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 롱세스바예스(Roncesvalles) 종료. 수비리(Zubiri) 해냄. 7시간 반 / 22.06km
산티아고 3일차
분명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해가 뜨지 않은 어슴푸레한 시간에 길을 나섰고, 40분 남짓 걸어 도착한 첫 마을에서 상큼한 오렌지 쥬스도 마셨다. 피레네부터 계속 이어진 소똥 냄새는 익숙하여 정겨웠고, 비쩍 마른 길고양이의 애교는 줄 것이 없어서 미안하고 애틋했다. 고생하며 넘어온 산맥을 바라보며 오늘의 길은 다르리라 믿었다.
이 믿음은마지막 3km 구간에서 산산조각 났다.
자갈과 건조한 모래로 가득한 오르막을 걷는 건 오히려 괜찮았다. 너무 힘들어서 오히려 하얗게 바래버린 머릿속에서는, 연느의 "무슨 생각을 해 그냥 하는 거지"라는 명언이 끝없이 맴돌았다. 이 고난의 길을 다 걷고 나면 내가 드디어 해냈다는 뿌듯함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중후반의 숲길에서는 등산으로 단련된 중년 한국 남성들의 속도에 발을 맞추기까지 했다.
마치 한국 산을 등산하듯
하지만 목적지인 수비리에 도착하기 직전의 미끄럽고 푸석푸석한 자갈모래로 가득한 가파른 내리막길에서 이성을 잃고 말았다.
무릎과 발목을 신경 쓸 수밖에 없는 극악한 내리막에서 온몸에 힘을 주며 스틱에 많은 무게를 실었다. 중심이 무너지지 않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신경을 덜 쓰게 된 발바닥이 비명을 질러댔다. 얼마 남지 않은 거리에 안심하며 아낌없이 마셔버린 물은 지독한 갈증을 불렀다. 전혀 인체공학적으로 설계되지 않은 지압판을 걸어내야만 하는 두 다리가 주체할 수 없이 파들댔다.
나는 대체 왜 이 길을 걷고 있는가. 이 길에서 뭔가를 얻을 수 있긴 한 건가. 몸보다 먼저 굴러가버린 마음은 손 쓸 틈 없이 침잠했다. 이대로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차올랐다. 잠시 멈춰서 헉헉댔지만 돌아오지 않는 호흡이 무상했다.
숫자로 환원되지 않는 실제
그때, 목소리가 들려왔다. 애써 표정을 고르며 고개를 들었다. 첫날 보르다 산장에서 만났던 미국인 델로렌스였다. 괜찮냐며, 필요하면 짐을 나눠 들어줄 수 있으니 부담 갖지 말고 말하라는 따뜻한 말에 순간 정신이 들었다. 내가 지금 어디에, 어느 길 위에 있는지 비로소 실감이 났다.
괜찮다고, 천천히 가겠다고 힘들게 미소를 지으며 말하니 그가 한 번 더 권해왔다. 나중에 내가 힘들면 네가 도와주면 된다고, 지금 정말 괜찮냐고. 고개를 끄덕이니, "힘들면 울어도 돼. 나도 어제오늘 몰래 계속 울었어." 라며 마지막 응원을 건네고선 먼저 걸음을 옮겼다.
그 말이 참 위로가 되더라.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누구에게나 힘겨운 이 길을, 다들 각자의 방식으로 꿋꿋이 인내하고 마주하며 이겨내고 있다는 것. 이 길 위에서 나는 결코 혼자가 아니라는 확신. 순례자들이 서로에게 건네는 "부엔 까미노"라는 인사가 지닌 진정한 의미를 조금이나마 이해한 기분마저 들었다.
그 후 약 1시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조금쯤 울고 조금쯤 해탈한 채로 걷고 또 걸었다. 추월해 가는 순례자들의 뒷모습을 보며 내 속도로 쉼 없이 걸음을 뗐다. 그렇게 마침내 도착한 순간, 해냈다는 환희 대신 지긋지긋한 길이 끝났다는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