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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닥터킴 Aug 15. 2024

전문직은 축복이자 저주이다

치과의사를 관두는 이유

1.

전 세계적으로 전문직은 칭송을 받는 다. 물론 미국보다는 한국이 더 크다. "사"자 직업이라는 표현 자체가 유독 한국에 존재하는 걸 보면


전문직으로 일을 하려면 우선 전문학교를 가야 한다. 그 경쟁률은 한국이든 미국이든 치열하다. 합격하기 위해선 성적이 압도적이어야 한다. 


거의 모든 전문직이 그렇듯이, 정해진 루트가 존재한다. 세상에 전문직보다 더 정확하고 널리 알려진 커리어 공식이 존재하는 게 있을까 싶다. 

미국의 시스템을 나열하자면:

초 -> 중 -> 고 -> 대 -> 치대/의대/법대

이 루트에서 가장 높은 진입장벽은 4년제 대학교 -> 치대이다. 


치대 관계자(admission officer)가 하는 말을 얼핏 들은 적이 있는 데, 지원학생들의 성적 GPA를 엑셀에 옮겨 높은 순위로 정렬한 뒤 기준치 성적보다 낮은 애들은 ctrl + delete 한다는 거다. 지원하는 학생들을 인간 개개인으로 보기보다는 그저 숫자로 치부되어, 학교가 요구하는 그 마법의 숫자를 넘겨야 면접을 받을 수 있게 된다. 지원자들은 매년 높아지는 기대치와 더 치열해지는 경쟁률에 과도한 스트레스와 힘듦을 겪는다. 


치대 졸업 이후에는 크게 3가지 옵션이 있다. 

a) 전문의 수련의과정 (specialty residency)

b) 페이닥터로 취직 (associate)

c) 개원 


치대에 들어온 대부분의 학생들은 매우 현실주의적이다. 현실적이기에 치과의사라는 직업을 택했을 가능성이 높다. 치대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나에게 주어진 여러 패를 분석한다. 전망이 좋은 전문의(specialty)는 무엇인지, 그게 나의 적성과 얼마나 맞는지 혹은 내가 좋아하는지. 아니면 일반의 치과의사로(general dentist)로 일하지. 존재하는 병원에 들어가 페이닥터로 일하지 혹은 내가 직접 개원을 할지. 



2.

우역곡절을 다 겪고 치대를 졸업하면 목표였던 치과의사가 된다. 몸도 마음도 우쭐해진다 (물론 안 그런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그랬다). 내가 의사라는 걸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게 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여기까지 오는 길이 정신적으로 그리고 신체적으로도 험난했기 때문이다. 20대 중후반까지, 밤을 새워가며 공부를 하고, 치의학 이론 공부를 하다가도 틈이 나면 플라스틱 치아에 실습연습을 하고, 끝이 보이지 않는 나 자신과의 싸움을 하며 피사탑처럼 쓰러진 멘탈을 다시 잡고 혹독하게 단련시킨다. 


전문직을 선택하지 않은 동갑내기 친구들은 이미 회사에서 대리, 과장이 되고, 부모님께 근사한 선물도 한다. 20대 후반이 넘어가는 데 돈도 없는 학생신분으로 사는 건 그리 썩 좋은 경험은 아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학생으로 살았기에 의사가 되면 과거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우쭐함이 생기는 것 같다. 부끄럽게도 과거에 나는 의사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다는 걸 어필하고 싶어 했고 내가 무엇이 된 것 마냥 행동을 했다. 



교정의사로 일한 첫 1년은 괜찮았다. 치과라는 종목아래 가장 좋아한 교정을 하면서 돈도 많이 벌어서 엄마 아빠한테 신나서 쫑알쫑알 통화했던 기억이 난다. 교정치료도 재밌었다. 나만의 교정철학으로 치료를 하고 환자들에게 원하는 가지런한 치아와 미소를 줄 수 있었고, 복잡하고 힘든 케이스를 잘 풀어내서 좋은 결과 나올 때 큰 만족감을 느꼈다. 


경제적 힘이 생기니 학생때와 달리 맛있는 것도 먹고 갖고 싶은 걸 사고 여행도 가고 가족들과 친구들에게 멋진 선물도 해주었다. 부모님과 친척 어르신들이 의사가 된 나를 자랑스러워하신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3.

교정의사로 일한 지 2년 차. 나는 깨달았다. 내가 교정의사가 된 이유가 나의 삶에 행복과 만족감을 주지 않는다는 것을. 내가 교정의사가 된 이유는 여타 치과의사 및 교정의사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정적인 직업, 이타적이고 의로운 직업, 사회적 위치, 풍요로운 수입 등등


이 중에서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왔던 안정적인 삶과 높은 수입이 내가 생각한 "행복"과 비례(proportional) 하지 않았다.  


특히 물질적인 것들은 나를 행복하게 해주지 않고, 사람이 "행복"하게 살아가는 데 그다지 많은 돈이 필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물론 케바케일 테지만, 나라는 사람은 물질적인 욕심이 그리 크지 않다. 그리고 타인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을 신경 쓰지 않다 보니 소위 "럭셔리", "명품"에 많은 관심이 없다.


일상생활을 하기 힘든 빈곤은 불행과 고통을 주겠지만, 돈이 주는 행복은 개개인의 소비습관에 맞을 정도에 적당히만 있어도 된다는 걸 깨달았다. 적당한 양 그 이상의 돈과 나의 행복지도수는 비례하지 않았다. 



4.

교정의사 2년 차. 나의 삶은 매우 안정적이었다. "안정적"의 정의가 개개인마다 다를 수 있다. 누군가에겐 집을 갖고 있어야 하고,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는 거일 수도 있고, 자산을 특정 액수만큼 모으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자산을 많이 모은 것도 아니고, 집을 마련한 것도 아니었고 자녀도 없지만, 나의 삶은 안정적이었다. 편하고 아늑한 무난한 집에, 나의 소비습관과 일상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돈을 벌었고, 꼬박꼬박 학자금도 갚으며 혹시 모를 미래를 위한 저축도 부지런히 했다. 나와 배우자, 가족, 친구들의 관계도 여전히 좋고 안정적이었다. 일하는 병원은 대기업 병원으로 급상 했고, 나를 좋게 봐주던 임원진들 덕분에 나는 교정의 디렉터(orthodontic director)라는 새로운 역할로 승진했다.


앞으로 이렇게 쭉 살면 되는 건가? 이게 인생인가?라는 질문이 맴돌기 시작했다. 

나의 분야인 교정으로 일을 해서 돈을 벌고, 가족을 꾸리고, 집을 사고, 노후를 위해 저축하고, 은퇴한 뒤 세계여행 좀 다니고 좋아하는 취미생활 하다가 죽는 것인가? 



5.

나는 일의 보람보다는 일로 지치는 일이 많아지기 시작했고, 다음 휴가는 언제고 어디로 갈지에 대한 설렘이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 쳇바퀴를 도는 연구실 쥐가 실험자가 어쩌다 주는 치즈에 희열과 행복을 느끼는 것처럼. 고작 "휴가"따위가 나의 원동력이 되었다는 사실자체에 기분이 매우 나빴졌다. 

아니, 드라마랑 영화에서 보던 직장일이 힘들다고 찡찡대며 휴가 갈 날만 손꼽아 기다리는 멋없는 어른이 된 나의 모습이 싫었다. 



이게 뭔가 옳은 방향이 아니라는 걸 바로 직감했다. 근데 내 주위를 둘러보니, 대부분의 직장인들과 치과의사들이 그렇게 살아가고 있었다. 사회는 오히려 '원래 일이라는 게 그렇지 뭐 어른의 삶은 그런 거야'라고 비아냥 거리는 듯했다. 


순간 나는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었다. 어차피 일이라는 게 이런 거라면 하루라도 젊었을 때 더 많이 일하고 돈을 모아서 얼른 은퇴해야겠다는 강박에 사로잡혔다. 파이어족 FIRE (financial independence, retire early)에 대해 엄청 찾아보았고, 틈만 나면 엑셀에 별 공식을 때려 넣고 기록을 하고 나의 순자산을 계산했다, 

그래 결국 내가 자유롭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선 (그게 정확히 어떠한 인생인지는 모르겠으나) 내가 지금 속해있는 상황을 미루어봤을 때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돈을 모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소처럼 부지런히 쉬지 않고 일했다. 


치과선배들과 교수님들은 내가 페이닥터로 일하기 때문에 그렇게 느끼는 거라고 말했다. 어느 정도 일리가 있다 생각했다. 치과의사라면 결국 개원해야 하는 거니까. 개원을 하기 위해 개원과 병원 운영 관련 책도 읽고 현재 살 수 있는 치과병원을 찾아보기도 했다. 하지만 찾아보고 알아볼수록 성에 차지 않았다. 새로운 도전과 나만의 병원을 차린다는 생각에 설레기는커녕 반대로 더 김이 빠졌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6.

나는 성격상 모르거나 이해가 안 가는 게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들어 가기에 이유를 알고 싶었다. 왜 나는 내 동료 교정의사, 치과의사들과 다르게 개원에 대한 열정이 없는지, 교정일이 보람차지 않은 지. 

나 자신을 향한 질문은 계속해서 이어져 갔다. 


나는 왜 빨리 은퇴를 하고 싶고 교정의사를 관두고 싶은 걸까? 내가 내 일을 정말로 사랑하고 열정을 갖고 있다면 은퇴를 하고 싶어 할까? 내가 내 병원을 개원을 해서 앞으로 십 년 동안 교정의사로 일하는 게 행복할까? 그게 진정 내가 원하는 걸까? 왜 내가 좋아하고 하고 싶은 일들을 은퇴하고 나서 해야 하는 건가? 


단순히 쉬고 싶고 놀기 위해 은퇴를 하고 싶은 게 아니었다. 나는 인간이 생산력 있는 삶을 살아야 자기 충족적인 삶을 살 수 있고 그게 삶의 행복과도 연결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또 무엇보다 나는 목표지향적인 사람이다.   


교정의사가 되기 위해 그렇게 몇 년을 뼈 빠지게 공부하고 유혹을 뿌리치고 이 자리까지 왔는 데, 최대한 빨리 은퇴하려고 발악하는 나의 모습이 어처구니가 없었다. 


나에게 "일", 즉 "교정의사라는 직업"은 그저 수단이었다. 먹고 살아가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하기 위한 수단. 나의 일생을 바쳐서 열정적으로 이루고 하고 싶은 "필생의 일", 즉 "life's work"이 교정의사가 아니었다. 


나의 삶이라는 자동차 여행에 내가 핸들바를 잡고 나의 의지대로 운전하고 있다 생각했는데 큰 오산이었다. 핸들바를 잡고 있었던 건 내가 아닌 사회가 만든 "전문직 커리어 공식". 이제까지 나는 그 공식 안에서 가장 나에게 "유리하고 적합하고 안전한" 길을 선택했던 것뿐이었다. 그리고 그 공식 끝에, 치과의사라는 전문직의 holy grail은 개원이기에, 나의 자동차는 개원을 향해 가고 있었지만 내가 잡고 있던 핸들바가 아니었기에 성에 차지 않고 불만족스러웠던 것이었다. 



7.

왜 일(수단)과 내가 좋아하는 것이 이분법으로 나뉘어야 하나?

내가 좋아하고 열정을 갖는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이 점점 커져갔다. 나의 "필생의 일, life's work"이 무엇인지 탐구하기 시작했고, 내가 진정 내 삶에서 하고 싶은 게 무엇인지 깊게 고찰했다. 


나 자신에 대해 알아가게 되었다. 침체되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계속해서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고, 배우고, 나 자신에게 새로운 임무를 주고 수행하고, 무언가를 계속 도전하고 이루고 싶어 한다는 걸. 하지만 이건 "전문직 커리어 공식"아래 존재하는 성취(achievement)가 아니다. 그랬다면 교정의사로서의 삶을 확장하면 된다. 치대에서 교정과 교수로 일하면서 가르치거나, 교정치과 임상연구를 한다거나, 나의 치과를 여러 개를 개원해서 대기업 병원으로 만드는 것도 방법이다. 이것들은 그저 하나의 목표일 뿐이다. 예전에 쓴 글 (200일 동안 운동과 독서를 하고 깨달은 것들)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지만, 목표와 목적이 매우 다른 것처럼, 성취와 성공 또한 매우 다르다. 성취가 목표주의라면, 성공은 목적주의이다. 


나의 목적이 "전문직 커리어 공식"과 동일하다면, 나의 필생의 일이 전문직과 동일하다면,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 다. 그랬다면 이런 불만족스러움과 허탈함을 느끼지 않았을 테다. 


나의 목적은 내가 내 자동차의 핸들바를 잡는 주체적인 삶이다. 



나의 마음을 움직이고 내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나열해 보았다. 

<가치>, <창조>, <도전>, <새로운>, <탐험>, <신념>, <의미>, <혼자가 아닌 함께> 


내가 원하는 걸 다 조합해 보니, 내가 하고 싶었던 건 바로 창업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새로운 길을 개척하고, 보다 큰 가치를 창조해 세상에 기어하고 도전하는 것. 


수많은 창업자들(founders)과 자기만의 스토리를 써낸 인물들은 우월한 지적 유전자를 갖어서가 아니라, 고위급 인맥을 가져서가 아니라, 뛰어난 엘리트 학벌이어서가 아니라, 미친 재력가에서 태어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많은 창업자들은 현재 내가 속해 있는 상황보다 더 악한 상황 속에 있기도 했다. 그들의 공통점은 그저 포기하지 않고 자기가 원하고 열정 있는 일을 계속해서 도전했다는 거다. 다른 건 잘 모르겠으나,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하는 의지력만큼은 돈, 권력, 인맥, 학벌 등이 필요로 하지 않는 다. 


위대한 창업가들과 인류의 역사에 획을 쓴 창업들이 많아 창업이라는 단어가 어려워 보이고 그사세에 존재하는 것 같지만, 나의 생각은 다르다. 거창하고, 기가 막히고, 천재적인 아이디어로 성공하는 게 창업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다. 크던 작던, 각자만의 유니크한 (기존에 존재하지 않았던) 방법으로 우리 사회에 좋은 가치를 기어하는 게 창업이 아닐까? 


치과의사라는 어쩌면 가장 안전하고 예측가능하고 편안하지만 항구에 정착되어 묶여있는 안락한 유람선이 아닌, 창업이라는 예측불가능하고 정해진 공식 따윈 존재하지 않지만 가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를 자유롭게 탐험하는 위태로운 돛단배를 택한 게 나의 인생 최대 실수일지도 모른다. 

창업을 한다고 처음 말 했을 때, 한국 어르신들은 나에게 "방황 좀 그만하고 얼른 정신 차려"라고 말했다. 친구들 몇 명은 "아니 30대 중반이 이제 와서 무엇을 하겠냐"며 나 대신 깊은 한숨을 쉬어주기도 했다.



설상가상 이것이 나의 인생 최대 실수가 되더라도 어떠한가? 



백세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이 24시간이라면, 30대 중반은 아직 아침 8시 반이다. 


태양은 아직 중천까지 가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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