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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리달 Nov 19. 2022

쉬는 날 왜 회사를 가? 그냥 여기 있어

중년 그리고 사회 초년생 04


새로운 일을 시작한 지도 벌써 2개월이 되었다. 조금 좋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하루도 일주일도 그 전과 다르게 무척이나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아주 느리지만 그것에도 적응하고 있는 중이다.


사춘기 아이들은 일요일 아침부터 번갈아가면서 '내일 학교 가기 싫다'를 주문처럼 중얼거리곤 했는데, 일을 시작하고 나서 나도 꼭 그 모습과 닮은꼴이 되었다. 그때에는 '나중에 생각해, 뭐하러 지금 스트레스를 받아, 일단 지금은 안 가잖아'라고 말을 하곤 했는데 막상 내가 그 모습이 되니 알면서도 쉽지가 않았다.


일을 시작하고 처음 2~3주 동안 나는 금요일과 토요일 하루만 조금 편안했을 뿐이고 일요일부터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이 불편해졌는데, 동시에 끊임없이 불편한 내 생각을 계속 관찰했다. 그건 내가 지난 2년 동안 나름 책을 읽으며 배운 것들이었다.


뭐 거창한 일을 하는 것도 아니었고 집에서까지 해야 할 일들이 있는 것도 전혀 아니었는데도 내 몸은 집 안에 있으면서 생각은 자꾸만 회사로 달려갔다. 일요일 내내 나는 자꾸만 가출(?)해서 회사에 가 있는 내 생각을 발견하고 붙들고 잡아오는 과정을 반복했다. 평일 저녁에도 마찬가지였다.


'거기 가면, 뭐 얻을 것이 있니? 왜 굳이 가서 스트레스를 보고, 여기로 가져오니?'


나는 계속 내 생각에게 말을 걸었다.


'가지 마, 그냥 여기 있어.'





'회사 가기 싫다'라는 자동적 사고는 아침부터 나를 아주 무겁게 눌러댔는데, 다행히 여유가 있는 출근시간이라 나는 예전에 조금 도움을 받은 것 같은 어설픈 명상을 다시 시작했다. 사실 뭘 제대로 할 줄 아는 것은 아니지만 바쁘니까 더 빨리 더 많이 무언가 일을 해야 한다는 강박적 생각에서 벗어나 잠시 그저 앉아서 긴 호흡을 할 뿐이었는데, 일단 그것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었다.


명상을 하려고 하면 늘 머릿속에 오만가지 생각들이 떠도는 것을 조금 더 잘 볼 수 있었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완전히 비우는 것은 어려우니 대신에 '괜찮아'라는 말을 던지곤 했다.


그렇게 아침에는 명상 흉내내기를 하고, 퇴근 후와 주말에는 자꾸 회사로 달려가는 내 생각을 집 안으로 불러들였다. 짧은 시간이지만 일하는 내내 평범한 거절을 들을 때마다 '감사합니다'를 생각했으니 2~3주 동안 하루 수백, 수천번은 그 말을 했을 것이다.


환경적 영향, 오랜 습관 등으로 인해 좋은 것들이 자동적으로 되지 않으면 억지로라도 해야 한다. 나는 최근 1~2년 그러한 것들을 배우고 있는 중이었다.


그렇게 약 한 달을 보내고 나니 이제는 정말로 휴일에 나 자신이 오롯이 집 안에 있는 것 같이 느껴진다. 그리고 조금은 더 편안한 마음으로, 그저 도망가고 싶어서가 아니라 조금 더 진지하게 '나는 무엇을 원하는 것일까, 무엇을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한다.






나는 내가 아무것도 없는 인간이라는 것이 무척이나 싫었다. 이 나이쯤 되면 뭐 하나라도 이뤄낸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은가? 누구처럼 친정집이 부자이던가 아님 기존에 모아놓은 돈이 있던가, 주식이나 부동산 투자 실력이나, 단절되었지만 그 전의 경력이라도 있어서 힘겹지만 찾아갈 곳이 있던가 하는 것 말이다.


유감스럽게도.. 나는 약 15년 동안 하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아이 셋을 키운 것 같은 느낌인데 그것에 대한 것은 그 어디에서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기분이 들었고, 특히 최근에는 더더욱 그런 이유로 억울함이 불쑥불쑥 고개를 들이밀고 나온다.


아무튼 마음은 여러모로 급하고 현실은 바닥인데 심지어 그 어디에서도 버티는 것조차 잘 못 하던 사람이고, 이번에 일을 시작하면서 그 모습을 또 한 번 발견한 것 같지만...


그래도 이번에는 그런 나 자신을 똑바로 응시하고 관찰할 수 있는 것 정도는 된 것일까? 이제는 못난 내 생각의 흐름을 관찰하는 것도 나름 재미있어졌다.


'이것조차 힘겨워하다니. 지금은 그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부끄럽지만 인정.'


잘 모르겠지만 그냥 그런 것 같다. 최소한 지금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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