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한 지자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제가 총괄하는 사업 지원 대상에 이 민원인이 포함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었습니다. 지원 기준은 법령에 명확히 규정되어 있었고, 제가 보기엔 해당이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사정은 딱하지만 지원 대상은 아니라고 답했습니다.
전화를 끊고 곰곰이 생각해봤습니다. 법령에 따르면 건물을 이전하는 경우에는 지원 대상이 안 됩니다. 하지만 그 민원인은 주변에 공사로 인한 소음으로 불가피하게 이전한 경우였거든요. 법령도 다 국민이 잘 살자고 만든 것 아닌가 싶은 생각에 다른 방법이 없나 찾아보았습니다. 법률 자문도 받아봤지만 법령을 바꾸지 않고서는 안 된다는 답이 왔습니다.
여기저기 수소문 끝에 적극행정이란 걸 찾았습니다. 적극행정이란 쉽게 말해 공무원이 공공의 이익을 위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는 행위입니다. 규정을 해석할 때도 좀 넓게 해석할 수도 있다는 것이죠. 당시엔 적극행정 운영 초기여서 활성화가 되어 있진 않았지만 뭐라도 시도해보고 싶어서 과장님께 말씀드렸습니다.
"과장님, 이번에 적극행정 한번 해보죠. 제 생각엔 법에 살짝 어긋나더라도 적극행정으로 지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나중에 적극행정 실적 내라고 할 때 활용할 수도 있고요."
과장님은 좋은 생각이라며 추진해보라고 하셨죠. 저는 적극행정과 관련된 부처들에 전화를 걸어 현재 상황을 설명하고 적극행정을 적용할 수 없냐고 물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대답은 전부 '쉽지 않을 것 같다'였습니다. 함부로 법령을 벗어나는 행정을 했다가는 감사를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죠. 어쩔 수 없이 포기했습니다. 일개 공무원으로서 법령에서 주어진 권한을 넘어서는 일을 하긴 쉽지 않았죠.
그 후 반년쯤 뒤에 국민권익위원회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그 민원인이 권익위에 신청을 해서 결국 권익위에서는 보상금을 지원하라는 결정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그때 과장님께 많이 혼났습니다. 우리 부처가 안 주는 것으로 결정했는데 권익위에서 뒤집어진 것이니깐요. 왜 저보고 제대로 대응하지 않았냐는 것이었죠. 혼나는 와중에도 속으로는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민원인이 그렇게라도 억울함을 풀었으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