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오는 날 가장 떠오르는 장면 - 비 맞던 날 배운 자유와 돌봄
우르르 쾅쾅—번쩍! 하늘이 갈라지는 듯한 소리와 함께 폭우가 쏟아지던 밤이 있었다.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굵은 빗줄기, 제대로 켜진 조명 하나 없는 어둠 속에서 나는 어디로 발을 내딛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아스팔트인지 흙길인지, 오직 발 밑으로 느껴지는 감각만이 내가 서 있는 자리를 알려주었다. 몸이 휘청거릴 만큼 큰 우산을 쓰고 있었지만, 우산은 비를 가려주기보다 오히려 번개를 맞는 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을 불러왔다.
희미한 앞만 보이다가 번개가 치면, 순간 세상이 낮처럼 환해졌다. 어둠 속에서 잠시 비추어지는 그 풍경이 신기하기도 하고, 잠깐의 안도감을 주기도 했다. 밤이었다가 낮이었다가, 그렇게 번갈아 가며 폭우 속을 달리고 있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는 너무 커서 마치 우산을 뚫고 들어오는 듯했다. 그러나 그 소리는 이상하게도 마음까지 시원하게 두드렸다. 조금이라도 덜 젖어보겠다고 달렸지만, 결국 머리부터 발끝까지 쫄딱 젖는 것은 피할 수 없었다. 심장은 빗소리에 맞춰 더욱 세차게 뛰었다.
짧은 5분 남짓한 시간이었지만, 물웅덩이를 첨벙첨벙 밟는 소리와 슬리퍼 안으로 스며든 빗물의 차가운 느낌이 꼭 물놀이를 하는 듯했다. 두려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놀이동산에 온 듯 천둥소리에 맞춰 소리를 지르고 크게 웃었다. 아마도 오늘 처음 만난, 나보다 조금 더 나이가 많았던 초등학교 고학년 언니가 옆에서 함께 우산을 잡아주고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그날의 기억은 내게 특별하다. 나는 어려서 깔끔한 편이었다. 일부러 물웅덩이를 밟거나, 머리가 젖도록 비를 맞는 일은 하지 않았다. 항상 어른들의 말을 잘 듣고, 말썽을 부리지 않는 아이였다. 그렇기에 어른도 없이 폭우 속을 달린 경험은 내 삶에서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날의 장면은 꿈속에서도 가끔 나타나고, 비 오는 날이면 언제나 가장 먼저 떠오른다.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온몸이 흠뻑 젖어 축축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 순간은 불편함보다 시원하고 상쾌한 기억으로 남았다. 언니는 내 머리를 감겨주고, 뽀송한 옷을 입혀주었다. 드라이기의 따뜻한 바람으로 머리를 말려주고, 담요를 덮어주기까지 했다. 초등학생이 동생을 돌본다고 하기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완벽한 돌봄이었다.
돌이켜보면, 그날의 경험이 내 삶의 어려운 순간마다 큰 힘이 되어주었다. 폭우 같은 고난이 닥쳐올 때, 그 순간을 상쾌하게 통과할 수 있다는 믿음은 그때부터 내 안에 심겨진 것인지도 모른다.
가끔씩 비가 오는 날이면 폭우가 내리던 밤을 상상한다.
“와, 비다! 하지만 이마저도 너무 재미있다. 번개는 내가 보지 못했던 어둠을 밝혀주고, 큰 천둥 소리는 내가 살아있음을 알게 해주는 구나.
폭우가 내린다면, 비가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더 세차게 내린다면 오히려 좋아. 우산으로 비를 가려야 한다는 부담도 사라지고 비에 쫄딱 젖은 내 모습은 처음에는 무거운 듯해도 오히려 벌거벗은 것 같은 자유를 주겠지.”
그리고 안다. 비가 지나가면 반드시 해가 뜬다는 것을. 따뜻한 바람이 나를 다시 뽀송하게 말려줄 것이고, 나는 새 옷을 입고 조금은 더 자란 어른이 되어 있을 것이다.
이제는 내가 그 언니가 되고 싶다. 언젠가 홀로 폭우 속을 달려야 하는 어린아이를 만난다면, 우산을 무섭지 않게 잡아주고, 젖은 옷을 갈아입혀주며, 담요와 따뜻한 코코아를 건네고 싶다. 그 아이가 폭우를 두려움이 아닌 놀이처럼 기억할 수 있도록, 나도 함께 크게 웃어주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폭우가 지난 아침 환하게 뜨는 무지개를 그 아이와 나란히 바라보고 싶다. 그 무지개 속에서, 우리는 또다시 성장하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