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퀵의 주인공 기수는 이름을 알 수 없는 화주의 죽음의 배달대행을 성공시키지 못했을 때 벌어질 비극을 막기 위해 BMW S1000RR로 도로를 질주한다. 제때 오더를 마치지 못하면 전여친 아롬이 생명을 잃고 제때 마치더라도 누군가는 죽는다. 그나마 제때 오더를 마치고 성공하는 편이 기수 뒤편에 타고 있는 아롬이를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BMW S1000RR
국내에서 폭발물을 구하기가 얼마나 쉬운지는 모르겠지만 화주가 목적지에 전달하고자 하는 물건은 30분내 터지는 고성능 시한폭탄이었다. 퀵서비스 기사인 기수는 결국 여자친구 아롬을 지키기 위해 시속 299km(BMW 바이크 최고속)로 도로 위를 달려 목적지에 도착해, 물론 본의는 아니지만 범죄를 도와야 했다. 영화 퀵은 요즘처럼 배달대행 서비스가 대중화되기 이전에 개봉한 영화이기는 하지만 우연하게도 배달대행의 어두운 면을 상징하는 것 같다.
초단위로 시간을 다투는 배달대행은 이전에 다뤘던 차량공유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긱 이코노미 Gig Economy'에서 최대의 수입을 올리기 위해서 쉴 새 없이 콜을 받아야 한다. 일한 만큼 번다는 명목 하에 수많은 배달인력이 배달대행 건당 수입을 쫓아 모여들지만 업체간 M&A 등으로 독과점화된 시장상황에서 중개업체가 제멋대로 단가를 내린다 해도 일을 그만둘 수 없고, 위험한 콜이라도 거부할 수 없는 현실이 배달낭인이라는 우울한 신조어를 만들어냈다. 그래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배달을 했던 영화 퀵에서처럼 현실세계의 배달기사들도 수입 목표를 채우기 위해 바쁘다.
퀵서비스가 소재인 영화를 설명하는데 왜 배달대행 이야기하는 것일까? 통계청에서 분류하는 배달대행업은 '늘찬배달업'의 일종으로 이륜차물류에 속해 경계가 모호한 형제뻘 업종이고, 사륜차물류인 택배 등도 가세해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라고 불리는 사업영역의 Big Bang이 일어나고 있다. 뭐, 통계체계 분류가 아니더라도 배달대행이나 퀵서비스가 정말 비슷하다는 것은 손정의가 아니더라도 알 수 있다.(라스트마일 딜리버리라는 단어를 처음 접했을 때 100% 대체할 우리말이 없어 개인적으로 생소함과 거부감이 있었는데, 여기서는 '단거리 배달' 정도로 설명할까?)
국내에는 임향신 씨가 1984년에 늘찬배달의 원조격인 퀵서비스를 도쿄에서 들여와 처음으로 도입했다. 부피가 크지 않은 서류나 소화물을 빠른 시간 내에 목적지에 배달하는 운송서비스인 퀵서비스 종사자만도 13,853명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이후 '00년도 중반 배달대행 서비스 붐이 일면서 기존 늘찬배달업계 업체들은 격변의 시기를 겪었고 이제는 사람 빼고는 아니 사람마저도 배달이 가능하게 되었다.
최근에는 배달의 민족, 요기요 등 음식배달 서비스 전문업체 등과 함께 시장이 급격히 확장되고 있다. 이들은 설립과 인수합병을 거듭하며 규모와 더불어 이렇게 서비스 포트폴리오를 확대하게 되었는데 배달품목의 다양성은 확보했지만 그만큼이나 서비스 인력에 대한 지배력이 강화되면서 결국 배달낭인을 양성하게 되었다. 앞서 언급했던 배달대행의 어두운 면은 바로 배달낭인을 일렀던 말로 국내 시장을 독과점하다시피 한 배달대행 서비스 업체들은 서비스 인력들에 무한경쟁을 시키면서 낮은 단가로 무슨 물건이든 배달하도록 만들었다.
또 한 가지로 택배와 함께 광의의 라스트마일 딜리버리로 포함된 배달대행 및 퀵서비스는 4차 산업혁명에 어울리게 텍소노미가 진화한 만큼 운영체계 역시 개선돼 서비스 인력이 효율적으로 일할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최적화 기술이 도입됐다. '10년대 물류나 운수업계가 속속 도입한 동적 라우팅 Dynamic Routing은 물류 운송수단의 위치를 실시간으로 파악해 도로와 물류 처리 상황에 맞춰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최적화 기술이었다. 이를테면 정해진 물류 운송량을 최단시간 최소 자원으로 해결하는 콜 배분이 가능하다.
네비게이션의 Dynamic Routing
배달기사 입장에서는 그나마 비효율적인 콜 배분 방식 때문에라도 쉴 틈이 있었다면 이제는 톱니같이 움직이는 기계처럼 움직인다. 이번 배달을 끝내면 즉시 다음 콜이 배분된다고 생각하면 시간은 돈이 되고 결국 배달기사들은 쉬는 시간, 화장실 가는 시간, 끼니를 해결하는 시간을 포기하며 일을 할 게 뻔하다. 반면 근속은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연차가 쌓여도 수입은 달라지지 않는다.
또 한가지 우울한 사실은 자율주행 자동차 사이에서 M2M(Machine-to-Machine) 통신을 하면서 동적 라우팅을 수행하는 자율주행 자동차가 직접 운송을 하는 날이 멀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을 직접 실어 나르는 여객과 달리 물류는 대인사고가 적어 그만큼 자율주행 기술이 먼저 도입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고객의 문 앞까지 전달하는 것은 자율주행 자동차의 영역은 아니겠지만 충분히 대체 가능한 수단이 있지 않을까?
얼마 전 바이크에 잠시 걸터앉아 급히 빵을 먹던 배달기사를 우연히 보게 되었을 때 만감이 교차했다.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신성한 근로의 현장을 보게 된 숙연함도 있었고, 배달해서 먹는 음식을 맛보는 즐거움에 일조함에 대한 감사함도 있었지만, 간식을 먹을 때조차 여유로운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배달기사의 모습을 보면서 뉴노멀 시대의 신사업 모델은 아직도 삶을 더욱 윤택하고 풍요롭게 바꾸고 있는지 궁금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