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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대의 노안(老眼)

by 킹오황

40대 초반의 나이에 노안이 왔습니다. 책이나 핸드폰의 작은 글씨가 잘 보이지 않게 된 것입니다. 눈에 힘을 꽉 주면 보이긴 하는데 더 편한 방법이 있습니다. 안경을 살짝 들어 올려 맨눈으로 보는 것입니다. 그럴 때면 가끔 옆에서 '어머머' 하는 소리가 들릴 때가 있습니다. 아내가 놀라는 소리입니다. 밖에서 안경 좀 들어 올리지 말라고 타박을 주기도 합니다. 늙은이랑 결혼한 것 같이 보인다고 그러는데, 사실 나 늙었는데요...


어릴 때부터 책을 많이 읽었습니다. 잘 때도 누워서 책을 보다 잠드는 일이 많았습니다. 아버지 책장에 꽂힌 아무 책이나 읽었는데, 대부분 글자가 빼곡히 적혀 있었습니다. 그러다 한쪽만 눈이 나빠지게 되었습니다. 왼쪽 눈으로 보면 멀쩡한데 오른쪽 눈으로 보면 세상이 흐릿했습니다. 두 눈을 함께 뜨면 선명한 세상과 흐릿한 세상이 동시에 보였는데, 그게 이상한 줄도 모르고 한참을 지내다가 중학생 때 시력 검사를 한 후에 안경을 끼게 되었습니다. 왼쪽은 도수도 없는 유리알인 안경이었죠.


대학생 때부터는 하루 종일 컴퓨터만 했습니다. 리포트를 쓸 때도, 게임을 할 때도. 심지어 음악을 들을 때도 컴퓨터로 들었습니다. 거기다 졸업하고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을 했으니 정말 눈을 많이도 썼네요. 그나마 한쪽은 괜찮은 짝눈이었는데, 그 눈도 점점 나빠져서 더 이상 짝눈이라고 부르기도 뭣할 정도였습니다.


30대가 되면서 눈을 더 혹사시켰습니다. 고시생이 되었거든요. 눈을 뜨면 감을 때까지 책을 읽었습니다. 그땐 눈에 휴식을 주는 것은 사치였죠. 하루 8시간을 답안 연습을 하다가 손목이 나간 적이 있었습니다. 손목 보호대를 차고 병원에 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예민한 성격이라 시험 때면 장염이 재발했습니다. 환절기엔 없던 비염까지 생겨 휴지를 코에 끼고 살았습니다. 온몸이 망가지는 그때도 제 눈은 한 번 아프지도 않았습니다.


40대가 되었지만 눈을 쓰는 데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회사에서 일하는 동안에는 제 눈이 쉴 새가 없었고, 집에 와서도 게임을 하던지 스마트폰을 봤습니다. 가끔 눈이 침침한 적도 있었지만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습니다. 그러다 한 번은 스마트폰을 보다가 놀랐던 적이 있었습니다. 카카오톡 메시지 창에 '1'이 안 보이길래 상대가 읽은 줄 알았는데 나중에 자세히 보니 1이 있더라고요. 그때 알았습니다. 제 눈에 이상이 생겼다는 것을요. 당장 안경점에 가서 시력 검사를 했더니 노안이 좀 일찍 온 것 같다며 다초점 렌즈를 추천해주더군요. 그렇게 저는 노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동안 영양제 하나 없이도 아무 힘든 티 안 내고 묵묵히 40년을 넘게 버텨준 제 눈입니다. 그래요, 이제는 눈도 쉴 때가 되었습니다. 눈에 힘이 잘 안 들어가도 됩니다. 좀 안 보여서 불편하면 어떻습니까? 이젠 번번한 직업도 있어서 먹고사는데 지장 없잖아요. 핸드폰 보려고 안경 한 번 벗는 게 많이 부끄러운 일인가요? 잠깐 놀림받고 말면 됩니다. 생각보다 노안이 빨리 왔지만 섭섭한 마음 하나도 없습니다. 오히려 제 눈이 너무나 고맙고, 또 미안합니다. 지금부터라도 눈을 소중히 생각하고 아껴보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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