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Dr 김나영 Apr 27. 2021

27 < 격(格)에 대하여 >

모든 사물에는 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에게도 격이라는 것이 있어 그 사람만이 지니고 있는 품격에 따로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그 사람의 값을 매기게 될 때도 있습니다.


일찍이 중국 송나라의 주자(朱子)는, 격물치지(格物致知)라 하여 “만물은 모두, 한 그루의 나무와 한 포기의 풀에 이르기까지 각각 이(理)를 갖추고 있으며 理를 하나하나 궁구(속속들이 깊이 연구함) 해 나가면 어느 땐가는, 활연(豁然) 히 만물의 겉과 속 그리고 세밀함과 거칠음을 명확히 알 수가 있다.”라고 했습니다. 주자는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여 후천적인 지식을 명확히 하자는 뜻에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디, 그 이치라는 것을 깨닫기가 쉬운 일이기만 하던가요.

작은 먼지조차도 그것이 지닌 이치를 파악하기란 많은 살핌과 연구가 필요할 것입니다.


사람은 사람으로서의 격이 있으며 동물은 동물로서의 그 나름의 격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이라고 해도,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의 격이 각각 다르며 저마다의 신분과 사회적 위치에 따라 격이 달라지기도 합니다.


사람이라는 본질 그 자체가 지닌 <격>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그리고 하늘 아래 모두가 마땅히 소중한 대우를 받아야 하는 그런 격(格)을 말합니다. 굳이 따지자면 하늘(공간적인 개념의 하늘이 아님) 보다 더 높은 격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하늘과 닮아질수록 저절로 그 격이 상승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의해 평가되고 구분되는 격은 진정한 격이 아니라 편견입니다. 물질의 소유 여부나 학식의 차이 또는 겉으로 꾸며진 모습에 의해 결정지어지는 격은 공장에서 생산해낸 물건의 격과 다르지 않습니다. 가공되는 격이 반드시 나쁘다는 것은 아닙니다. 어차피 마음을 가꾸어, 내면에서 드러나게 하는 격도 엄밀하게 말하면 가공에 속하는 것일 테니까요.

자신의 신분에 맞게 혹은 스스로 격이 떨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언행을 삼가는 것은 분명 품격을 유지하는 데에 매우 중요한 요소입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에 따라서 스스로 격이 달라질 수 있음을 늘 염두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학식이 제아무리 높고 깨달은 것이 많다고 해도 말을 거칠고 험하게 하거나 양식 없는 행동을 한다면 그 사람의 격은 땅바닥으로 곤두박질하고 말 것입니다. 그런 관점에서라면 격을 높이기 위해 하는 가공(-만들어가다- 라는 의미로서의)이란 오히려 필요한 것입니다. 


자연스러운 것이 좋다고, 또는 솔직하게 행동하는 것이 인간답다고 해서 격이 떨어지는 언행이 인간다운 것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진정으로 마음의 격이 높아진 사람은 저절로 격이 떨어지는 행동은 하지 않게 되어 있습니다. 격이 있는 신을 닮게 되었다면 그 사람의 격 또한 당연히 높아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신(神)에게도 격이 있어 품격 없이 떠돌며 사람을 괴롭히는 신들을 가리켜 우리는 잡신이라고 합니다. 잡신의 격을 따르는 사람들은 또한 그 격이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진정한 하느님의 신성을 밝히면 우리는 스스로 그 격에 따라 마음이 시키는 대로 행동을 하게 되므로 누가 보아도 아름다운 내면의 격이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품위 있는 행동은 그 사람을 더욱 품위 있고 값있게 만들어 줍니다.


똑같이 품위 있는 행동을 한다고 해도, 내면에서 우러나는 격을 지닌 사람에게 우리는 마음이 더 끌립니다. 그것은 고급 승용차를 타고 수행을 받으며 우아한 폼으로 다니는 건조한 표정의 귀부인에게서는 결코 느껴지지 않는 특별한 품격이기에 우리도 모르게 마음이 끌리는 것입니다.

얼핏 보면 고상해 보이는 학자나 높은 지위에 있는 정치인들이 마구 쏟아내는 유식한 말들 속에서는, 이성적으로는 공감하는 부분이 있을 지라도 마음까지 이끌리지는 않습니다. 그것은 겉모습만 격이 높은 척할 뿐, 내면의 격이 다듬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뇌하고, 깨닫고, 숭고한 가치를 찾아 구도의 인생을 살아가는 성자나 성현의 말이 우리의 마음을 더욱 잘 흔들리게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사회적 위치로 보아 신분이 하위적인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에게서 오히려 제대로 된 품격을 발견하게 되기도 합니다.


외부적으로만 꾸며진 격은, 격을 만들어낸 요소들이 사라지게 되면 하루아침에 무너지고 말게 됩니다. 부자가 어떤 이유로 거지가 되어 버린 다면 그의 격을 만들어 주던 것이 하나도 없어져서 그의 모습 어디에서도 과거의 부자의 흔적은 찾아볼 수도 없게 됩니다. 그만큼 외부적인 품격은 모래 위에 쌓은 성과 같이 부실하기 짝이 없습니다.


격이 있는 사람의 행동은 누가 볼 때나 보지 않을 때나 다르지 않습니다. 자신의 격은 스스로가 만드는 것입니다. TV에 나오는 상품 광고에서는, 품격 있는 사람의 탁월한 선택임을 강조하여 상품을 구매하게 하는 광고 카피 문구가 꽤나 잘 통합니다. 사람들의 격상되고 싶은 심리를 잘 이용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격조 높은 양복이나 구두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말처럼 돼지 목에 진주 목걸이를 한다고 해서 돼지가 사람의 격으로 거듭나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사람의 격을 제대로 갖추어, 그야말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어야 하며, 같은 사람일 지라도 그 사람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이 종합적으로 질적인 향상이 되어있어야 보다 품격이 있는 것이라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기가 아끼는 물건을 함부로 방치하지 않듯이. 자신을 사랑하고 격려할 줄 아는 사람은 자신의 모습이 천하고 지저분한 곳에 머물게 그냥 놓아두지 않게 됩니다. 좋은 것을 담아 놓을 수 있는 격조 높은 그릇을 구워내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게 됩니다.

좋은 그릇에 모양 좋게 담긴 음식은 보기에도 맛이 있습니다. 작은 그릇에는 작은 것 밖에 담을 수 없고 플라스틱과 같은 반찬 통에 담긴 음식은 제 아무리 좋은 음식도 그 맛이 덜 해 보입니다.


물론, 외형보다는 내용물이 더욱 중요하긴 합니다. 다만, 그 좋은 내용을 좋은 그릇에 담는다면 더욱 좋은 표양이 될 수 있음을 말하려는 것입니다. 

도공이 정성을 다해 도자기를 굽는 마음으로 우리의 격을 만들고 구워내야 합니다. 높은 온도에서 뜨겁게 구워내듯이 자신의 마음을 수양하고 좋은 행동이 몸에 배어지도록 단련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잘못 구워지거나 추구하던 바대로 아름답게 만들어지지 않은 도자기는 가차 없이 깨어 부수고 새로운 정성으로 도자기를 빚어야 합니다. 그것은 도자기뿐만 아니라 옹기를 구울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옹기는 옹기대로의 가치와 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옹기로서의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게 구워진다면, 그 모습 그대로 격이 갖추어지는 것입니다.


성경의 <창세기>의 내용으로,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면서 하신 말씀이 “보시니 참 좋더라!”였습니다. 모든 창조물을 각각의 격을 갖추어 빚으시고는 그 조화로운 모습에 스스로 감탄하신 때문이라 여겨집니다. 인간의 모습도 하느님의 모습대로 빚으시고는 그 아름다운 모습에 기뻐하신 것일 겁니다. 

성서적으로 해석하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태초에, 하느님을 닮아 맑고 밝은 격을 지니고 창조되었음을 상기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 스스로를 낮게 여기거나 천박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격이 제대로 잘 갖추어진 것은 그 어떤 만물도 모두 조화롭고 아름답습니다. 격이 떨어진 것은 보기에도 추한 모습이 되어 버립니다. 조화로운 만물의 이치대로 깨닫고 행동하는 사람은 진실로 격이 있는 것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이 달라서, 사회적인 평가기준으로서의 격이 달라 보일지라도 서로가 맑은 신성을 지니고 영적인 각성을 이룬 사람들은 서로의 격이 통하고 있음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완덕(完德)에 가까워지려고 노력하는 행위는 결국, 우리의 격을 높이려는 행위이며, 그렇게 함으로써 진정으로 자신을 격상시키고 보다 가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내면의 격이 있는 사람의 말을 듣기를 자신도 모르게 좋아하게 되어있습니다. 나의 격이 쌓이면 다른 이에게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입니다. 서로에게서 좋은 격을 배우고, 서로가 격을 높여주며 하나로 호흡할 때 세상의 격이 한 차원 상승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격을 지닌 인간임과 동시에 신성을 마음에 담은 격조 높은 사람이 되기 위해, 몸과 마음뿐만 아니라 말과 행동을 모두 가꾸어 나가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26 < 사랑, 그리고 기운 나누기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