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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Aug 12. 2022

화장실 가도 돼요?

눈치 보며 자란 아이. 너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날, 수돗가에서 친구와 함께 양치를 했던 날이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뭐,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같이 놀러 다니고 하는 등의 일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가족이 아닌 사람과 양치를 할 일이 없었던 때였다. 


칫솔질을 시작하고, 나는 옆의 그 아이를 힐끗힐끗 쳐다보면서 신경 쓰지 않은 척 열심히 평소보다 더 오래 양치를 했고, 그 아이가 끝낸 뒤에도 그 아이를 따라 하지 않은 것처럼 보이기 위해서 조금 더 하다가 양치질을 끝냈었다.


양치 그까짓 게 뭐라고. 내가 얼마큼 어떻게 하든 무슨 상관이라고 그랬는지.




중학교 때에 우리는 남녀 합반이었다. 사춘기 아이들의 누가 누굴 좋아하고 사귀고 하는 등의 미묘한 기류가 흐르던 공간. 


남녀 관계의 일은 아니었지만, 가까이 앉아있던 조금 친했던 남자아이가 나에게 펜을 빌려달라고 했었고, 당시 나는 그 펜은 정말 아끼던 거여서 빌려주기가 싫었었다.


그나마 편안한 아이였고, 그래서 겨우겨우 싫다는 말을 했는데 돌아온 대답은 "야.. 너, 그렇게 안 봤는데"였던 것 같다.


그저 단순한 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화가 나거나 삐지거나 실제로 실망을 한 것도 아닌 것 같았던 그냥 스쳐 지나가는 그저 그런 말.


그 말을 듣고 그냥 넘기기도 껄끄럽고, 안된다던 펜을 다시 빌려주는 것도 이상해서 나는 다른 펜을 건네주었던 것 같아. "이건 괜찮아, 이거 써라"라고 쿨하게 말은 했지만..


수업 시간 내내 그것 때문에 나에게 실망하면 어쩌나 싫어하면 어쩌나, 그냥 처음부터 쿨하게 빌려줄걸 그랬다.. 하는 생각이 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나는... 

아무리 급해도 수업시간에 손 들고 화장실 가고 싶다고 말을 하지 못 하는 아이였다.






첫째가 유치원을 졸업할 즈음, 초등학교를 입학해서도 가끔씩 "엄마, 똥 싸도 돼요?"라고 물어볼 때가 있었다. 어릴 때야 대소변 가리는 연습도 하고 그러니 그러려니 하는데..


다 커서도 물어보기에 몇 번이나 "그런 건 안 물어봐도 돼"라고 말은 해 주었는데도 가끔씩 반복되던 일이었다.


"똥 마려운 걸 어떻게 해, 조절할 수 없는 건데 왜 물어봐? 그런 건 허락받지 않아도 돼. 혹시 엄마가 무서워?"라고 물어본 적도 있었다.


아이는 대수롭지 않게 "그런 건 아닌데 그냥.."이라고 넘겼고, 그것이 그냥 곤란해서 대답을 그렇게 했을 뿐인 건지 아니면 정말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 습관이 된 건지 알 수는 없다.


다만, 아이가 내 눈치를 보는 건가 싶어서 아주 오래 마음이 쓰였던 일이었다. 눈치 보며 자란 내가, 그것이 얼마나 힘들고 불편한지 잘 알고 있으면서 나도 모르게 내 아이도 그렇게 만들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생각이 되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무거워지던 때가 있었다.


여전히 나는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그것에서 벗어나는 것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내 아이들만큼은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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