면서 혼자 피식 웃었다.

잔소리 안 하고 보내줄 수 있는 지금의 내가 좋다.






성인이 되고 어느 날, 늦게까지 술을 마시다가 택시비가 떨어져서 몇 번인가 아버지에게 돈을 보내달라 전화를 했다는 친구의 이야기를 듣고 신기하던 기억이 있다. 똑똑하던 친구였기에 처음에는 '어떻게 뒷 일을 생각 안 하고 돈을 다 써버릴 수 있지?' '똑똑하지만 돈 개념은 없는 건가?'라고 생각을 했었다.


처음에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었다. 친구의 행동이 '사치'나 '탕진'으로 연결이 되기도 했었는데 이상하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다. 그렇게 한 참을 생각하고는 의지할 데가 있어서 그렇게 마음 편하게 술을 먹고 놀 수 있었던 것이라고 결론이 났다.


그리고 그 친구가 무척이나 부러워졌던 그 감정이 아직까지 잊히지가 않는다.


내 지갑 속 한 켠에는 늘 꼬깃한 지폐 한두 장이 숨겨져 있었다. 최소한의 '혹시 모를 비상금'이라는 것이 없던 때가 없었다. 타고난 성향인 것도 분명 있겠으나, 혹여 '내가 택시비가 부족해서 아버지께 전화를 한다면?' 이런 일은 상상조차 되지 않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마 그 뒤에 돈을 버는 것도 모으고 불리는 것도 그 친구가 훨씬 더 잘했을 것이다.


고3 수능에 실패하고(실패라고 쓰기도 민망하다. 당연한 결과일 것이다) 재수 학원 등록해달라는 말을 못 해서 한 참을 고민을 하다가 차라리 주변 친척분께 돈을 빌려달라고 해 볼까?라는 상상이 더 편했을 정도이고. (물론, 상상으로 끝났지만)


결혼을 할 때에도 부모님께 돈을 받을 것은 생각도 안 해 봤다. 그것이 단지 정말로 찢어지게 가난해서 돈이 한 푼도 없어서만이 이유의 전부는 아니었을 것이다.


나에게 아버지는 그러한 존재였다. 돈이 많이 필요한 일이든 아니든 크기는 상관없었다. 그저 무슨 일에서든 나에게는 '내가 기댈 수 없는 분'이었다.


그래서 언젠가 나에게 아이가 생긴다면, 가벼운 농담 섞인 잔소리와 함께 그 정도 돈은 편하게 주고받을 수 있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시간이 벌써 이렇게 되었구나.






내 살림을 하게 되면서부터 여전히 문득문득 생각이 난다. 음식 한다고 창문을 열 때, 자기 전 온 집안의 창문과 커튼을 꼭꼭 닫는 습관. 변기 뚜껑을 꼭 내릴 때, 그리고 별 일 아닌 것으로 아이들에게 화를 내거나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때 등등.


소소한 생활 습관들이야 다 좋은 것이라고,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게 또 꼭 그렇게도 중요한 일이었을까. 내가 좋고 필요해서 하는 일이라면 상관없지만 귀에서 피가 난다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들었던 말들이었기에, 때론 내 그런 습관들이 싫어지기도 한다.


음식을 할 때는 냄새가 나니 여기저기 창문을 열어 놓아야 하지만 많이 열면 타인에게 내 집 안이 노출될 수 있으니 '얼마만큼'이라는 계절 별 본인에게 맞는 기준이 있었고. 환풍기를 틀어야 하지만 시끄러운 것은 또 싫으셨던 분.


집 안에서 큰 소리가 나면 이웃에게 피해가 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하지만 본인이 술 드시고 온 날은 아파트 단지가 쩌렁쩌렁 울릴 만큼 소리를 지를 수 있으셨던 분.


주말 저녁, 외할아버지께서 뉴스를 챙겨 보시니 뉴스가 시작되기 전에 시골에 계신 외할머님께 전화를 드려야 한다고 강요하실 만큼, 누구에게 전화를 걸 때조차 '상대방이 지금 뭘 하고 있을 시간인지'를 생각하시고는 본인이 그만큼 '신경 써준 것'만 평생 생각하시며 그만큼 '못 받았다'는 것에 집중하고 서운해하시던 분.


본인은 부모님이 일찍 돌아가셔서 평생 후회로 남으니 살아계신 부모님께 잘해야 한다고,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항상 강조하시면서 아내 앞에서 장모님 험담(욕)을 할 수 있는 분.


돈 한 번 많이 벌어본 적 없으시면서 돈 많은 이들을 무조건 욕하시고는 '돈이 사람을 만든다'라고 하시던 분.


본인은 엄마밖에 없다고, 가장 소중하다고 엄마에게 잘하라고 하면서 엄마에게 폭력을 쓸 수 있는 분. 그래서, 나를 향한 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언제 무엇이 깨지게 될지 몰라 불안에 떨던 날들을 만드시던 분.


"난 안 돼. 원래 이렇게 생겨먹었으니 내가 화날 때는 아무 소리도 하지 말고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놔둬. 네가 고치고 나에게 맞춰. 난 못 바뀌고 안 바뀔 거니까!"라고 가족들에게 강조하시는 분.


본인 감정은 다 터트리고 사시면서 내 감정이 터지는 것을 단 한 번도 허용하지 않으셨던 분.


.... 모순덩어리.






불편한 어버이날이 지나갔다. (야호!)

새삼 어버이날이라고 챙기는 것도 싫고 안 챙기는 것도 불편했던 하루. 나름 챙기면 '이런 날에만 챙기는 것은 싫다'라고 하시고, 안 챙기면 '부모님께 잘해라'라고 실 것만 같고 예측이 불가능하신 분.


막상 통화하게 되면 그저 별 다를 것 없는 주말 안부 인사처럼 끝날지도 모른다. 기분이 좋으신 상태였으면 '그래 고맙다'하실지도 모른다(드물게 그런 날도 있다). 아버지의 화난 얼굴은 내 상상일 뿐이니까.


그래도 나는 마음이 그렇다. 여전히 아버지와 관련된 일이라면 시작도 하기 전에 울렁울렁.


그래서 여전히 어떤 '날'들이 싫다. 아무도 나에게 시키지도 않은 일에 뭔가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은 압박감으로 변하고 긴장이 되어서 소화가 안 된다(그래도 정말 많이 좋아진 편이다).


많은 것들에 대해서 돈이 없는 것이 원인이라 생각을 했던 때도 있었는데 뒤돌아 생각해보면 많은 것들이 돈 문제가 아니었다.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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