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지 못해도 흔들리지 않는 팀; 그리고 지지 않는 팀

프리미어리그 아스날이 보여준 '지지 않는 조직'의 힘

by 윤즈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반까지 아스날의 축구는 '벵거볼'이라 불리며 빠르게 이어지는 패스와 화려한 움직임을 추구하는 팀 컬러가 분명했다. 앙리, 피레스, 베르캄프, 로시츠키, 윌셔, 외질, 카솔라 (세스크와 반 페르시는 빼기로 한다...) 선수의 이름만 들어도 경기 장면이 아직도 떠오른다. "두 골을 먹으면 세 골을 넣겠다"라는 컨셉까진 아니더라도 "축구는 아름다워야 한다."라는 명제 아래 그 시절 아스날은 '공격' 그 자체였다. 나는 2010년 그런 아스날을 보며 구너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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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흘러 요즘의 아스날은 참 많이 달라졌다. 화려한 패스 대신 지지 않을 것 같은 팀의 포스가 물씬 느껴진다. 최근 1년간 영입 명단을 보면 더욱 확실하게 느낄 수 있다. 키 190cm 내외의 피지컬을 자랑하는 선수들을 전 포지션에 걸쳐서 영입하고 있다. 카솔라, 외질, 램지, 코클랭이 함께하던 미드필더 라인은 라이스, 메리노, 외데고르, 수비멘디 등으로 대체되었다.


구너로서 최근 3년 연속으로 리그 2위에 머무르며 우승을 놓치는 아스날을 보며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다. 예전의 폭발적이고 화려한 경기가 그립다는 마음 하나, 아스날이 이렇게 차분하고 단단한 경기를 해온 시기가 있었나? 언젠간 우승하겠는데?라는 마음이 둘이다. 처음엔 전자와 같은 생각이 나에게 더 크게 자리 잡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제야 정말 리그 우승에 어울리는 팀이 되었다는 확신이 든다.


개인의 역량으로 각자의 창의성과 번뜩임만으로도 팀은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팀의 목표가 '성장'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의 확보'로 이동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 경우 개인의 플레이보다 시스템이 주는 안정감이 압도적으로 중요해진다. 이 대목에서 나는 팀이 강해진다는 건 '개인의 재능'에서 '조직의 구조'로 무게 중심이 옮겨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기업이라는 그리고 조직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초기에는 누군가의 추진력과 열정으로 성장하지만 결국 지속 가능한 기업은 협력과 구조의 힘으로 굴러간다.


나는 대학시절 축구 동아리를 이끌며 4-5-1 포메이션을 매우 신봉했다. 결국 우승도 했으니 결과도 만족스러웠다. 4-5-1 포메이션은 요즘 아스날이 활용하는 4-3-3 포메이션과 비교하면 굉장히 수비적이다. 하지만 나에게 4-5-1 포메이션은 '수비적인' 배치가 아닌 '가장 팀다운' 선수 배치이다. 내가 추구했던 4-5-1 포메이션은 한 명의 스트라이커가 중심을 잡고, 다섯 명의 미드필더가 공수의 균형을 유지해 나가는 것이 핵심이었다. 모두가 자신의 위치를 지키면서도 서로의 움직임과 상황에 맞춰 자연스럽게 경기를 풀어가고자 했다.


최근 정말 신기한 생각이 들었다. 아마추어 수준이지만 내가 추구하는 축구의 철학이 내가 생각하는 회사, 그리고 팀의 모습과 참 많이 닮았다. 앞에서 리더가 방향을 잡으면, 뒤에서는 보이지 않은 곳에서 팀원들이 라인을 유지하고 균형을 만든다. 그 덕분에 조직은 무너지지 않으며 잘 조직된 회사로 성장한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언제든 믿을 수 있는 팀. 그게 내가 4-5-1을 선호했던 이유고, 지금 현재 내가 회사와 팀에 몸담고 있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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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스날로 돌아와서, 과거의 아스날은 아름다웠고 현재의 아스날은 강하다는 단어가 알맞은 것 같다. 양쪽 모두 강팀이라고 할 수 있지만 강함의 형태가 다르다. 과거의 아스날은 '이기는 팀'을 표방했다면 지금의 아스날은 '지지 않는 팀'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화려함이 사라졌지만 그렇다고 클럽의 매력이 줄어든 건 아니다. 오히려 지금의 아스날은 '지속 가능한 강함'이라는 단계에 들어섰다는 생각이 들어 이렇게 글을 남기고 있다. 이건 단순히 경기력의 변화가 아니다. 팀이 성숙해졌다는 증거다.


나는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예전의 아스날을 사랑한다. 하지만 요즘 아스날을 보며, 내가 몸담고 있는 조직과 팀이 '어때야 하는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화려했던 시절은 클럽을 빛나게 했지만,

지금의 단단함은 클럽을 이기게 만든다.


결국,

조직이 성장한다는 건

'잘하는 사람'이 많아지는 게 아니라,

'서로의 자리를 지켜주는 사람'이 많아지는 일이 아닐까.


회사의 팀도 마찬가지라고 믿는다. 누군가의 반짝이는 플레이와 성과보다, 모두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이는 팀워크가 결국 조직을'이기는 팀'으로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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