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에 합격하자마자 바로 한 건 뭐였을까요. 그건 출퇴근할 때 입을 옷부터 사는 거였습니다. 고시생일 땐 추리닝에 목이 늘어난 티만 입고 다녔습니다. 그땐 어서 빨리 합격해서 아침마다 넥타이를 매고 정장을 입는 날이 오기만을 꿈꿨습니다. 평소엔 옷 사러 가는 것도 귀찮아했던 제가 부모님과 함께 백화점에 가서 정장을 두 벌 맞췄습니다. 회색과 남색으로. 점원은 재킷과 바지를 콤비네이션으로 섞어 입으면 회회, 회남, 남회, 남남 이렇게 4가지 조합이 나오니 일주일 내내 입기 괜찮을 것이라고 너스레를 떨었습니다.
연수원에 가서도 부지런히 정장을 챙겨 입었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교육생 대부분 정장을 입고 다녔죠. 다들 얼마나 정장을 입고 출퇴근을 하고 싶었을까요. 그래서 연수원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면 모두 다 정장을 입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저는 당연히 공무원들은 정장만 입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입사한 첫날부터 그 생각이 깨졌습니다.
부처에 발령받은 첫날 주변을 둘러보니 공무원들의 복장이 생각보다 간소해 보였습니다. 과장 이상급은 정장을 차려입은 경우가 많았지만, 실무자들은 캐주얼하게 입고 있었죠. 남방에 면바지 정도로요. 거기다 등산복처럼 보이는 사복을 입은 사람도 있었습니다. 정장 재킷에 넥타이까지 맨 사람은 우리 신입 동기들밖에 없었습니다.
신입 공무원 오리엔테이션 때 복장에 대해서도 언급되었습니다. 외부 행사가 있거나 간부들에게 보고가 있는 게 아니라면 요즘은 캐주얼하게 입는 추세이며, 정장을 입는다 해도 넥타이는 거의 안 맨다고 했습니다. 그렇다고 반바지나 청바지까지 허용되는 건 아니라고 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의심이 들었습니다. 이걸 얼마까지 믿을 수 있을까요. 다음 날부터 편한 복장으로 왔다가 "저 신입은 뭐냐, 오리엔테이션에서 한 말을 진짜로 믿네"란 지적을 받을 수도 있으니깐 말이죠. 그래서 당분간은 정장 차림을 고수하기로 결심했습니다. 누구는 저보고 신입다운 기합이 들어있어 보인다고 하기도 했고, 누구는 언제까지 가나 보자면서 재미있어했습니다.
날이 더워졌을 때 재킷까지는 입지 않았지만 긴팔 와이셔츠는 고수했습니다. 그게 공무원의 기본이라 생각했죠. 그러던 어느 날 과장님과 함께 외부 회의를 다녀온 적이 있었습니다. 사무실로 돌아왔더니 나이가 좀 있는 주무관님이 저에게 한마디 하셨습니다. 외부에 다녀올 때는 더워도 재킷을 입는 게 예의라며 과장님을 보시라고 했습니다. 저도 나름 복장을 신경 쓴다며 와이셔츠를 입고 다녔는데 그걸로는 부족했던 것이었습니다.
다음에 과장님과 또 출장을 갈 일이 있어 유심히 살펴봤습니다. 과장님은 나가실 때 사무실에 있던 얇은 재킷을 챙겨 나가시더군요. 더운 날에 그걸 입지는 않으셨지만 팔에 걸치고 회의장까지 가셨습니다. 회의가 시작되기 직전에 재킷을 입으시고 회의가 끝날 때까지 벗지 않으셨습니다.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 차서 에어컨이 있어도 더웠는데 말이죠. 대머리인 과장님의 정수리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도 과장님은 재킷을 끝까지 고수하셨습니다. 나는 그 모습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그 후부터 저도 지금까지 외부 행사가 있을 때면 항상 정장에 재킷까지 챙겨 입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평소에는 정장 차림으로 다니지 않았습니다. 나이가 들었는지 배가 좀 나오는 바람에 예전에 사뒀던 와이셔츠들이 다 맞지 않게 된 것도 있었죠. 보통은 배를 가릴 수 있을 정도로 펄렁한 셔츠에 면바지를 입었습니다. 다만, 구두는 도저히 발에 안 맞아서 외부 행사가 없다면 항상 운동화를 신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 복장에 문제가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부처로 파견을 갔을 때였습니다. 그 부처에 어떤 고참 사무관이 제 복장을 지적하며, 어디서 온 사람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어리둥절하며 주위를 봤더니 남자 공무원들은 전부 흰 와이셔츠에 짙은 색의 재킷을 입고 있더군요. 심지어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 부처는 복장에 대해 매우 엄격했던 것이었습니다. 다행히 전 파견 온 공무원이라고 해서 넘어가긴 했지만, 부처마다 복장 허용치가 다르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몇 번의 여름을 겪고 나니 여름에는 무조건 반팔 라운드 티셔츠가 진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코로나 시국을 거치는 동안 외부 일정은 거의 사라졌고, 저는 연차가 좀 쌓인 바람인지 옷차림을 지적하는 사람도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이번 여름도 반팔 티셔츠로 보내야겠다며, 아웃렛에서 할인 중인 명품 티셔츠를 두 벌 샀습니다. 나름 명품 브랜드를 입고 있으면 반팔 티셔츠라도 봐주지 않을까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말이죠.
아니나 다를까 국장님께서 저를 부르셨습니다. 제가 일도 잘하고 태도도 좋아서, 아끼는 마음에 싫은 소리를 하나 해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바로 복장 때문이었습니다. 더우니깐 반팔까진 괜찮다고 하더라도 라운드 티셔츠는 좀 아닌 것 같다며, 최소한 카라가 있는 셔츠를 입는 좋겠다고 하셨습니다. 특히 윗 분들은 말로는 괜찮다고 하면서도 너무 복장이 편해 보이는 사람을 보면 안 좋은 인식을 가질 수도 있다는 것을 솔직하게 말하셨죠.
옳은 말씀이었습니다. 최근에 제가 좀 긴장이 풀렸나 싶어서 반성도 하게 되었습니다. 그 후로 카라가 있는 셔츠를 입고 다녔고, 제 모습을 본 국장님은 너무나 좋아하시면서 막 어깨를 두드리셨습니다. 이렇게 입으니 인물이 달라 보인다며 앞으로 쭉 카라가 있는 옷을 입으라고 하시면서 말입니다.
확실히 간부들은 복장에 대해 신경을 더 쓰시는 편인 것 같습니다. 어떤 국장님은 매번 승진이 누락되는 과장님에게 승진할 때까지 정장에 넥타이까지 매고 다녀라고 충고를 하셨다는 이야기도 들었습니다. 결국 그 과장님은 승진하셨고, 지금까지도 넥타이까지 매고 다니십니다. 복장이 승진에 영향을 미쳤든 안 미쳤든 말이죠.
생각해 보면, 복장이 중요한 건 아니지만 복장을 보고 그 사람의 마음가짐이나 업무에 대한 태도는 알 수 있나 봅니다. 솔직히 정장 차림은 일하는 데도 불편합니다. 출근할 때도 신경을 많이 써야 하고, 세탁하는데도 손이 많이 갑니다. 그렇지만 옷 하나 입는 것도 그렇게 신경을 쓰는 사람은 평소 생활이나 업무에도 진지한 태도로 임할 가능성이 높아 보일 수 있습니다. 옷을 잘 입는다고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없을 테니깐 말이죠.
이런 점에서 공직 사회는 민간에 비해 보수적인 면이 있습니다. 민간 기업에서는 청바지는 물론 반바지까지도 허용된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일만 잘하면 된다는 것이죠. 공직에서는 일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가짐이나 태도도 중요하게 보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까진 일만 잘하면 되지 복장이 그렇게까지 중요한가 싶은데, 그렇게 불평하는 저를 보며 아버지는 공직자는 항상 옷을 잘 입고 다녀야 한다고, 공직자에겐 복장이 옷 이상의 의미가 있다며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곤 합니다.
“의식주에서 의란 옷을 말하기도 하지만 옛날에는 입는 옷이 관직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래서 너희 같은 공직자는 관직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 옷에 맞도록 행동 가지도 바르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