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망증에도 좋아요
한의학에서 마음의 병을 치료할 때는 심장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뇌를 원신이 있는 곳(원신지부;元神之府)이라 하여, 뇌와 정신에 대해서도 일찍이 연관시켜 생각했는데요. 원신이란 근원적 정신 기능, 즉 정신작용의 근본을 일컫는 말입니다. 정신 의식, 기억, 사유, 감정 등을 포함하죠.
하지만 뇌보다는 오장육부에 속한 심장을 정신, 마음과 더 깊이 연결시켜 치료하는데 활용했어요. 심장을 왕(군주)으로 비유하며, 신명(神明)이 나온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신명은 정신을 뜻합니다.
학생이나 수험생들이 총명탕이란 한약을 먹는다는 얘기 들어보셨을 텐데요. 기억력을 좋게 해 준다는 총명탕도 그 하나하나의 약재를 살펴보면 심장 경락에 들어가 정신을 안정시켜 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한의학에서 각 장부는 특정한 감정과 마음 상태와 관련이 있는데요. 우울하고 슬픈 것은 폐, 생각하고 근심하는 것은 비장, 분노는 간, 놀라고 두려운 것은 신장, 기쁨은 심장과 연결됩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은 심장이 통솔하고 주관하고 있어요.
이에 대해 <유경>*이라는 옛 한의학 책에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우울함은 심장에서 동하고 폐가 반응하며, 생각하는 것은 심장에서 동하고 비장이 반응하며, 분노는 심장에서 동하고 간이 반응하며, 두려움은 심장에서 동하고 신장이 반응한다."
이렇게 심장과 정신을 연결시킨 것은 심장이 인간의 생명활동에 중요하고 심장의 박동이 멈추면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의 감정에 큰 변화가 생기면, 우리는 그걸 심장 박동으로 바로 느낄 수 있잖아요.
그리고 이것은 한의학에서 일찍이 육체와 정신을 함께 생각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는데요.
"혈(피)이 곧 정신이다."라고 해서, 눈에 보이는 피가 정신의 기초가 되고 이러한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었을 때 정신활동이 가능하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피가 갑자기 부족해졌을 때 심장이 두근거리고 머리가 어지럽고 아플 뿐 아니라, 헛것이 보이고 들리는 의식의 문제까지 생길 수 있으니까요.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 같나요? 하지만, 서양의학에서 정신과 육체를 연관시켜 생각한 것은 역사가 그리 길지 않아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음의 병이 있는 사람들에게 그 개인의 문제인 양 성격 탓을 하고, 육체의 병이라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얼핏 추측할 때, 오히려 한의학에서 정신질환을 미신과 결부시켜 제대로 치료하지 않았을 것 같지만 실은 그렇지 않아요.
예로부터 물질적인 피와 정신의 관계에 대해 깊이 생각했기 때문에, 이렇게 정신활동에 중요한 피를 만들어내는 심장이 정신활동을 주관한다고 중시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심장 경맥의 혈자리들은 정신 활동과 깊은 관련이 있고, 마음을 안정시켜주는 효능이 있습니다.
그중에서도 신문 혈은 심 경맥의 원혈로, 심장의 상태를 진단하고 치료하는데 가장 많이 활용되는 혈자리입니다. 신문 혈 위에 가만히 손을 대어 보면, 맥이 뛰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한의사들이 맥을 잡는다고 할 때 사용하는 부위는 아니지만, 신장의 상태를 신 경맥의 원혈인 태계 혈을 통해 살피는 것처럼, 신문 혈을 통해 심장에 대해 확인할 수도 있어요. 그만큼 각 경맥의 원혈은 해당 장부의 건강에 깊이 관여하는 중요한 혈자리입니다.
신문은 심장의 원기가 머무르는 곳으로, 심장을 튼튼히 하고 정신을 안정시키며 지혜를 더하는 효능이 있습니다. 관상동맥질환, 심장에 통증을 느낄 때, 옆구리가 아플 때, 피를 토할 때, 놀라서 불안하거나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이 두근거릴 때, 정신이 흐려서 마음이 갈팡질팡하고 판단이 잘 안 될 때, 잠을 잘 못 잘 때, 건망증, 치매 등 다양한 증상에 활용할 수 있어요.
신문은 손바닥 쪽 손목주름 위에 있습니다. 손목주름의 새끼손가락 쪽에 톡 튀어나온 콩알뼈를 기준으로 했을 때, 몸 쪽(손가락이 아닌 팔꿈치 방향) 모서리의 노쪽(새끼손가락이 아닌 엄지손가락 방향) 오목한 곳입니다. 콩알뼈 아래로 두드러진 자쪽손목굽힘근힘줄에서 엄지손가락 쪽에 있어요. 신문도 비교적 찾기 쉬운 혈자리입니다.
신문 혈은 심장 경맥의 대장이자,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최고의 경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신문을 누르는 습관 한번 가져보세요. 몸 튼튼, 마음 튼튼으로 가는 좋은 지름길이 되어 줄 거예요.
* 심자 군주지관 신명출언(心者 君主之官 神明出焉)
* 유경 : 1624년, 중국 명나라 장개빈이 지은 전 32원의 의서이다. 황제내경 소문과 영추 내용을 다시 개편 분류한 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