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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초래 Aug 23. 2022

베러레터 #03. 얼굴을 마주보는 사이

고통이 가득한 사육장을 보는게 힘들다면, 얼굴을 마주볼까요? 

안녕하세요. 베러테이블의 초래입니다.

끝날 것 같지 않던 비가 그치고 거짓말처럼 갑자기 공기가 달라졌어요.

다들 가을이 성큼 다가온 걸 느끼고 계신가요?

온도가 몇도 낮아진 것 뿐인데도 지쳤던 몸과 마음이 살짝 풀리는 기분이에요.

‘온도를 낮추는 일’이 실제로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보며 이번 레터를 시작합니다.


치킨이 치킨을 권하는 우스움 


10년.. 정도 된 일인데요. 제가 잠시 일 때문에 전주에 살았던 적이 있거든요. 아주 잠시요. 그때 한옥마을 가장자리의 어떤 길을 지나다가, 충격적인 간판을 하나 봤어요.

닭볶음탕부터 고기구이까지 모든 걸 다 파는 평범한 식당이었는데, 가게 전면을 가득채운 기다란 간판에 닭의 사진, 돼지의 얼굴 사진, 소의 얼굴 사진이 너무 날것으로 뽝! 박혀있는 그런 간판이었어요.


그즈음 치킨집 캐릭터로 치킨을 들고 있는 닭의 모습이 동족상잔을 보여준다는 유머가 돌기도 했는데요. 그래서인지 캐릭터가 있는 것도 이상한데 너무 실사가 붙어있으니까 좀 당황스럽고, 무섭더라구요. 친구는 보고 ‘영정사진도 아니고 이게 뭐야' 라고 했구요. 저희 둘다 채식의 개념도 제대로 모르던 사람이었는데도 어떤 불편함이 선명하게 느껴졌던 것 같아요.


그런데 얼마전 맥도날드 광고를 보다가 깜짝 놀랐어요. 맥도날드의 패티가 어떤 환경에서 자란 소로 만들어지는지 보여주기 위해 아름답고 푸른 목장의 소들을 보여주더라구요. 물론 그 다음 장면엔 패티가 나왔습니다. 이 광고를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지 모르겠네요. 저는 조금 충격적이었어요. 미디어의 자극에 계속 노출된 현대인들에게 불편함의 역치가 너무 높아져버린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소가 청정자연을 가득 품고 자라는 시간을 기다려 만들어진 순쇠고기 패티를 이야기하는 바로 그 맥도날드 광고


중립적인 단어 뒤로 숨기는 불편함과 죄책감


제가 처음 채식이라는 세계를 접할 때, 저에게 좀 힘들었던 것은 고기를 고기라 부르지 않고 사체라고 부르는 활동가들이었습니다. 물론 그 말은 고기를 먹는 사람이 불편하라고 사용하는 말이에요. 사체를 사체라 부르지 않고 ‘고기'라는 중립적 단어를 사용해 부르는 순간 우리는 동물의 죽음이 아니라, 음식을 생각하고 죽음과 관련된 것에서 오는 여러 불편함을 잠시 망각하게 된다고 해요. 그것이 고기meat라는 단어의 기능이라고 합니다. 요새는 물고기도 물살이라고 많이들 부르시죠. 그걸 알고 나니 사실 저는 고기라는 단어에서도 자연스럽게 사체라는 이미지가 연결되고는 합니다. 망각의 축복을 빼앗긴거죠. 이제는 응당 내가 견디거나 벗어나야할 거라고 생각하며 마주하고 있어요.


그런데 맥도날드의 광고를 보고 나니, 사람들은 더이상 살아있는 동물이 → 고기가 된 모습을 연달아 보여줘고 더 이상 불편을 느끼지 않는 것 같아요. 제가 본 영상이 목장에서 패티가 풀을 뜯고 있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저도 이렇게 놀라지는 않았을거거든요. 소비자들이 동물이 죽어서 고기가 된다는 사실에 무뎌진 걸지, 혹은 동물이 죽고, 가죽을 벗기고, 자르고, 가공해서 고기가 되는 과정이 전혀 상상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라 불편함도 없는 건지 궁금해지더라구요. 그리고 도대체 이 광고를 제안하고 승인한 사람들은 누구일까…? 어쩌면 막 곰의 쓸개즙을 찾는 어떤 사람들처럼, 내가 건강하고, 맛있고, 마음 편안하게 고기를 소비하기 위해선 목장상태 확인하는건 기본이지! 이런 문화가 …생기고 있는걸까요?


이렇게 말하는 저도 아직까지도 고기를 많이 먹는 편이고, 여전히 동물권과 관련해서 도축장이나 사육장의 상태를 고발하는 영상이 올라오면 빠르게 스크롤을 내리거나 흐린 눈을 하고 보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에요. 부끄럽지 않습니까!! 이것을 보십시오!! 라고 제가 말하기엔 부족함이 많고, 내가 어떤 선택을 하고 있는지 직면하기가 두렵습니다. 직면과 결단을 차일피일 미루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구요. 알면서도 못하는 것, 비합리와 모순으로 똘똘 뭉쳐진 존재 중의 하나가 저에요. 저는 저와 같은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마음의 준비를 하면서 비건의 세상으로 한걸음씩 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구요.


고통보다 더 선명하게 내 맘을 사로잡은 얼굴들 


고통을 느끼며 살아있는 동물의 얼굴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던 저에게 요새 눈에 쏙 들어온 책이 하나 있어요. 아직 출간된 책은 아니구요, 세상에 나오려고 준비를 하고 있는 <사로잡는 얼굴들> 이라는 책입니다. 알라딘에서 북펀딩을 하고 있더라구요. 이 책은 위험에 처한 동물들이 구조되어 안전하고 자유롭게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안식처 생추어리에 사는 늙은 동물들의 초상과 이야기가 담긴 이사 레슈코의 사진에세이입니다.



저를 사로잡은 문구는 “나이 듦이 허용되지 않은 세계에서 우리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들” 이라는 책 소개의 첫줄이었습니다. 우리가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나 고양이는 평균 수명이 10년을 훌쩍 넘기고, 의학의 발달로 수명이 점점 길어지고 있잖아요. 저도 13살 노묘를 키우는 집사로서 고양이 평균수명과 수의학기술이 발달하길 간절히 원하고 있구요. 청년일 때 만난 저희집 고양이는 늘 얼굴에 긴장이 서려있었는데요. 노묘가 된 지금은 쳐진 눈꺼풀만큼이나 그윽하고 여백이 생긴 모습으로 저를 바라봅니다. 동물의 얼굴이 나이들어간다는 사실 자체는 새롭지 않았어요.


다만 ‘나이듦'이 허락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처음으로 생각해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가 반려해주지 않는 생명이 살아가기 위해선 먹이와 쉴곳과 어떤 방식으로든지 보살핌이 필요합니다. 길고양이처럼 어떤 돼지, 소, 닭들도 마찬가지겠지요? 하지만 그 비용을 댈만큼 경제적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생명들에겐 더 살아있기가 허락되지 않습니다. 저는 사실을 깨달으며, 8살이면 시집을 가야한다는 어떤 문화의 소녀들이 생각이 나더라구요. 만약 나라면, 새 해가 오는게 얼마나 무서울까, 이런 생각을 했었거든요.

이어진 책소개에서 미리 보게 된 늙은 동물들의 초상에서 저는 저희 할머니와 저희집 노묘를 동시에 발견하게 되었어요. 살아온 이야기와 상처를 끌어안고, 온몸으로 생을 관통하고 있는 모습에서 저의 미래를 떠올리게 된 것도 자연스러웠구요. 그러자 이 책이 기다려지더라구요. 고통이 가득한 사육장을 보는 건 힘든일이지만, 자연스럽게 나이든 동물들의 얼굴을 보고 함께 이야기나눌 수 있다면 조금 다른 방향이지만 우리는 결국 비슷한 마음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제가 처음 간헐적 채식을 시작할 때 저에게 채식의 개념을 알려주던 친구가 있었어요. 맥주도 비건이 아니야? 라고 묻는 저에게 “응. 그리고 이건 나도 좀 신기했는데, 얼굴이 있는 생물을 먹지 않는 사람들이 있거든. 근데 효모가 얼굴이 있대. 그래서 발효식품을 먹지 않는 사람들도 있어.” 라는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저는 그날 굉장히 무례하게 “유사과학같아.” 라며 웃었거든요. 그런데 최근에 읽었던 이슬아님 인터뷰집 <깨끗한 존경>에서 김한민님의 인터뷰를 읽었는데요. <아무튼, 비건>을 읽으신 분들도 아실텐데, 얼굴의 힘이라는게 있다구요. 진짜 잔인한 말을 하는 상대에 우리가 “내 얼굴 똑바로 보고도 그런 말 할 수 있어?” 이렇게 묻는 것처럼. 그 글을 읽으니 아주 후회가 되고, 부끄럽더라구요.


예전에 읽었던 이어령님의 책에서 얼굴이라는 말은 얼(영혼, 정신)의 꼴(모양)이다. 라는 말장난 같은 어원을 보고도 밑줄을 쳤던 기억이 나요. 거울을 보면서 40살이 지나면 내 살아온 삶이 얼굴에 다 나타난다던데 하며 괜히 인위적인 미소 연습도 하구요. 모든지 인간처럼 생각하고, 느끼고, 이해해야하는 것이 아니라는 전제가 굳이 없어도 동물들의 얼굴도 그 생김새가 모두 다른 것처럼, 그 살아온 삶과 지각을 담은 영혼의 생김새일꺼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얼굴이 있는 걸 안 먹겠어같은 다짐 보다는,

얼굴 마주보는 일을 피하지 않겠어. 눈을 마주치겠어. 라는 다짐을 해야겠다. 라는 생각도 함께요.


혹시 여러분도 <사로잡는 얼굴들>을 좀 더 일찍 만나고 싶으시다면, 

아래 링크에서 더 자세한 책 소개를 만나보세요.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From. 초래


<사로잡는 얼굴들> 알라딘 북펀딩 페이지

https://www.aladin.co.kr/m/bookfund/view.aspx?pid=1772&fbclid=IwAR17wFviUOVWNibyVAg0aYlxiKa2eHBORtNG5N-v44tPNnezw7-OXAaObh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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