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로서 서비스 만들기
"앱잼 기간 동안 TI의 역할 : 팀 매니징의 모든 것"
기획/디자인 팀빌딩이 된 이후 나는 PM과 TI는 역할을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개발자 팀빌딩이 되기 전까지는 모두가 함께 기획을 수정해나가고, 와이어프레임을 통해 뷰를 고민하고, 기능 명세서를 구체화시키는 것이 당연한 역할이었다. 하지만 앱잼이 시작된 이후 나는 철저하게 운영 부분에서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다.
그 이유는 PM이 성장할 권리를 막고 싶지 않아서가 절반, 그리고 나머지는 성공적인 팀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도 나에게는 도전이고,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팀을 운영하는 데 필요한 여러 룰 셋팅을 하고 어떤 소통 도구를 활용할 것인지에 대해서 많은 고민을 했다.
우리는 소통을 위해 노션과 슬랙, 그리고 카카오톡을 활용하기로 했다. 노션은 운영과 관련된 내용들을 기록하는 용도로, 슬랙은 업무적인 내용을 공유하는 용도로(사실 우리 팀 내에는 100% 리모트로 참여하는 팀원이 있었기에 꼭 필요한 룰 셋팅이었다.) 그리고 빠르게 확인해야 하는 공지 및 투표는 카카오톡을 활용하여 진행하기로 했다.
룰 셋팅은 단체 활동에서 정말 필요한 과정이다. 그러나, 룰 셋팅이 되고 난 다음에 지켜지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의미 없고 시간 낭비가 되는 일이 있을 수 없다. 그렇기에 TI인 나와 주희는 이러한 룰 셋팅이 잘 지켜질 수 있도록 노력했고, 지금 생각해보면 개발을 하고 디자인을 하는 바쁜 와중에도 그 룰들이 굉장히 잘 지켜졌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생각했던 팀 브랜딩과 가치, 그리고 만들어가고자 했던 방향성에 맞는 룰은 아래와 같다.
01 노션을 활용한 라이프 룰 업데이트
02 우리만의 스크럼, High's and Low's
03 성장의 가치, 'Daily Challenge'
04 팀원의 갈등 관리, '회고 데이'
05 서비스의 간접 체험, '머리말랑토크'
룰 셋팅과 운영 안에는 '회고, 스크럼, 팀 가치' 등이 골고루 담길 수 있도록 했다. 개발을 하다 보면 분명 모든 룰을 지키기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최대한 부담이 없는 선에서 운영 관련 부분을 준비했다. 하나씩 정리하자면 아래와 같다.
처음 만났을 때 작성한 우리들에 대한 정보, 서비스를 소개해 둔 노션의 연결뿐만 아니라 회계나 청소 당번, 요리 당번, 식단표, 회의록 등 함께 합숙을 한다면 필요한 것들에 대해 정리했다.
특히 가장 유용하게 쓰였던 것은 청소 당번과 요리 당번에 대한 페이지였다. 매일 식단표를 대략적으로 정해 뒀기 때문에(그래야 돈 쓰기가 쉽기 때문.. 재료 구매와 관련!) 어떤 날은 점심 식사 준비가 어렵고, 어떤 날은 저녁 설거지가 많기도 했다. 그때마다 지정된 당번에게 도움을 받았고, 또 어떤 날은 본인이 자신 있어하는 요리를 다른 팀원들에게 해주고 싶다고 했을 때 직접 음식을 메인으로 맡아서 하기도 했다.
아, 쓰레기 당번의 경우에는 정해두는 의미가 사실상 없었다. 쓰레기가 쌓일 때마다 팀원들이 너 나할 것 없이 함께 쓰레기통을 비우고 부엌, 거실 등을 청소했기 때문이다. 덕분에 대부분 쾌적한 환경에서 작업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서로 배려하고 협력한 덕분에 생활과 관련해서는 어려운 사항이 없었다. 우리 스토머(STORM 서비스를 함께 만드는 우리 팀원들을 부르는 일종의 애칭)들이 너무 착하고 배려심 넘쳤던 덕분이다.
나는 회의가 길어지면 루즈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물론, 기나긴 의사 결정 과정이 필요한 회의는 제외하더라도 매일 회의를 통해서 서로의 진행 사항을 공유하고 문제가 있다면 각자의 입장에서 방법을 제안하는 자리는 주기적으로 가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의사결정 과정을 '스크럼'이라고 한다. 하지만, 매일 의무적으로 서로 했던 내용을 업데이트하기만 하면 자칫 지루하게 느껴지거나 필요성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그 스크럼에 우리들만의 색을 입혀보기로 했다.
우리의 핵심 가치 중 하나는 소통이었다. 그렇기에 매일 서로의 일상을, 그리고 개발 진행 사항을 어떤 식으로 공유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인지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고, 내린 결론이 위의 'High's and Low's'였다. 단순히 좋았던 점, 개선할 점만 공유하면 워딩이 딱딱하다는 단점도 있었고, 솔직한 이야기를 하기 어렵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가볍게 하루 일상을 공유하고 공감함으로써 그 뒤에 이어질 개발 사항들을 공유하기 전 조금 더 몰랑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High's and Low's는 하루 동안 있었던 일 중 좋았던 점과 나빴던 점을 공유하는 방법이다. 우리 스토머들은 단순히 각자가 맡았던 일에 대한 좋았던 점, 나빴던 점을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일상 속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눴다. 예를 들면, 산책을 다녀온 것이 즐거웠다거나 점심밥이 맛있었다거나 아침에 피곤했는데 깨워줘서 고마웠다 등. 우리 스토머들의 성향이 소소한 것에 행복을 느끼는 것도 있었겠지만, 확실히 분위기가 부드러워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정말 고마웠던 점은, 처음에는 개발자들이 바쁜데 이런 것까지 하게 된다면 많이 바쁘지 않을까 고민했지만 우리의 스크럼 문화로 자리하게 되면서 스토머들도 그 시간 동안 본인의 하루 일과를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팀 스톰의 핵심 가치 중 '성장'이 있다. 주희와 나는 그 성장을 어떤 식으로 이끌어낼지에 대해서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결과 'Daily Challenge'라는, 부담스럽지 않지만 앱잼 동안 자신이 어떤 목표를 가지고 하루하루를 보냈는지 알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냈다.
데일리 챌린지는 매일 아침 스토머들이 일어난 직후(바쁘다면 일상 중) 당일에 달성하고자 하는 소소한 목표를 구글 폼을 통해 적고, 그 전날 세운 목표를 본인이 생각했을 때 얼마나 달성했는지를 기록하는 것이다. 작성해야 하는 내용은 그리 길지 않다. 업무적인 목표를 제외하고도, 오늘 생각했을 때 꼭 이루고 싶은 목표가 하나쯤은 있을 것이고 이를 그 날의 활력으로 삼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까먹기도 쉽고 하루 정도 놓쳐버리면 다음부턴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었기에, 매일 아침 눈을 뜨면 공지 카톡방에서 한 번씩 리마인드를 해주었다. 모든 스토머들이 100% 참여하기는 어려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꾸준히 10명 정도의 스토머들이 데일리 챌린지를 작성해주었다.
데일리 챌린지를 하기만 하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렇기에 결과물을 어떤 식으로 엮어줄지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 결과, 위와 같은 형태로 스토머들의 일상을 엮었다. 질문은 크게 세 가지였다. 오늘의 기분과 목표, 그리고 그 전 날 달성 정도에 대한 것이다. 이를 오른쪽과 같이 한 명씩 다 다르게 작성하고, TI로서 했던 생각을 추가로 적었다. (시간 진짜 오래 걸리긴 했다.) 16일 동안 데일리챌린지를 작성했기 때문에, 각 페이지마다 우리의 추억을 상기할 수 있는 이미지를 함께 포함시키기도 했다.
그리고 데모데이 발표 당일에 스토머들에게 결과물을 한 장 한 장 뽑아서 앨범에 넣은 후, 선물과 함께 주었다. 의도했던 대로 스토머들은 감동을 많이 받았고, 팀원 중 한 명을 울리기도 했다. (뿌듯)
앱잼을 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은, '사람 때문에 힘들지 않도록 면밀히 살피자!'였다. 사실 개발자나 PM, 디자이너는 그들이 해야 할 일이 굉장히 명확하지만 TI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잘 모르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 개념은 SOPT에서 생겨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팀을 잘 굴러갈 수 있도록 하는 역할이다!라고 정의할 수는 있지만 쉽지는 않은 일이었다.
그래서 팀원들과 정말 많이 대화했다. 그들이 힘든 일이 있을 때 마음 편히 상담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했고, 실제로 앱잼 이외에도 본인의 고민이나 힘든 일을 털어놓는 팀원들도 많았다. 나는 그들에게 기댈 수 있는 존재라는 사실이 행복했다.
개인 회고를 통해 우리 팀 내에서 어떤 불만 사항이나 혹시나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갈등을 파악했다. 그리고, 팀 전체 회고 날인 '회고 데이'를 통해서 문제를 함께 해결하고자 했다.
전체 회고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회고의 룰을 정하는 것이다. 회고는 자칫하면 서로의 불만에 대해서만 오갈 수 있고, 감정이 상하게 될 수도 있다. 이런 부분을 방지하기 위해서 회고 데이의 목적과 우리 팀의 회고데이 룰에 대해서 먼저 언급했고 만약 이와 조금이라도 어긋난다고 생각하면 방향을 잡는 역할을 했다.
두 번째는 Action Plan을 설정하는 것이다. 단순히 무엇이 좋았고 나빴다로 끝나면 회고는 의미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나온 피드백을 기반으로 어떤 부분을 고쳐나가야 할 지에 대해서도 함께 논의했다. 합숙을 시작한 지 절반 정도 지나서 진행된 회고 덕분에, 다들 마음에 담아둔 이야기를 털어놓고 조심할 부분에 대해서는 조심할 수 있게 되었다.
현지가 처음 함께 운영 룰 셋팅에 대해 고민할 때, 꼭 넣고 싶었던 부분이었다. 브레인스토밍의 필요성이나 룰, 그리고 공감을 유도하기 위해서가 첫 번째 목적이었고 다들 힘든 시간대에 모여서 머리를 식히는 시간을 가지기 위함이 두 번째였다. 한 가지 주제에 대해서 포스트잇으로 브레인스토밍을 하고, 그 결과에 대해서 자유롭게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처음에는 다들 자신의 의견을 내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조금씩 자유롭게 본인의 의견을 내기도 했고 나중에는 정말 여러 가지 자유로운 의견을 던져서 그중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를 찾기도 했다. 그러면서 스토머들은 우리의 서비스에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우리는 우리만의 앱잼을 했다.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것들은 여러 차례 배웠기 때문에, 어떤 부분을 개선하면 더 효율적이고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은 나에게 큰 도전이었다.
주희와 함께 이런 운영 셋팅을 하면서 가장 걱정했던 점은, 바쁜 와중에 이렇게 많은 것들을 다 하려고 할까? 에 대한 것이었다. 하지만, 정말 바쁜 마지막 며칠을 제외하고 스토머들은 정말, 진심으로 즐겁게 대부분의 활동에 참여했다. 룰을 정해두고 지키는 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인데, 너무 고맙게 생각한다.
개인 회고 중 나왔던 말 중 가장 뿌듯했던 것은 "앱잼 전에는 TI가 왜 있어야 하는지 몰랐는데 이제는 알게 되었어"라는 것이다. 내가 가장 이루고 싶었던 목표이기 때문이었다. 운영 부분도 주희와 함께 역할 분담을 잘하고자 하는 것이 나에게는 큰 과제였다. 일을 나눠서 완벽하게 잘할 수 없다면 내가 더 많이 일을 해야지, 라는 생각을 주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희와 내가 나눈 운영적인 부분에서의 업무는 정말 완벽에 가까웠다. 협업을 많이 경험했지만, 이번처럼 만족스럽게 한 경험은 거의 없었다. 이 점 또한 TI로 앱잼에 참가하면서 배울 수 있었던 큰 부분 중 하나였다.
이 글은 다음 앱잼, 혹은 그 이후의 앱잼에서 TI가 될 누군가에게 꼭 전달되었으면 한다. 팀 내에서 TI는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고, 팀원들이 서비스를 만드는 데 어려움이 없도록 하는 존재이다. PM이 서비스를 기획한다면, TI는 팀을 기획하는 역할을 한다. 팀 빌딩 전에는 기획적인 부분에서의 기여를, 팀 빌딩 이후에는 기획적인 부분과 더불어 팀원들의 뒤에서 힘이 되어주는 것. TI로서 배울 수 있었던 가장 큰 가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