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감 넘치는 가정, 폭력에 노출된 아이. 06
언제인지 기억나지는 않지만 초등학교 입학 전이었을 것이다. 어디선가 '아이는 엄마의 뱃속에서 10개월 동안 자란 뒤에 세상에 나온다'라는 정보를 알게 되던 날이 기억에 남아있다.
10개월.
가만히 생각해보니.. 엄마 아빠의 결혼식 사진 속 날짜와 내 생일의 차이가 10개월이 안 되었던 것은 어린 나이에 엄청난 충격이었고,
엄마에게 이상하다며 질문을 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너 임신해서 결혼했지"
매번 본인의 분노, 울분, 짜증, 그리고 간혹 즐거움 등 순식간에 바뀌는 많은 감정들을 격하게(내 기준에서는) 표현하시는 아버지와는 달리 엄마는 감정 표현도 그것을 구구절절 설명하시는 일도 없으신 분이셨다.
그래서 다행히 어느 가정에서는 고정 레퍼토리라던
'너 때문에 네가 생겨버려서 할 수 없이 결혼했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이렇게 되었다'는 말을 직접 듣고 자라지는 않았지만..
내가 보기에 엄마는 행복한 결혼 생활도 아니었고, 간혹 언어폭력과 신체적 위협 또는 폭력을 당하는 결혼 생활을 하셨는데 심지어 결혼했을 때 나이도 엄청 어린 편이셨기에.
내가 보기에 엄마의 이미지는 자립심이 강하고 혼자서도 뭐든 해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분이었기에 '내가 생겨서 엄마가 이런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라는 것이 마음 한편에 자리를 잡았던 것 같다.
"나 때문에"
내가 그것에 대한 생각을 계속했는지 안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내 성격 상 그냥 굳이 수면 위로 띄우지 않고 '그렇구나' 하면서 가라앉혔을 것 같긴 하고.
내 '죄책감'은 거기서부터 시작이었을까.
그 뒤로도 끊임없이 내 발목을 잡았던 그 감정이 그 이전 어딘가에 또 있을지 모르겠으나.. 내 기억에 남아있는 것 중에는 그것이 처음인 것 같다.
나는 뭐든 꾸준히 하는 법이 없었다.
피아노도 어디론가 조금 저렴하든 곳을 찾아서 등록을 시켜 주셨는데, 조금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때에는 왜 그만두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고학년 즈음에 처음 배웠던 태권도는 정말 재미있었다. 나 스스로 '재미있다'라고 느꼈던 것은 처음이었던 것 같은데, 딱 1년 하고 이제 그만해도 되지 않겠느냐는 부모님의 말씀에 나는 그냥 그렇게 포기를 했다.
다른 학원들을 다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나에게 돈 들어갈 다른 일은 없었는데.
"재미있어요, 더 하고 싶어요"
나는 그 말을 못 했다.
아니, 어쩌면 한두 번은 소심하게 부모님께 이야기를 했던 것 같기도 했지만 거기까지였다. 태권도는 내 삶에서 꼭 필요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했던 것까지 기억난다. 단지 '재미'를 위한 것은 나에게 사치라는 것을.. 그때 배웠던 것 같기도.
그 뒤에도 마찬가지였다. 간혹 단과 학원을 다니기도 했으나 그리 길지는 않았다. 바로 눈에 보이는 성과가 없으면 더 도전하지 않고 욕심내지 않고 포기를 했다.
어차피 성과도 안 나오는 것, 거기에 들어가는 돈이라도 아껴보자.
생각해보면 나는 늘 그랬던 것 같다. 내가 끈기가 없고 대부분 포기해버리는 습관을 전부 부모님의 탓이라고 하고 싶은 것은 아니고, 돈 한 푼 안 쓰고 공부까지 잘하면서 돈을 잘 벌 수 있는 방법을 찾았다면 더 좋았겠지만 그건 또 아니어서 아쉬운데..
그분들이 뭐라 하셨든 하지 않으셨든 나는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돈을 안 쓰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던 것 같고, 그래서 나는 무의식 중에서도 최선을 다해 당장 돈을 덜 쓰는 쪽을 선택하며 살았던 것 같다.
잘하는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그나마 사고 안 치고 돈은 안 들어가는 그냥 착한 아이.
그게 나였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내 마음이 가장 편안했던 시기는 성인이 되어서 내가 돈을 벌 때였고.
내가 알고 있는 나의 첫 '우울'의 시작은 결혼하고 직장을 옮기려 일을 그만 그만두자마자 임신이 되어 버려서, 집에서 남편이 벌어오는 그리 많지 않은 돈으로 내가 먹고 자고 생활해야 하는 현실에 부딪혔을 때였다.
그때 나는 아무도 나에게 뭐라 하지 않았는데 임신 중에 내가 먹는 라면까지도.. 돈 계산을 하면서 아까워하고 있었다. (집에 쌀은 많았으니)
머리로는 '나는 뱃속에서 아기를 키우는 중이다'라고 하면서..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돈도 벌지 않는 내 뱃속에 좋은 음식이 들어가는 것도 아까워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고 안 먹고 안 쓰고 살았던 것은 절대 아니다. 그가 제안하면 외식도 배달음식도 잘 먹으면서 살았다.)
어디서나 눈치 보는 그런 상태로.. 참 오래도 버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