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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29. 2021

움직이지 않을 땐 산처럼 하라

근데 사무관님은 왜 그러셨습니까

과장님께서 저에게 공직자로서 일을 할 땐 손자병법에서 나오는 부동여산(不動如山)을 생각하라고 하셨습니다. 문제가 생겼다고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지 말고 침착하게 대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도 일하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 발생하면 저 문구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날은 어쩔 수 없었나 봅니다.




제가 어린이 교육 행사를 맡았던 때였습니다. 그 자리로 발령받자마자 주무관님들에게 부동여산에 대해 알려드리면서 행사장에서 무슨 일이 있어도 뛰지 말라고 당부했습니다. 학생들과 학부모들이 저희만 보고 있을 텐데 저희가 당황하는 모습을 보이면 참석한 사람들도 불안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했죠.


어린이 퀴즈 대회 행사가 있었습니다. 수 백명의 초등학생들과 그 학부모가 참석하는 큰 행사였습니다. 불행히도 많은 학생들이 한꺼번에 몰려 입장하는 바람에 등록이 지연됐습니다. 그 바람에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넘게 시작도 못했고 상황이 엉망진창이었습니다. 저는 침착함을 잃지 않으려고 노력했죠. 어떻게든 행사를 시작시켰습니다.


한숨 돌리고 있는데 또 패자부활전에서 문제가 터졌습니다. 패자부활전의 룰은 본선에서 탈락한 학생들에게 퀴즈를 내서 모두 맞춘 사람만 살아남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사회자가 1번 문제를 틀린 탈락자들을 무대 밖으로 내보지 않고, 바로 2번 문제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사회자의 큰 실수였죠. 나중에 진행의 공정성 시비까지 나올 수도 있었습니다. 저는 당황해서 사회자가 있는 곳까지 무대를 가로지르며 달려갔습니다. 그러다 미끄러져서 철퍼덕하고 넘어졌죠. 학생들과 학부모들 앞에서요. 국장님도 보고 계셨습니다.


나중에 주무관님에게 듣기로 넘어지는 소리가 너무 커서 크게 다쳤을까 봐 걱정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웃겼다고 덧붙였습니다. 평소에 그렇게 부동여산을 강조하셨던 사무관님이 몸개그를 하실 줄 생각도 못했다는군요. 요즘도 주무관님을 만나면 그 일로 계속 놀림을 받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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