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아스날을 떠나지 않았을까

정체성이 사람을 남긴다

by 윤즈

2009년 4월, 나는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의 아스날을 응원하기 시작했다.


그때 아스날의 상황은 썩 좋지 않았다. 신축 구장 건설로 인해 선수 영입 여력이 부족했고, 매년 핵심 선수가 빠져나갔다. 그 뒤로 아스날은 리그 우승도, 챔피언스리그 우승도 없었다. 매 시즌마다 기대와 실망을 오갔지만, 나는 팀을 떠나지 않았다.


왜였을까?


'성적' 때문은 아니었다. 나를 붙잡은 건 팀의 철학, 방식, 그리고 말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정체성이었다. ‘벵거볼’이라 불리던 빠르고 창의적인 플레이, 유스 시스템을 중심으로 팀을 만들어가겠다는 소신, 그리고 Victoria Concordia Crescit(승리는 화합을 통해 자라난다)라는 구단의 슬로건까지. 그 모든 것들이 나를 구너로 남게 했다.


그리고 요즘 회사도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한다. 모두가 잘 나가는 회사를 꿈꾸지만, 회사에 오래 머무르게 하는 건 실적보다 ‘이야기’, ‘나에게 주는 가치’, 그리고 ‘경험’이다. 성과는 일시적이지만, 정체성은 지속된다는 말을 가슴 깊이 공감한다. 조직문화는 결국 우리, 그리고 나는 누구인가?에 대한 답이다. 다시 아스날로 돌아가보자.

아스날은 꽤 오랜 기간 리그 타이틀이 없다. 그 시간 동안 나는 떠나지 않았고, 오히려 기다리고 기대했다. 이 팀이 단지 ‘이기기 위해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다. 정체성과 철학을 지키려는 구단의 태도가 나에게 ‘믿음’을 심어줬기 때문이다. 물론 지치고 화나는 시간도 있었다.


HR 담당자로서 나도 똑같이, 진심으로 일하고 싶다. 우리 회사는, 나는 어떤 철학으로 사람을 대하고, 어떤 방식으로 일하고 있지? 복지가 아무리 좋아도 사람들이 떠난다면, 답은 이 안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급변하는 환경 속에서 HR이 어떤 신념으로 사람을 대하는지가 그 조직의 본모습이다. 회사를 떠나는 사람에게조차 품격을 지키는 방식은, 남아 있는 사람들에게 더 깊이 각인된다. 사람을 남게 하는 건 결국 ‘문화’다.


최근 아스날은 미켈 아르테타 감독 아래 다시 팀을 재정비하고 있다. 그의 전술보다 인상적인 건, ‘원칙을 지키는 방식’이다. 젊은 선수 중심의 공격적인 축구라는 기조는 여전히 유효하고, 그 일관성이 나같은 라이트 팬들에게 안정감을 준다.


회사도 마찬가지다. 일하는 방식을 명확히 하고, 그에 맞는 사람을 채용하고, 자율성과 책임 속에서 일할 수 있게 설계하는 것. ‘좋은 회사’라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은 아마도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리고 이 과정을 설계하고 유지하는 사람이 바로 HR이고 그 중에서도 노무 담당자가 아닐까? 일할 노, 힘쓸 무. 즉 일하고 힘쓰는 것. 그것을 넘어서 내가 생각하는 노무란, 일하는 사람들을 위해 힘쓰는 것이다. 내가 총무 업무를 좋아하는 이유는, 총무의 사전적 의미에서 찾았었다. 모두 총, 업무 무. 총무는 모든 업무다. 단, 담당자가 하려는 의지가 있을 때만. 지금은 나에게 노무 업무가 조금은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내가 의지만 있다면 일하는 구성원들을 위해 힘쓸 수 있는 모든 일을 할 수 있다.


아스날이 나에게 그랬듯, 쉽진 않겠지만 우리 회사도 누군가에게는 떠날 수 없는 팀이 되기를 바란다. 결과가 좋을 때만 응원받는 회사가 아니라, 방식과 철학이 존중받는 회사 그 문화를 지키는 일, 그 정체성을 잃지 않게 하는 것이 HR이 해야할 본질이라고 믿는다.


성과는 결과이고, 정체성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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