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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별 Oct 20. 2024

이응이응 버블티 작전

오늘도 실패


 있잖아. 이걸 소리 내어 말하는 건 처음이야.


 무슨 얘기냐고? 뭐길래 개업 떡 들고 이웃 가게 인사드리던 때처럼 볼이 달아오르냐고? 음. 야망! 어어. 웃는 거야? 맞아! 그래 야망! 야망이면 '우주 평화' 뭐 그런 거냐고? 에이 아니지. (뭐 '우리 동네 평화'에 기여하고 싶긴 해.) 출근하며 되새기는 나만의 비밀 목표가 있거든. 들어 볼래?


 지난주인가. '9월 말인데 이렇게 더워도 되는 건가. 스타킹을 괜히 신었나. 내일은 반팔 입어야겠다, 얼음을 더 주문해야지.' 생각하던 중이었어. 2020년 4월 개업 즈음 들르셨던 어르신 고객님께서 손주와 들르셨거든. 아가가 고른 딸기 마카롱, 초코 마카롱을 전하니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거야.

 "얼마나 버티겠나 하고 봤더니 참 오래도 하네! 비결이 뭐야!"

 어르신 가시고 나서 그 문장이 맴돌아 혼잣말로 대답했지.

 "제가 보기보다 참 오래 버티고 있는 비결은요~ 야망을 품고 일하기 때문입니다!"


 네가 그랬지? 우리 가게만의 특별한 느낌이 있다고. 들어오는 순간 마음이 편해진다고. 돌아가는 길에도 달달한 향이 남는 것 같다고. 나는 '에이 무슨~'하며 새로 산 너의 흰 블라우스 칭찬으로 말을 돌리고 말이야. 칭찬이 쑥스러워 슬쩍 피했지만 그 표현이 얼마나 고마웠다고. 작은 일도 크게 포장해 주는 착한 네 성품에서 나온 말이겠지 하면서도, 어르신 고객님 말씀과 나란히 전시하니 어깨에 힘이 들어가더라.

 일주일에 6일 하루 12시간 가까이 일하면서 어떻게 지치지 않고 재미있다고 하냐 네가 물었었잖아. 그 재미가 야망에서 나오는 것 같아. 근무가 아니고 거대한 작전을 수행하는 중이니 힘이 솟아오를 수밖에.


 자 들어봐. (아 혼자 생각하기에도 쑥스럽던 이야기를 꺼내려니 얼굴이 뜨겁다. 옆에 듣는 사람 없지? 쉿.) 있잖아. 특별할 것 없는 흔한 작은 가게는 사실 버블티 작전의 요새야.


 동그란 타피오카펄이 가끔 바닥에 떨어지거든. 그런데 그 친구가 절대 한 번에 잡히지 않아. 탱글탱글 쫀득쫀득, 손에서 튕겨 나가는 까만 펄이 얼마나 귀여운지. 손톱보다 작은 펄을 잡으려고 낑낑거리다 보면 탱탱볼 잡겠다고 뛰어다니는 아가가 된 기분이야. 떠오른 풍선을 잡아보려고 단단한 흙바닥을 트램펄린 삼아 뛰어오르는 기분. 그렇게 통통거리는 펄을 탁 하고 낚아채면, 그 동그란 펄이 통 튀어 내 말투에 쏙 들어가더라고.

 그러다 고객님께서 등장하시면 나도 모르게 우와, 와아아, 으앗, 감사합니당, 안녕하세용, 넹, 드릴게용. 그럼 고객님께서도 대답하시지. 와아 감사합니당. 오오 맛있겠당. 또 올게용. 동그란 펄처럼 이응 이응 이응.


 이응 야망이 담긴 펄을 전하기. 공부로 업무로 인간관계로 과거로 현재로 미래로 지친 분들의 삶에 귀여운 ㅇ(이응), ㅇ(이응)이 피어오르게 하기. 이게 나의 이야. 작전명 이응이응, 동그라미 귀여운 펄로 지친 세상을 달달하게 하리라! 맞아 웃기지. 너무 웃겨서 아직 누구에게 말해본 적 없다고.


 고객님들께서 버블티 한 모금에 '아하하, 앗, 어머나, 얍, 으아' 하는 이응 감탄사들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시게 . 퉁명스러운 '고마워'도 타피오카펄 한 알에 괜히 '고마워엉'하며 미소가 더해지길. 작은 가게에서 나서는 순간부터 일상의 피로가 조금은 더 귀엽게 느껴지길 바라.


 지쳐서 푹 꺼지려다가도 음료 속 타피오카펄이 빨대를 타고 올라와 입술 속으로 쏙 입장하면, 음료 아래 가라앉은 동그란 펄처럼 이응 이응 깜찍한 감정이 외로운 마음, 버거운 마음, 슬픈 마음, 서러운 마음 틈으로 쏙 자리 잡는 거지. 귀여운 감정이 탱탱볼처럼 통, 무겁던 고민 위로 통통 튀어올라 갑자기 말 끝에 이응이 붙는 거야. 말하는 사람도 듣는 사람도 웃음이 터지고. 그럼 상대방이 물어. '뭐야 너 말투가 왜 그래?' 그럼 이응이응 공격을 받은 고객님께서는,

 “으앗 그런가. 음 나도 모르겠어. 그냥 버블티 한잔 마셨을 뿐인뎅!”

 으하하. 이게 내 야망이야. 어때? 하루 열두 시간 서서 일하면서도 어떻게 재미있냐고 묻던 네 질문에 답이 되었을까!


 응? 그래서 이 웃긴(으앗 그렇게 허리가 끊어지도록 웃다니!) 작전은 성공하고 있냐고?


  그게 문제야. 귀여운 영향력을 퍼트리겠다며 비장하게 출근해서는 빈틈없이 귀여운 고객님들께 주도권을 빼앗기는 바람에 매일 실패하거든. '오늘도 나만 당한 건가.' 하며 고객님들 남기신 귀여움을 쓸어 모으며 바닥 청소를 하지. 의자 밑 이응, 키오스크 뒤 이응응, 책 사이 이응이응. 출입문 아래 이응이 응응 응 응 응응응.


 공격할 여지없이 완전무결한 귀여움을 지닌 고객님들이 그렇게 많으시냐고? 그럼 엄청나지! 제대로 이응 공격을 던지기도 전 전의를 상실한 감탄사 일기를 쓰다 보면 하루가 끝난다고.


 아 일기? 응 그건, 고객님들 귀여움에 반해 터지던 감탄사들을 모은 글이야. 그 일기장을 볼 수 있냐고? 음 그렇다면 시간이 남고 할 일은 없고 유튜브도 시시해지고 뭔가 읽을거리가 필요할 때 한번 열어봐 줄래? 아이고 이 부끄러운 일기를 읽어준다면 하얗고 귀여운 코코넛 버블티로 답례할게.


 앗 벌써 읽기 시작한 거야?


매일 또 실패하는 버블티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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