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거니즘의 세계에는 슬픔만 있는게 아닌데요?
안녕하세요, 베러테이블의 토토입니다.
이 편지를 쓰는 오늘은 금방이라도 비가 쏟아질 것 처럼 날이 흐리네요. 날씨 어플을 확인하니 저녁엔 비가 온다고 해서 우산을 들고는 나왔는데, 이미 몇번을 속은지라 오늘도 우산을 들고 나올지 말지 굉장히 고민 했어요. 장마철이고, 날씨라는 것이 늘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것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더더욱 실시간으로 날씨가 급변하고 있다고 느껴요. 매번 오늘의 운을 시험하는 심정으로 집을 나서곤 한답니다.
조금 선선한 것 같다고 느끼는 어느 여름밤에는 유럽의 폭염 뉴스, 불붙은 미국 대륙의 장면들을 보면서 골똘해지고는 해요. 고요하고도 편안한 나의 방, 미세한 소음을 내며 돌아가는 선풍기 바람, 습기 탓에 약간 꿉꿉한 이불. 나의 일상을 지탱해주는 편안함들에 둘러쌓여 안전함을 느끼는 한편, 어쩐지 섬찟한 마음도 드는 거에요. 지금의 안전함이 계속 될까? 당장의 안전함을 평화라고 이야기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이어서 하면서요.
가볍게 날씨 이야기를 하며 레터를 시작하려고 했는데, 이야기 하다보니 조금 심각해졌죠? 날씨 이야기도 이제는 스몰토크가 되기 어려운 걸까 하고 조금 슬퍼지려고 하지만, 레터 제목에서 짐작하셨듯 오늘은 즐거움에 대해 이야기 하려고 해요! 비거니즘의 세계엔 슬픔만 있는게 아니라는 걸 늘 얘기하고 싶었거든요.
저는 제철 재료를 챙겨 먹으며 시간의 흐름을 감각하는 것을 좋아해요. 달력을 확인할 때보다 집 근처 마트의 가판대에 어떤 과일이나 채소가 나와 있는지를 살피면서 시간의 흐름을 뚜렷하게 느끼곤 하는 것 같아요. 몸도 세상도 얼어붙는 겨울에 마트에 딸기가 깔리기 시작하면 딸기의 새콤달콤함을 맛보면서 봄을 기다리게 되고요. 시장에 찰옥수수가 깔리고, 벗겨낸 옥수수 껍질이 여기저기 널부러져 있는 풍경을 보며 여름이라는 걸 감각하곤 해요. 특별할 것 없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날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별 다를 것 없다고 느껴질 때마다 매일을 착실하게 자랐을 작물들의 시간을 가늠해보게 돼요.
많은 식재료들이 손질이 된 상태로 매끈한 랩이나 비닐에 포장되어 판매되지만, 저는 여유가 된다면 손질이 되지 않은 재료를 구매해요. 그리고는 집에 돌아와 흙이 묻은 채소를 손에 쥐거나 손끝으로 매만져보곤 합니다. 재료를 흐르는 물에 씻어내고 만들 음식을 상상하며 그에 맞는 크기와 모양으로 자르거나 다듬는 과정은 번거롭기도 하지만, 그 과정을 찬찬히 곱씹다보면 자연스레 나의 식탁과 그 이전을 상상하게 되더라구요. 계절과, 농장과, 대기와, 지구와 연결감을 느끼면서요.
또, 논비건 레시피들을 비건 버전으로 바꿔서 만들어보는 것도 재밌어요. 마파두부 레시피에서 다진 고기를 넣는 대신에 베지볼을 으깨 넣어본다던가, 에그인더헬에서 계란 대신에 두부를 넣고 만들어본다던가요. 재료를 바꾸어보고 새롭거나 익숙한 맛을 느끼면서 비거니즘을 삶에 들이는 것은 무언가를 포기하거나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스펙트럼을 넓혀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알게 되기도 해요.
비건 지향에 대한 논의들, 이야기들을 나누다보면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곤 하잖아요. 지구가 버틸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 남았다는 소식이나 공장식축산 시스템의 처참함이나 부조리, 비합리성 같은 것들, 보고있으면 아득한 마음이 드는 쓰레기산의 풍경 같은 것들이요. 저는 가끔 문제들이 문제로 여겨지지 않고, 어떤 이미지로만 비춰지고 끝나는 것 같다고 느껴요. 물론 비거니즘, 동물권, 환경문제, 기후위기에 대해 이야기 하기 위해서는 앞서 나열한 문제들이 어떤 현실에 처해 있는지, 어떤 부분이 어떻게 문제인지 정확히 아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생각하지만요. 중요한 것은 정확히 알기도 전에 어떤 이미지만을 보고(혹은 보려고조차 하지 않고) ‘심각하네’ 정도의 감상만 남긴 채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는 거에요.
많은 문제들이 이런 식으로 이야기되고 사라지는 것 같아요. 문제를 가리고 있는 어떤 이미지들에 둘러쌓여서요. 예를 들면, 비건을 지향한다고 이야기 했을 때 제가 왜 비건을 지향하고 어떤 즐거움을 느끼면서 지속하고 있는지를 궁금해하기 보다는 맛있고 영양적으로도 필수적인 육식을 포기했거나 참는 사람처럼 여기는 반응들을 마주할 때 말이에요. 그럴때면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시작되기는 커녕, 그저 서로가 서로에 대한 이미지만 남긴 채 멀어지게 되더라구요.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할 때 듣기 좋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야만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은 것은 아니에요. 다만, 비거니즘에 대한 상상력을 조금 더 넓히고 싶다는 생각을 해요. 우리 생활 가까이에서부터 비거니즘을 감각하면서 거꾸로 되짚어 나가는 방식으로요. 당장 오늘 점심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을거에요. 무언가를 먹는다는 것은 나에게 어떤 의미인지, 요리를 하거나 함께 무언가를 나누어 먹는 일이 내게 어떤 변화를 가져다 주는지,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고 선택하며 먹는 것이 어떤 즐거움과 기쁨을 가져다 주는지요.
이렇게 쭉 이야기 했지만 어떤 방식이 더 큰 변화를 만들고, 더 많은 사람들을 동참하게 할 수 있는지는 사실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동안 저의 비건 지향 생활을 되돌아 볼때 다음을 그릴 수 있고, 지속할 수 있는 동력이 되어주었던 순간들은 즐거움을 느꼈던 순간들이었어요. 비거니즘에 대해 이야기 할 때 필연적으로 슬픔과 괴로움을 마주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들을 포착하고 꺼내어 이야기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조금씩 비거니즘의 세계에 대한 상상력을 넓혀갈 수 있다면, 비거니즘의 세계에는 슬픔이 있지만 슬픔이 전부는 아니라고, 기쁨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데에 주저하지 않으려구요. 제가 베러테이블에서 기쁨과 즐거움의 순간들에 더욱 주목하고, 확성기를 대고 싶은 이유에요.
옥수수가 있는 여름을 사랑하는
토토 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