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에 와서 처음에는 오피스텔에 살았습니다. 당시 여자친구(현 부인)도 가까운 데 살았는데요. 둘이 자주 가던 동네 빵집이 있었습니다. 집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이길래 한 번 가봤더니 너무 맛있어서 바로 단골이 되었죠. 주말이면 빵집에서 커피를 종종 마셨습니다. 여자친구 전화번호로 열심히 포인트를 적립했고요.
둘이 몇 달간 헤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 빵집에 다녔습니다. 그만한 곳이 없었거든요. 다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한 번도 제 전화번호로 포인트 적립을 한 적이 없었던 것이었습니다. 단골집이라 뻔히 저를 알 텐데 지금 와서 갑자기 다른 번호로 포인트를 적립하겠다고 말하면 이상하게 볼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그냥 전 여자친구 핸드폰에다 적립을 했습니다. 저도 왜 그랬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땐 괜히 사람들에게 헤어졌다고 설명하고 싶지 않았나 봅니다. 그렇게 몇 달 동안 꾸준히 전 여자친구 포인트를 쌓았습니다. 그러다 재결합해서 결혼까지 했기에 망정이었죠. 나중에 제가 적립한 이야기를 부인에게 해줬더니 또 그렇게 좋아하더라고요.
지금은 어떻게 알려졌는지 모르겠지만 엄청 유명한 빵집이 되었습니다. 가게도 확장하고 주말엔 손님들이 많아 발 디딜 틈이 없었습니다. 빵집 안에서 한적하게 커피를 마시는 것은 이제 상상도 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장님 얼굴 보기도 어렵고요. 저만 알고 있던 아지트를 잃은 느낌이었습니다. 그래도 주말이면 부인과 함께 그 빵집에 종종 갑니다. 가서 포인트를 적립할 때마다 옛 생각이 나는 곳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