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화-유민지
급하게 돌아서던
이신과
스크린톤을 집고가던
스텝이 부딪혀 쓰러졌다
쓰러진 여자 스텝은
자기 잘못도 아니었지만
급하게 일어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하며 고개 숙여 연거푸
사과를 했다.
그 모습을 보던
이신은 너무나 놀라
아무 말도 못하고
커진 눈으로 지켜보고만
있었지만..
얼마 못가
커진 양 눈동자에
눈물이 그득 고이게 되었다
“타닥!”
“드르륵!!!”
“저기!선생님!”
원래 상가 건물이라
하얀 알루미늄 미닫이문인 출입문을
세게 열고
이신은 밖으로 달려
나갔고,
강대호는 깜짝 놀라
이신을 불렀다
“으아아아아아아아~~!!!”
골목을 끝없이 뛰어나가는
이신.
그 얼굴은 눈물 콧물로
가관이였다.
한참을 뛰어가
달동네 계단 끝 난간에
멈춰선 이신.
녹슨 쇠 난간을
손이 시려운지도
모르고 양손으로 잡고
상체를 숙여 헐떡이며 숨을
고른다.
“허억”
‘어째…어째서….’
‘내가 얼마나 조심을
했는데…
왜…
왜….
여기 있는거야?’
“허억”
“서,선생님”
“헉,헉.서..선
선생님”
계단 밑에서 강대호가
헐떡 거리며
올라온다.
“왜..왜 그..
그러시는..허억.허억..
건가요?”
다 올라와 이신 옆에 선
강대호가 내장을
토할 듯 겨우 말 한다
가슴 찢어지는 기억에
괴로워 하던 이신은
강대호의 꼴이 우스워
마음이 잠시나마 좀 풀린다.
이렇게 죽기 살기로
따라 올라온 이유가
뻔했기 때문이다.
“서..선생님…
뭐..뭐..제가
자..잘못한..허억
거라도..허억..
있나요?”
“하하.아닙니다.
저..근데요”
“어?네...
마..말씀..
하세..요”
“저 여자분은
어떻게 화실에
들어오게 된건가요?”
“예?누..누구?
아…아까 걔..요?”
“어어..어..어제..
화실…에..
새.새로 들어왔어..요.
아뇨…아뇨..
제 작업..실
말..고
조..조운항 서..선생님..
화..실에..요”
“근데요?”
“예?아..아니..
서..선생님이
제 요량..대로
며..몇명..뽑아서..
따..로..팀..만들..라고..
하셔서..
초.초보라..
지..지우개질..이라도
시..킬라고
데..데리..고 왔죠”
“아….”
“그..그랬군요..
알겠습니다..
전 그만 가보겠습니다.
작업 이야기는
다 전달 했으니까
그대로 해주시면 됩니다”
“예..서..선생님..
왜..그러 시..는지..?
제..제가 뭘..잘못..”
“아닙니다.아닙니다.
추운데 들어가세요.
저도 그만 가보겠습니다”
강대호는 혹시
다 따낸 일이 수포로 돌아갈까봐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인사하고
돌아섰다.
강대호가 사라지고
이신도 달동네를 내려가다
구멍가게 옆에 있는
커피자판기 앞에 멈췄다.
‘미치겠네…
난 역사가 뒤틀린줄 알았어’
“짤랑~짤랑”
자판기에 동전을 넣고
“밀크커피”버튼을
누른 이신.
“탁”
“지이잉~”
자판기에
종이컵이 떨어지고
커피가 부어진다.
‘이게 이렇게 연결될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덜컥”
자판기
사출구의 투명한 플라스틱
뚜껑을 열고
커피를 꺼낸다.
날이 워낙 추워
그 작은 종이컵 커피에서도
김이 제법 나왔다.
‘난 다시 만나고 싶지 않았어’
커피를 들고
다시 달동네를
걸어 내려가는 이신
후후 불어가며
겨우 한 모금을
마신 이신의 턱으로
볼을 타고 내린
눈물이 맺힌다
“민지야…..크흑”
유민지.
원래의 생에서
이신과 15년 이상
같이 살았던
이신의 여자였다.
조운항 화실에
막내로 유민지가
들어오면서 둘은
사귀게 되었었고
젊은 시절
한때 좋은 시절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십수년을
이신이 고생만 시켰던
여자가 유민지였다.
97년으로 오고 며칠이
지나자
당연하게도 유민지
생각이 났었지만
애써 머리를 가로저으며
그 생각을 접었었다.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았지만,
게다가 이번에는
고생 시키지 않을 자신도
있었지만…
이전 생의 상처가
얼마나 컸던지
대면자체가 무서웠고,
IMF가 터지면서
사라진
“역사가 바뀐다면”하는
그 불안이 다시 생겼기에
유민지를 이신은
다시 보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강대호도
조운항 화실 밖에서
만나면서 조심을 했었는데..
이신의 인생에서
가장 상처로
남은 것이 어머니와
유민지였다.
97년으로 와서
이제 겨우 즐거움을
맞보기 시작했는데
도저히 어찌할 수 없는
슬픔이 이신을 덮친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고통을,
자신의 무력으로 구제할 수 없는
괴로움은 헤아리기 힘들다
추운 밤길을
이신은 울며 걸어 내려갔다
“탁”
“자 열어보셔”
수혁이 이신앞에
상자 하나를
내려 놓았다.
한창 차트1위를
달리고 있는
지누션의”말해줘”가
흐르고 있는 카페에
둘이 마주 앉아 있다.
“오호~”
이신은 상자를 열어
제품을 꺼냈다.
“오~모토로라?
이게 좋은거야?”
“몰라.걍 무난한거
달라고 했지.나도 그거야”
“빨리 키고 걸어 봐봐”
이신이 pcs폰에 전원을 켜자
엄지손톱만한 액정에
전자시계에 쓰이는…
깜깜한 밤이나 되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초라한
연두색 불이 들어왔다.
“오!됐다.야 니 번호 뭐라고?”
“016…”
“삑삑삑..”
이신은 수혁이 불러주는
번호를 다 누르고”send”버튼을
눌렀다
“삐리리리”
“오호~잘 되는데?”
“삑”
“여보세요?”
“하하하.잘들린다 야!”
“야야.요금 나온다.끊자!”
“탁”
“하하하.이 형 웃기네?
돈도 많으면서 뭐 이건
이렇게 벌벌 떨어?”
“어?이거 요금 비싼거 아냐?”
“아냐.기본 요금은 월에 2만원.
통화료는 1분에 50원.
쓸만하지 않아?안비싸”
“우와~진짜 싸네?
난 기억이 오래 되서
엄청 비싼..”
“뭐?기억?며칠전만 해도
pcs폰 나온지도 몰랐었다메?”
“으험험.아..말이 헛나왔어.
짜식이 뭘 따져.여튼 수고 했다 야.
근데 진짜 문제야.문제.
내가 안 가고 너 시켰는데 이렇게
막 개통해주고 그래도 되냐?이거”
“하하.안그래도 아저씨가
안된다 그랬는데
내가 인감이랑 등본 있잖아요!
라면서 겁나 우겨서 억지로
했어”
“캬~우리 수혁이.능력 있네.
잘했어.잘했어”
수혁은 나이가 두살차이 밖에
안난다고 자주 이야기 했지만
이신에게 칭찬 받는걸
티나게 좋아했다.
완전 티나는 표정으로
머쓱하게
앞에 놓인 커피를 마셨다.
그 모습을 귀엽게 쳐다보던
이신에게
수혁이 뜻밖의 말을 꺼낸다
“형..근데..아직 환율 1900원대던데..
그게…좀…”
“뭐여?왜그래.말을 해”
“아니..좀 아깝지 않냐고?
형이 2천원 찍고 내려온다 그랬었잖아.
근데 아직 2천원은 안됐으니까
좀..아까운거 같아서..”
“이 새끼 봐라?
야.너 그러다고 조진단 말야.
그거 작은 그 욕심 채울라고
들어갔다가
열배 스무배 날려먹는다고.
그냥 환율은 신경 꺼”
“어,어.알았어.그냥
그냥 해본말이야”
그런데 수혁의 이 말을 듣자
이신은 갑자가 수혁이
아버지 생각이 났다.
“야.니네 아부지 요즘 뭐하시냐?”
“어?아..아부지”
“우리 며칠전에 이사했잖아?
빌라로.그러고 부터
친구들이랑 놀러 다니시느라
바빠”
“흠…”
“니네 아빠.도박은 안하시냐?”
“아..진짜 너무하네.막 나가는 면이
있긴 하지만 그렇게까진
아니야”
“아..미안.걱정이 되서 말이야..”
“아휴..참 걱정이다.
니네 아부지만 딱 마음 잡고 잘해주시면
좋겠구만..
그냥 지금 상태만 되셔도 좋을거 같아.
근데 돈 너무 쓰시면 안되는데..”
“쩝..그건 그래”
“아,형.그 대여점.형이 계약 했다메?
어떻게 했어?
권리금 2천이라고 했었잖아”
“하하.아 그거…”
“권리금을 막 크게 깍아준것
처럼 1500으로 해준다며,
재고도 3천에 준다고 하더라고”
“오~오백만원 깍았네?
그 값으로 했어?”
이신도 앞에 있던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
말을 이었다
“그 값으로 한다고?
하하”
“‘네네~그렇게 많이 파세요’
하고 나왔지”
“뭐?”
“그랬더니 그 뚱뚱한 아저씨가
카운터 위로 뛰어올라
엎드린채
날 붙잡더라고”
“으하하하.진짜?
엄청 뚱뚱했는데?그래서?”
“뭐..어쩌고 저쩌고
자기 제품들 다 새거다.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어쩌고 저쩌고 말이 길더라고.
그래서 아 어쩌라고요?”
“라고 했지”
“오~”
수혁이 상체를
이신쪽으로 들이밀며
물었다
“그래서?”
“그렇게 떠들던 아저씨가
체념한듯 풀이 팍 죽어서는
아무말도 못하고 있더라고”
“그래서 할 말 없으면 갑니다”
“하고 갈려니까 다시 붙잡더라고?”
“오오~그러더니?”
“보..보증금 천만원에
재고는 2천에 주겠대”
“우와~형 죽인다!!!”
“완전 도사네?”
“도사?”
이신 맞은편에 앉아서
이신쪽으로 상체를 쭉 빼고 있는
수혁에게 이신도 얼굴을
가까이 들이밀고 이야기 했다
“보증금 700에 재고 천만원에 계약했어”
“뭐?!!!!!!”
수혁이 펄쩍 뛰며 소리 질렀다
“와~이 형.이거 완전 무섭네?
그게 말이 되는 가격이야?”
이신은 소파 뒤로
등을 파묻으며 팔짱을 낀채
거만하게 이야기 했다
“수혁아.수혁아.상대가
배를 깠잖냐.근데 왜 자비를
베풀어?그럴땐 목덜미를
바짝 더 세게 무는거야.
이가 척추에 닿을때까지 바짝”
“짝짝짝”
수혁이 박수 치며
말했다
“와..이형.이거 진짜..
완전 타고 나셨나봐?
대체 그런건 어디서 배운거..”
“저….혹시”
한창 까불던 수혁의
말을 끊고
어느 여자가 둘의 테이블로 다가왔다
이신이 그 여자를
보자마자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
“너!!!!!!”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