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김나영 Apr 27. 2021

12 <맑고 잔잔한 수면 바라보기>

나에게는 잊혀지지 않는, 물에 관한 아름다운 기억이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새벽에 조용히 흐르는 강물 위로 물안개가 하얗게 피어오르던 장면과,

운전을 하며 보았던 어느 저수지의 반짝이는 은파의 환상적인 영상미가 깃든 광경,

노을이 그대로 바다에 잠겨 온통 붉게 물들어 버린, 추억이 함께한 인천 연안 부두의 황홀한 금빛 물결,

유럽의 고성이 멀리 보이는 스위스의 레만 호수를 유람하는 동안 미지에 대한 동경심과 포근한 정서를 자아내던 커다란 호수의 푸르른 물결 등등.......

같은 물인데도 제각기 다른 영상미를 자아내며 하나같이 너무도 아름답기 그지없습니다.

모두가 나의 감정을 흔들고 자극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그런 이유로 나는 물을 보는 것을 참 좋아하게 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아름다운 기억을 뒤로하고 특별히 더 마음이 끌리는 물은 따로 있습니다.


나는 파도가 일렁이는 거대한 바닷물보다 깊은 산속에 있는 조그만 옹달샘의 속이 훤히 비치는 맑은 물을 더 좋아합니다.

투명한 물속에서 자그마한 돌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속삭이고 있고 아주 작은 물고기들이 헤엄치는 샘을 바라보며 무한한 마음의 휴식과 평안함을 얻습니다.

사람의 영혼도 어쩌면 그런 모습일 것만 같습니다.


물은 모든 것을 정화해 주는 신비로운 힘을 지니고 있기에 물을 닮으려는 마음을 갖는다면 흐르고 또 흐르면서 세상의 더러움을 닦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우리는 물이 잔잔하게 쉬고 있을 때의 평정 상태를 먼저 닮아야 할 것입니다.

맑은 물을 바라보면 우리의 마음도 깨끗해집니다.

잔잔한 수면을 바라보면 그곳에 반사되는 우리의 뇌파도 잔잔해져서 마음이 고요해집니다.

맑고 고요한 상태가 되어야 나의 내면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고 나면 하늘의 뜻과 세상의 이치도 제대로 깨닫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감각과 감정은 언제나 불안정한 상태이기 때문에 그것에 의존해서 바라보는 것들은 불완전할 수밖에 없습니다.


잔잔하던 물결이 파문을 일으키면 그 속에 비추이던 것들이 일그러져 버립니다.

마찬가지로 마음이 일렁거리면 평정이 깨어져버리고 불안한 영혼이 되어버립니다.

흔들리는 영혼은 자신도, 타인도 도와줄 수 없는 미약한 존재가 되어 그저 우왕좌왕할 뿐입니다.


맑고 잔잔한 물은 커다란 하늘의 마음을 온전히 담고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리고 평온한 상태에서 오히려 크게 열린 나의 마음을 비추어서인지 그 안에서 무한히 커져 있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마치 명상을 하고 있는 사람이 우주를 느끼고 우주와 하나가 된 것을 깨달았을 때처럼 완전한 평화와 충만감을 느낍니다.


나는 낚시를 즐겨하지는 않지만 낚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 그들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의 손맛을 못 잊어 낚시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내가 보기에, 그들은 자신도 모르게 잔잔한 수면 위에 복잡한 자신의 마음을 던져 버리고 나면 왠지 마음이 편안해졌기 때문에 은연중에 낚시를 좋아하는 것이라 여겨집니다.

시간을 낚는다던 강태공도 사실은 물에 비친 자신의 내면 바라보기를 한 것입니다.

그리고는 명상과도 같은 시간들을 즐겼던 것입니다.


나는, 잔잔한 물을 바라보며 뇌파를 안정시키고 조용히 기다릴 때면, 마음이 원하는 것에 대해 고도로 집중된 정신작용이 일어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수면 속에 나의 모든 것이 잠겨있는 듯 미동도 없이 그대로 머물다가 마침내 무념의 상태가 되면 무심결에 말이 흘러나오는 것처럼 하면서, 평소에 간절하게 바라던 것을 입 밖으로 읊조려봅니다.

그러면 나의 소원을 들은 물이 파장을 일으켜 나의 뜻을 우주로 전달하고 우주에서 나의 소원을 알아채고 곧 이루어 주려고 움직여 주기 시작하는 것처럼 느껴지며 큰 희망이 솟아납니다.

불안한 마음으로 조급하게 무엇을 바랄 땐 그것이 아무리 간절해도 불안정한 뇌파의 작용 때문인지, 기도를 하면서도 이루어지지 않을 것만 같은 불길한 마음에 휩싸이곤 했는데,

오히려 아무런 집착도 없는 듯 무심하고 고요한 상태가 되면 마음이 너무도 편안해지면서 소원이 이루어질 것만 같은 희망이 솟아오르는 것을 경험한 적이 많습니다.

그리고 실제적으로도 그러한 상태에서 바라던 일들이 이루어진 때가 더 많았습니다.

그것은, 내가 맑은 기운의 힘을 믿기도 하지만 평정의 상태에서 우리의 정신은 우주의 기운과 더욱 잘 반응할 거라는 상상대로 얻어진 경험들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정화되었더라도 외부로부터 또다시 이런저런 상처를 받아서 흠집이 생기고, 자신도 모르게 양심 밖의 행동을 하게 됨으로써 탁해져 버린 영혼을 느끼며 구도심으로 향하던 마음이 좌절감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동이에 더러운 물이 고이더라도 수돗물을 계속 틀어 놓으면 한쪽으로 조금씩 맑은 물로 교체되듯이,

실망하지 말고 또다시 맑아지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그런데 때로는 수돗물을 틀어놓기보다는 흙탕물이 저절로 가라앉을 때까지 그냥 기다리는 것이 나을 때도 있습니다.

가라앉기도 전에 정화시킨다고 자꾸만 헤저으면 맑아지기가 더욱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조용히 영혼의 상처를 치료하고 싶다면,

그저 가만히 기다려 잔잔해진 맑은 수면을 바라보면서 마음의 물결도 함께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11 <빛이 나는 얼굴을 만들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