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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데이션 Feb 22. 2020

경험 + 이론
= 더 나은 서비스

한국시스템엔지니어링 학회


01 아쉬워서 다시 시작했던 아이디어



"저번에 내가 공모전에서 했던 프로젝트가 있는데.."


학부생 생활을 하면서 경험하면 좋을 것 같은 여러 가지 경험 중 대학원의 수업을 들어보는 것도 추천하고 싶다. 나는 두 번의 대학원 수업을 학부생 때 들었다. (물론 나는 대학원에 진학할 생각은 향후 5년 안으로는 없다. 그냥 재미있어 보여서 들은 것이다.) 학부생 수업도 분명히 배울 점이 많지만 대학원 수업은 조금 더 전문적이면서도 프로젝트가 고급화된다는 장점이 있다.


스마트 융합기술과 기술사업화라는 대학원 수업을 듣고 또다시 듣게 된 다른 수업은 '감성공학'이라는 과목의 HCI와 관련된 내용을 배우는 것이었다. 시스템을 포함하여 인간과 상호작용 하는 모든 학문을 다루는 과목이었고, 프로젝트 또한 당연히 포함되어 있었다. 혼자 듣기에는 쓸쓸할 것 같고, 프로젝트를 이왕 할 것이라면 아는 사람과 하고 싶었기에 나는 늘 여러 공모전과 팀 프로젝트에서 호흡을 맞춰온 남자 친구와 함께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들으면서 인간공학은 인간의 삶을 편리하게 하기 위한 것을 배우는 학문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서 지난번 무박 1일간의 아이디어톤에서 제안했던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당시에는 짧은 시간이 주어졌기에 원하는 만큼의 발전을 시키지 못했지만, 대학원 수업을 듣는 기간 동안 여러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했다. 심지어, 단순 프로젝트가 아닌 시스템 엔지니어링 학회에 논문 투고를 할 기회도 주어진다고 했기에 더욱 그 아이디어를 심화시키고 싶었다.


함께 아이디어톤에 참가했던 후배와 동기에게 아이디어 심화 과정을 거쳐도 괜찮은지에 대한 의견을 물어보고, 나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을 위한 지도 서비스'를 논문 주제로 선택했다.



02 시스템적인 개선이 필요했던



"API 활용 방안이랑 실제 개선 시뮬레이션을 더해보자"



아이디어톤 때는 전반적인 아이디어의 틀을 잡았다면, 논문 투고 때는 기술적인 부분에 대한 내용을 주로 고민했다. 사전에 비슷한 연구 사례가 있는지에 대해 조사했고, 있다면 그 연구들에서는 어떤 한계점이 있었으며 우리가 그 부분에 대해서도 개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이미 존재하는 지도 서비스는 많았고 최단 거리와 최단 시간, 최단 환승 등 앱 내에서 경우에 따라 사용자가 원하는 경로를 추천받을 수 있었다. 또한, 자주 가는 길은 저장해서 사용할 수 있었고 대중교통뿐만 아니라 택시, 예약 시스템 등과 연결해서 사용할 수 있었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자신이 어디에 있든, 어디를 가고 싶든 휴대전화 하나만으로도 충분히 원하는 곳에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휠체어를 사용하는 장애인들에게는 이러한 지도 서비스가 쓸모가 없었다. 물론 많은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은 자차를 이용하거나 그들을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기는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가 무언가를 하기에는 쉽지 않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대중교통을 스스로 이용하는 휠체어 사용 장애인들이 굉장히 많고, 연구 결과 그들도 그들이 무언가를 직접 하는 것에 대한 열망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그렇기에 우리는 지도 앱에 장애인 모드를 적용하는 방안을 생각했다.


연구 목적이 정해지고 어떤 사항이 고려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고민했다. 휠체어를 사용할 때 도로에서 겪는 주의도를 3단계로 구분하고, 이를 세분화시켜서 지도에 포함할 정보에 대한 기준점을 마련했다. 그 기준점은 아래와 같다.




주의도 높음 : 이동에 치명적인 요소, 이가 충족되지 않을 시에는 보행(통행) 이 불가능함

주의도 보통 : 이동에 필요한 요소, 충족되지 않을 시에 보행(통행)에 어려움을 겪음

주의도 낮음 : 이동에 도움이 되는 요소, 충족될 시 보행이 이로움


주의도 높음 : 경사도가 10도 미만인가?, 도로의 폭이 충분히 넓은가? (접근로의 폭이 1.2M 이상), 통행 위협 (보행자의 안전이 유지되지 않는) 구간인가?, 도로 간의 단차(2CM) 이상 이 존재하는가?

주의도 보통 : 경사도가 5도 미만인가?, 도로에 전봇대 등의 위협요소가 없는가?

주의도 낮음 : 도로에 사람의 밀집도가 높은가? 맨홀 등 통행로의 위협이 있는가?




위의 정보들을 바탕으로 최종적으로 사용에 유리한 API를 선정해 보면 카카오 API 가 가장 유리할 것으로 판단했다. 카카오에서는 이동경로 추천 시 거리의 높낮이에 대한 정보도 제공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API를 기준으로 추가해야 할 사항은 다음과 같았다.



<필수 고려사항>

1. 방향 정위와 이동 능력의 결합 : 주변 물체를 중심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인하고 방향 결정하는 것

2. 랜드 마크 : 주변에 변하지 않는 감각적인 단서를 포함

3. 단차 : 미시적인 경사의 차이. 도로 중간에 울퉁불퉁한 돌이 있거나, 하수구, 경사 등을 포함

4. 보행 장애물 : 볼라드 등 인도와 차도 경계에 설치되어 있는 시설물

5. 기하학적 직선 보행 : 점자블록의 과다한 방향 전환 유도 등 6. 기준선 : 랜드 마크와 랜드 마크 사이가 멀거나 복잡할 때 따라 걸을 수 있는 촉각적인 기준선


<추가 고려사항>

1. 보행 장애물 요소

2. 단차 확인 기능

3. 각도 계산 (이는 현재도 가능)


<지도에 추가되어야 할 조사 사항>

1.  경사도가 10도 미만

2.  도로의 폭이 1.2 M 이상

3.  도로 간의 단차 (2cm 이상) 없음






이를 바탕으로 현재 존재하는 지도 시스템에 위 사항들을 추가하여 경로를 제시할 수 있다면 충분히 장애인 지도로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 나아가 현재 존재하는 서울시 API를 활용하여 지하철 내부 도식화 및 내부 이동 경로 설정, 버스 API 이용을 통한 저상 버스 이용 등과 함께 연관 지을 수 있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리는 이러한 과정을 논문에 담아냈고, API를 활용하는 알고리즘 예시 화면 등을 구축하고자 했다.


1차 발표 시 제작했던 발표자료 일부



03 경험과 이론이 더해지니까



"두 번 하니까 훨씬 더 잘 알겠더라"


한 번 연구했던 내용을 주제로 정했던 것이기에 처음에는 '더 발전시킬 사항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한 번 연구를 했기에 부족한 점이 더 잘 보이는 것이구나!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발표 준비와 패널 제작 등 학회 참석을 위한 자료를 만드는 것은 분명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었다. 기존에 만들었던 것들이나 관련 연구 조사 자료 등이 풍부한 편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처음에 내가 제안했던 아이디어는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더욱 탄탄해지고 일부분은 바뀌기도 했다. 


분명한 것은 기존에 문제점이라고 경험했던 것에 대학원 수업 당시 배웠던 이론이 더해지고, 나름대로 4학년 학부생이라는 짬이 합쳐지니 더욱 좋은 결과를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발표 당일, 아쉬운 점은 분명히 존재했지만 놀랍게도 우리의 발표를 듣고 장애인 인권 위원회에서 일하는 분의 명함을 받기도 했다. 정말 필요한 아이디어이고, 혹시나 발전시킬 생각이 있고 관심이 있다면 연락을 달라고 했다. 만약, 내가 대학원에 진학 예정이었다면 이 연구에 대해서 좀 더 깊게 파고들 기회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발표 당일 사용했던 패널 자료



04 거의 유일한 학부생 수상자



"야, 우리 우수 논문상 뽑혔대!"


학점은 잘 나왔다. 대학원 수업의 최대 장점 중 하나는 학점이 무척 유한 편이라는 것이다. 더 발전시키고 싶다는 목표도 달성했고, 나름대로 오랜 기간 동안 시간을 투자해서 발전시킨 아이디어인 만큼 애착도 깊었다. 더 발전시키지 않고 멈추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학부생이라는 신분으로 남자 친구와 마지막 프로젝트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었기에 만족했다.


그렇게 프로젝트에 대해 잊어가고 있을 무렵, 남자 친구에게 갑자기 전화가 왔다. 우리가 우수 논문상으로 뽑혔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함이었다. 전국 대학원에서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자리였고, 우리는 수상에 대해서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에 놀랍고 얼떨떨했다. 한편으로는 좋은 아이디어가 시간이 지나면서 더욱 단단해졌고 덕분에 좀 더 전문성을 갖추었기 때문에 인정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하나의 아이디어에서 전혀 다른 것을 배울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었다. 그동안 숱한 공모전과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여러 아이디어를 냈고, 그 주제를 다른 과목에 중복해서 사용한 적은 있었으나 이번 경험만큼 많은 것을 얻은 경우는 없었다.


그 이유가 무엇 일지에 대해 생각해보니, 내가 그 아이디어에 애착이 많았고 이를 구현할 만한 이론적인 부분이 뒷받침되었기 때문이다 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기술적으로 구현 가능성 여부를 구체적으로 검토해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전문가들에게 인정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 또한 하지 못했다. 이 경험을 통해서 경험 혹은 니즈를 기반으로 이론과 기술이 합쳐지면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울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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