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경제 정책의 방향을 정하는 부서에서 10년간 쉬지 않고 일만 해오신 서기관님이 있었습니다. 평소에 너무 바빠 보여서 이야기도 못 나눠봤던 사이였죠. 어느 날 서기관님께서 조만간 점심을 먹자고 하셨습니다. 유학 가기로 결정됐다며 가기 전에 후배들에게 돌아가며 밥을 사주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며칠 후 점심을 먹으며 그간 어떻게 일하셨는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게, 저라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싶은 삶이었습니다. 전화는 언제 어디서든 꼭 받아야 했기 때문에 씻을 때도 핸드폰을 비닐봉지에 넣고 샤워실에 들고 들어갔다더군요. 2시간도 내기가 어려워서 영화관도 갈 수 없었답니다.
그렇게 10년을 놀지도 못하고 죽어라 일만 하다 보니 이제는 놀아라고 시간을 줘도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며 자조 섞인 말씀을 하셨습니다. 휴직하자마자 제일 먼저 일본 애니메이션 '너의 이름은'을 컴퓨터로 보신 게 다라며, 이렇게 쉬는 날에 회사에 나와 우리 밥 사주고 있다고 하시더라고요.
저도 여러 부서를 거치면서 바쁘게 일한 적도 있고 상대적으로 여유로웠던 적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10년 동안 그렇게 일하라면 도저히 못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일만 하다 보면 막상 일을 그만둔 후에 뭘 해야 하나 싶더라고요. 공무원은 퇴직하고 나면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은 것 같습니다.
모두가 그러하듯 저도 퇴직 후에 어떻게 살아야 할지 고민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아직 공직에 온 지 10년도 안됐는데도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