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lver lining
2022.11.15
병원에서 피검사 결과를 듣고 모든게 멈춰서버렸다.
주사시간, 먹던 영양제, 건강식단, 마음안에 기대, 설렘 그리고 희망. 컴퓨터앞에 붙혀놓은 긍정, 격려의 메모들도 다 떼어버렸다.
나는 직관이 좋은편이다 그래서 어떤일이든 내게 오는 직감을 믿고 따라왔다. 딱 보고 되겠다 싶으면 과감하게 밀고나가고 안되겠다 싶은건 빨리 포기하는편이다. 시험관도 아이를 갖는일도 내가 아이를 간절히 원했고, 나의 성적건강(?)에 자신있어 되겠다 싶었는데 이런 나의 직감은 빚겨나갔다. 그래서 나의 머리속이 더 혼란스러웠던거같았다. 이건 나혼자 할수있는게 아니였다...
모든걸 그냥 내려놓고싶었다.
그래서 다 내려놓았다. 그 어떤것도 애쓰고 싶지도 않았고 무기력해졌다.
이렇게 기나긴 겨울이 지나 봄이 올때까지 나는 오로지 일에 몰두했다. 일할때만큼은 아무생각이 안나고, 노력하는만큼 성과가 나오고 또 그 결과로 나를 평가해주기 때문에. 일하면서 안좋은 생각들을 떨쳐내려고 했던거같다. 계속 재택근무제였지만 아무도 없는 사무실에 그냥 일주일에 2-3번씩 나가 집밖에 다른환경에 있어주는것도 사실 많은 도움이 됬다...
마치 어두운 터널안에 갇힌듯했다.
나를 그동안 괴롭혔던 모든것들이 원망스럽고 내자신이 안쓰러웠다...이런 힘든 시간들속에도 나를 놓지않고, 붙들고 있었던것은 오로지 나자신 혼자뿐이였기때문에...
요즘 한국에 남자들이 과할정도로 와이프를 유리다루듯 여왕모시듯 맞춰주는것까지 바라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시험관할때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고 감싸주길 바랬던 내 마음과 달리 그러지못한 남편이 많이 미웠고 실망스러웠다. 그리고...
많이 외로웠다.
그리고 2023년 1월 7일.
한국에 계시던 외할머니가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10년을 한국에서 요양중이셨던 외할머니..파킨슨병 때문에 움직이시진 못해도 늘 식구들이 방문할때면 거울보고 용무를 단정히하고 기다리셨던 소녀같이 고았던 우리 외할머니. 내 결혼사진을 보여드렸을때 방긋 웃으시더니 나를 찾으셨다던 우리 외할머니...
코로나이후 또 캐나다로 이사 간 이후 얼굴뵙지못해 늘 보고싶고 죄송했는데...
다행이도 고통없이 주무시면서 평안히 눈을 감으셨다고 한다.
'외할머니 많이 보고싶을꺼에요 이제 편안히 계세요.
외할머니가 가장 이뻐하셨던 둘째사위..아빠랑도 만나셨겠네요. 우리아빠가 할머니 지켜줄꺼에요 걱정말아요. 안녕.'
엄마도 엄마를 잃어서 많이 슬프실텐데
딸걱정이 먼저이신가보다.
캐나다로 오신다고 한다.
딸보러ㅜㅜ
나는 엄마한테 기댈수있는 딸로 당분간 머물고 싶었다.
따스한 엄마품이 그리웠던거같았다.
말하지않아도 눈빛만 보아도 내가 뭘 말하고싶은지 뭘 원하는지 다 느끼시는 엄마.
보자마자 '그동안 애 많이 썼다' 라며
안아주시고 등을 두들겨주시는데 뜨거운 눈물이 내뺨을 타고 하염없이 흘러져내렸다.
그동안 마음속에 힘들었던 모든것들이 다 쓸어져 내려가는듯했다.
토론토에 와계신 동안 맛있는것도 먹으러 다니고,
나이아가라 폭포 근처 와이너리에도 신랑과 운전해서 구경시켜드리고 근사한 저녁도 대접해드렸다.
그냥 엄마란 존재로 나에게는 많은 위로와 힘이 되었다.
나의 엄마지만 그저 한 가정의 주부로 사시기에 그보다 더 훌룡한 점이 많으신 분이시다. 깊은 인품과 지혜 그리고 사랑이 많으신 어른다운 어른이시다. 자신보다 남을 더 품으실줄 알고 덕이 많으신 그런 엄마 딸로 태어나서 나는 정말 행복하고 하느님께 감사하다.
앞으로 계속 결혼생활하고 아이를 낳아 내가 엄마가 되서도 나는 엄마의 딸이란걸 잊지않고 엄마를 본받아 살아갈것이다. 엄마 아빠가 보시기에 부끄럽지않은 딸로...아직 너무나도 부족한 나이기에...더 잘하겠노라 약속하고 엄마와 함께한 2주란 시간을 뒤로하고 감사하고 죄송하고 사랑하는 심정이 뒤섞여 마음속으로 뜨겁게 울며 엄마와 공항에서 인사를 했다.
겨울에 이어 봄 그리고 여름이 시작하기전까지 걸쳐 신랑과 나는 여기저기 여행도 또 다녀왔다. 여행으로 그 허한 마음을 다 채울순 없었지만 그래도 새로운것들을 보고 맛있는것도 먹으니 기분이 좋아졌다. 신랑과도 그동안 애썼다며 서로에게 고마운 마음 미안한 마음 또 설명할수 없는 그런 감정들을 나누고 우리는 다시 미소지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러면서 눈시울 붉어지는 때가 많아졌는데 우리는 참..울보커플이다.
여행은 우리를 더 가깝고 성숙하게 만들어줬다 마술처럼. 그저 비행기타고 다른곳에 이동할뿐인데 도착하고 비행기문밖으로 첫발을 내딜때부터 우리는 다른사람이 되어있었다. 매일 똑같은 일상으로 지친 마음은 호기심으로, 늘 책상앞에 무거웠던 어깨는 가벼운 어깨로, 힘이 없던 눈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재미없는 농담도 깔깔대며 웃겨죽겠다한다. 여행이 주는 좋은기운이 우리둘에게 생기를 가져다주었다.
90년대 우리 추억의 노래도 있지않은가.
신랑과 차안에서 같이 노래부르며 달렸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마음이 울적하고 답답할땐 산으로 올라가 소리 한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가슴을 펴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누구나 세상을 살다 보면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을때가 있어 그럴땐 나처럼 노랠 불러봐 맞춰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기쁨과 슬픔이 엊갈리고 좌절과 용기가 교차되고 만남과 이별을 나누면서 이렇게 우린 살아가고 뜻대로 되지않을떄도 있고 맘먹은 될때도 있어 다 그런거야 누구나 세상은 이렇게 돌아가니까
다 이렇게 사는거야. 희비가 엊갈리는 세상 속에서. 내일이 다시 찾아오기에 우리는 희망을 안고 사는거야.
마음대로 일이 되지않을땐 하던일을 멈추고 여행을 떠나가 바다를 찾아가 소릴 질러봐.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 빠빠 빠빠빠 빠빠빠'
모든 구름에 silver lining 이 있듯이 지금 내앞에 어두운 구름뒤엔 항상 한줄기 빛나는 희망이 있다는걸 잊지말자. LA 산타모니카 해변가에서 본 희귀한 풍경이 마치 날 위로하는듯 하다.
힘들고 어렵고 포기하고싶을때 엄마가 늘 해주신 말씀도 생각났다.
'내일 태양은 다시 떠올라. 내일이 있으니 희망이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