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관찰, 알고 있는 것도 하기 싫어서 집어던지고 싶다.
어디서부터 시작인지 잘 모르겠다. 어떤 것들이 나의 우울을 건드리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고 그 뒤에 기억조차 나지 않는 아주 소소한 것들이 추가로 툭 툭 건드렸을 텐데, 무작정 휘몰아치는 감정에 빠져 그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하는 시간들이 있다.
아주 오랜만에 목 아래부터 배꼽 근처까지가 간질간질하다. 그냥 그렇게 생각되는 것이 아니라 정말로 느껴진다. 내 안에서 무언가 꿈틀꿈틀 하면서 어떠한 길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하다.
그 길로 우울이라는 것이 지나다니는 것일까.
그것은 때로 내 몸의 어딘가에 통증으로 자리잡기도 한다. 근육은 긴장되고 소화는 안 되고 피부는 가렵고 몸은 무언가를 가득 짊어진 듯 무거워진다.
누가 건들기만 해 봐라 터트려 줄 테니, 라는 심정으로 눈물을 넘치기 직전으로 담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아주 오래전,
누군가에게 한 마디를 듣고 왔거나 소소하게 거절당하거나 마음처럼 잘 안 되는 상황을 겪었을 때,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던 남편의 모습이 생각난다.
뭐 그런 걸로 그래.
세상에 쉽기만 한 일이 어디 있어.
누구나 다 그렇게 살잖아.
늘 좋은 것만 보고 듣고 살 수는 없는 거잖아.
왜 너만 유난을 떨어.
그걸 지켜보는 내 마음이 딱 그랬다. 대놓고 그런 말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지만 그럴 때마다 좋은 말로 위로를 해 주지도 못했다. 다들 그렇게 사는 세상, 육아도 집안일도 모조리 나에만 맞겨놨으면서 기본급 받는 일 뭐 그렇게 힘들다고 징징대고,
나도 너무 힘든데, 결국 혼자만 게임 속으로 도망가서 하고 싶은 것만 하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살면서.
왜 너만 이 정도 일로 힘들다고 주저앉아.
지금 내가 그렇다. 아무도 시키지 않는 일에 대해 혼자 마음이 급해지고 욕심이 많아진다. 내 지난 시간들이 아무것도 아닌 것만 같은 감정은 점점 더 커지고 자괴감으로 이어진다.
동시에, 그런 내 지난 노력들을 알아주지 않느냐고 서운함이 폭발한다. 그것을 말로 풀어낼 능력도 없으면서 뜬금없이 왜 인정해 주지 않느냐고 따지고 싶은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엉뚱한 부분에서 터지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는 한 마디에 다 포기하고 주저앉고 도망가고만 싶어 진다.
그것들은 원을 그리면서 점점 더 커진다.
'무엇을?' '왜?' '어떻게?'등의 이성은 가출한 지 오래이다.
우울감은 무기력의 손을 잡고 자기 비하를 찾아다닌다. 나 스스로가 불쌍하고 안 되고 못 하는 이유가 점점 불어나 결국 세상에서 쓸모없는 인간이 되어 버리는 것은 순식간이다.
감정은 공유된다. 어쩌면 내 옆의 그도 그런 상태일지 모르겠다. 똑같은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 주지 않으려 최대한 서로의 이런 감정을 외면한다. 특히 그는 감정을 설명하고 들어주고 그냥 인정해주는 것 등을 잘 못 하는 편이다.
같이 손잡고 우울에 빠지는 것도 문제이겠지만, 정작 필요한 것은 채우지 못하고 쓸데없는 것들만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공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주 오래 쌓인 감정들이다.
배운다고 해서 한 순간에 좋아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저 내 감정을 관찰해 보기.
그것이 시작이고 가장 중요할 텐데..
여태껏 잘해 오고 있었는데.
우울감에 깊게 빠지면 알고 있는 것도 하기 싫어서 집어던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