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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Jul 06. 2022

집도 재산도 수입도 없다. 지금은 그렇다.

혼자 있는 시간이 가장 편안한 이유.


머리로는 이해해도 마음은 자꾸만 가라앉는다. 오래되어서 익숙해질만큼 익숙해졌는데도 문득문득 날 잡고 끌어내리고 있는 내 안의 어느 꽁꽁 숨겨 놓은 오랜 감정들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녀석들, 그래도 많이 나간 줄 알았는데 아직 거기에 꽤 많이 남아 있구나.


나에게 사람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그러한가 보다. 특히 오래된 지인들을 만나는 일은, '여전히 그러고 있다'라는 도돌이표 현실, 비교돼서 더 안 좋게 보이는 현실을 수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이 또한 지나가리오.

지금은 영원이 아닌 순간이다. 어디론가 흘러가고 있는 그중의 찰나. 먼 훗날 그런 시기도 있었지 하면서 웃어넘길 수 있을 만한 짧은 시기일 것이다.


그렇게 믿고 싶은데.


어찌 되었든 지금은 남편은 일을 안 하고 있는 상태이고, 나 역시 돈을 벌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자산도 없는데 수입이 없는 부부. "도대체 왜?"라는 질문에 변명은 수십 가지일 테지만, 아무튼 그렇다.


"또?"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곱씹다 보면 몸서리가 쳐진다.

제발 내 머릿속에서 나가줄래?


짧지 않은 결혼생활 동안 한 가정의 가장인 그는 얼마나 많이 직장을 옮겼고 얼마나 많은 기간을 쉬었을까? 최근 몇 년은 그래도 열심히 살았다고 하지만, 코로나 19 덕분에 일을 하지 않고 쉬었던 기간이 추가되었다.


그 와중에 '또'이다. 그 단어는 자꾸만 나를 이 암울하기만 한 현실을 직면하게 한다.






생각은 감정을 붙들고 점점 더 커진다.


남편이 벌어다 주는 돈으로 우리 집 한 달 생활비만큼의 아이들 학원비를 쓰는(이미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녀들을 반갑게 만나고 나서, 왜 마음이 자꾸만 가라앉는 것일까.



내 마음이 가장 크게 불편한 지점은 어디일까.



나는 집에서 아이들 학원비를 지출하는 대신 내 시간과 노동력을 썼으니, 눈에 보이는 수입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 비싼 학원비만큼은 아니더라도 그 중간 어디쯤 만큼 생활비(교육비)를 덜 쓰면서 살 수 있는 데에는 힘을 보탰다.


...라고 소리를 (특히 남편에게) 지르고 싶은 것을 보니,


내 감정은.. '그의 모습'이 아니라 '나'에게 더 많이 머무르는 듯하다.



내가 육아에 힘쓰고 교육에 신경 쓰며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던 시간들이 숫자로 보였으면, 혹은 아이들이 공부를 잘하는 등의 눈에 보이는 성과가 있었더라면 내 마음이 조금 덜 우울했을까?


어떤 일에서도 금액이나 노력과 성과가 정비례하지는 않는다. 알고 있다.


그저.. 어느 정도 돈만큼의 가치가 있는 일을 나는 나름 열심히 하고 있었다는 것.

나는 그 '인정'이 필요한 것 같기도.






집도 없고 재산도 없고 수입도 없다. 지금도 그렇다. 그래서 "또!"라는 말에 울컥, 부끄러움을 동반한 복잡한 감정이 먼저 튀어나오지만, 좌절감과 동시에 억울함도 그 아래에 숨어있다.


오랜 지인들을 만나고 온 그도 나와 비슷한 감정을 겪는 듯 보인다. 서로 굳이 자세하게 더 묻지는 않는다. 네 맘이 내 맘이겠지 뭐.


그래도 나와 그는 '우울'과 '방황'을 포함,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꾸준히 하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그런 서로를 소심하게 응원하며 그저 지켜보는 중이다.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에서 보면 비극 이랬던가.


지금 내 삶은

그 반대라고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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