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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Sep 26. 2022

사회인 야구팀에서 물만 날랐다

공무원을 하기 전 IT 회사에 다닐 때였다. 회사에서 젊은 사람들끼리 마음이 맞아 캐치볼을 하기로 했다. 몇 명이서 회사에 글러브와 공을 가져왔고, 점심시간이면 다 같이 회사 앞으로 나갔다. 단지 공을 주고받는 일인데도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꽤 운동이 됐다. 날씨가 참 맑고 선선했다. 그때 야구를 그만뒀어야 했다.


몇 달이 지나자 우리는 캐치볼만으로 성이 안 찼는지 다른 욕심이 생겼다. 회사에서 사회인 야구팀을 만들어서 나가보자는 것이었다. 그동안 우리가 캐치볼 할 땐 신경도 안 쓰던 부장님, 팀장님들이 야구팀을 만든다니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자기도 끼워달라고 하시는데, 역시나 직급이 깡패였다. 거절할 방법이 없었기에 다 가입시켰다. 어느덧 야구 멤버가 다 찼고 본격적으로 사회인 야구팀 창단에 필요한 준비를 시작했다.


나는 팀의 창단 멤버이자 막내로서 홈페이지와 유니폼 제작, 야구 팀명 공모, 사회인 야구 리그 신청 등 잡다한 일들을 했다. 그래도 그땐 곧 야구 게임을 할 수 있다는 생각에 전혀 힘들지 않았다. 그렇게 세팅을 다 하고 사회인 야구 리그에 참가하게 되면서 나의 고통은 시작됐다.



사실 난 야구를 그렇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다. 그냥 야구를 좋아해서 룰을 다 알고 동네에서 친구들이랑 게임을 할 수 있는 수준이지, 타격에 재능이 있다거나 수비가 훌륭하다거나 하지 않았다. 그냥 평범한 직장인 수준이었다. 그런 실력은 우리끼리 야구를 할 땐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지만, 리그에 나가서 다른 팀과 경기할 땐 달랐다. 공식적인 승부에서는 이겨야 했기 때문에 실력이 부족한 건 문제가 컸다.


야구 게임을 하게 되면 감독이 선발 명단을 뽑았다. 그 기준은 이랬다. 실력이 출중해서 누구나 선수로 인정하는 사람들이 1순위. 2순위는 주말인데도 불구하고 이렇게 멀리 서울 외각까지 나와서 이 자리를 빛내주신 부장님, 팀장님. 그리고 나머지가 3순위. 난 3순위에 속해 있었다. 선발은 항상 2순위에서 짤렸기 때문에 난 선발에 든 적이 없었다. 거기다 야구 특성상 선수 교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경기를 뛰지 못했다.



처음엔 실력 탓을 하면서 열심히 연습했다. 코치에게 돈을 주고 배우기도 했고, 포지션을 바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3순위는 영원한 3순위였다. 짧은 시간에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긴 어려웠다. 나이나 직급은 노력으로 바꿀 수도 없었다. 의지가 꺾이니 주말에 일어나는 게 점점 힘들어졌다. 내 소중한 주말을 다른 사람들이 편하게 야구할 수 있도록 쓰는 게 싫었다. 결국 아침에 일어났어도 자는 척하며 전화를 안 받게 되었다.


악순환이었다. 주말에 경기에 안 나가면 주중에 상사들에게 혼났다. 억지로 경기장에 나가도 경기를 뛰긴 어려웠다. 평소에 안 나왔으니. 그럼 내가 할 일은 응원하고 물 나르고, 경기 끝나면 회식장소 알아보는 것이었다. 그런 잡일만 하기 싫어서 또 몇 주는 안 나갔고, 그러면 상사들에게 혼났다. 아무리 주중에 일을 잘해도 주말 야구 때문에 혼나야 하는 상황이 너무나 싫었다. 사회인 야구를 통해 사회의 쓴 맛을 알게 되었다.


그때 결심했다. 언젠가 다른 회사로 옮기게 된다면 절대 회사 사람들과 함께 운동을 하진 않겠다고. 그리고 나도 언젠가 상사가 된다면 부하 직원에게 주말에 사적으로 부르진 않을 거라고.




약 10년 후 공무원으로서 출근 첫날, 주무관님에게 이런 질문을 받아서 대답했다.


"사무관님은 축구 좋아하세요? 전에 계시던 사무관님이 진짜 축구 잘하셨거든요. 사무관님도 젊으니깐 잘하실 거 같아요. 곧 실국별 축구대회 있는데 선수로 나갈 수 있으세요?"


"아, 죄송한데 저는 축구는커녕 운동은 전혀 할 줄 몰라요. 옆에서 열심히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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