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Feb 25. 2022

적극행정 한번 해보죠

몇 년 전에 한 지자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총괄하는 사업 지원 대상에 이 민원인이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지원 기준은 법령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었고, 제가 보기엔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은 딱하지만 지원 대상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법령에 따르면 건물을 이전하는 경우에는 지원 대상이 안 됩니다. 하지만 그 민원인은 주변에 공사로 인한 소음으로 불가피하게 이전한 경우였거든요. 법령도 다 국민이 잘 살자고 만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다른 방법이 없나 찾아보았습니다. 법률 자문도 받아봤지만 법령을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답이 왔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적극행정이란 걸 찾았습니다. 적극행정이란 쉽게 말해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입니다. 규정을 해석할 때도 좀 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당시엔 적극행정 운영 초기여서 활성화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뭐라도 시도해보고 싶어서 과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과장님, 이번에 적극행정 한번 해보죠.  생각엔 법에 살짝 어긋나더라도 적극행정으로 지원할  있을  같습니다. 나중에 적극행정 실적 내라고   활용할 수도 있고요."


과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추진해보라고 하셨죠. 저는 적극행정과 관련된 부처들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적극행정을 적용할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답은 전부 '쉽지 않을 것 같다'였습니다. 함부로 법령을 벗어나는 행정을 했다가는 감사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일개 공무원으로서 법령에서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하긴 쉽지 않았죠.




  반년쯤 뒤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민원인이 권익위에 신청을 해서 결국 권익위에서는 보상금을 지원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과장님께 많이 혼났습니다. 우리 부처가  주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권익위에서 뒤집어진 것이니깐요.  저보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냐는 것이었죠. 혼나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민원인이 그렇게라도 억울함을 풀었으면  거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