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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Mar 02. 2022

대충 글 방지 위원회

주무관님께서 다급히 말씀하셨습니다. 우리 팀에서 관리하는 어린이 홈페이지에 초등학생들이 무슨 위원회를 만들고 다른 친구들의 글에 악플을 단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인지 알아보니 다음과 같았습니다.


저희 사업에서 어린이 홈페이지에서 열심히 활동하는 상위 몇 명의 어린이 회원들에게 상을 줬습니다. 홈페이지에 글을 쓰거나 리플을 달면 마일리지 점수가 쌓이는데 그 점수를 기준으로 우수 회원을 선정했었죠. 그런데 단지 점수를 받기 위해 내용도 없는 글이나 리플을 쓰는 경우를 줄이고자 어린이들끼리 뭉쳐서 자경단 같은 조직을 만든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그 조직을 '대충 글 방지 위원회' 줄여서 '대방위'라고 불렀습니다.


아이들이 굉장히 체계적이었습니다. 대방위 위원장, 부위원장, 위원들을 뽑고, 나름 위원회 규칙을 만들어 어떻게 활동할 것인지를 정했습니다. 자기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몇 줄 이하의 글을 적은 사람들에겐 미리 정해진 경고 문구를 달았습니다. 위원들은 대부분 마일리지 점수가 상위권이었고, 그만큼 홈페이지 활동도 많이 했던 아이들이었습니다. 인지도가 높은 아이들이 체계까지 갖췄더니 마치 공식적인 활동처럼 보였죠.


대방위 활동이 점점 심해지다 보니 상처를 받는 학생들까지 생겼습니다. 자기는 마일리지를 받으려고 쓴 글이 아니었는데도 대방위의 경고글을 받았으니 말이죠. 피해 학생 학부모께서 저희 부처에 전화를 직접 하셨습니다. 제가 통화로 자초지종을 설명드렸지만, 학부모는  아이들의 사과를 받아야겠다고 소리를 치셨습니다. 심지어 대방위 활동을 한 아이들은 상도 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셨죠.


저는 고민이 되었습니다. 대방위 위원들이 나쁜 의도로 활동을 시작한 것은 아니었으니깐요. 마침 과장님도 며칠간 부재중이셨습니다. 자칫 제가 잘못 결정을 내리면 아이들이 상처받는 것은 물론 학부모들까지 심각한 민원을 제기할 수 있었죠. 섬세한 초기 대응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대방위 위원들의 학부모님께 일일이 전화를 드렸습니다. 사정을 말씀드렸더니 다행히 학부모님들이 자기 아이들의 잘못을 인정하시더라고요. 마치 공식 조직인  활동하면서 같은 친구들에게 악플을  것은 명백히 잘못된 행동이라는 것에 동의하셨습니다. 다음  모든 대방위 위원들이 홈페이지에 사과글을 적었고 위원회는 해체되었습니다.


피해 학생 학부모님은 여전히 대방위 활동을 한 아이들은 상을 주면 안 되는 것 아니냐고 하셨지만, 오프라인 행사장에서 제가 피해 학생과 학부모님을 직접 만나 사과를 하면서 대방위 사건은 그렇게 마무리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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