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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Dec 02. 2023

저도 푸념 한번 해보려고요

전임 비서관에게 인수인계받을 때가 떠오른다. 1년 내내 바쁘겠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바쁠 때가 연말이라고. 그땐 각 부처에서 연말까지 개정해야 하는 법령들을 다 검토해야 하는 시기여서 그렇다고 했다.


지금까지 그 말을 잊고 살았다. 왜냐면 충분히 바빴기 때문에 더 바빠질 게 있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10월도 바빴고, 11월은 더 바빴다. 최악이라는 12월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한 달은 어떻게 지내려나.


아무리 바쁘더라도 최소한의 여가는 가지려고 했다. 일이 많아 힘들고 죽겠다면서 무슨 여가냐 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 이 바쁨은 일주일 벼락치기가 아니라 몇 달 동안 지속되는 바쁨인 것이라 그렇다. 그러나 점점 내 개인 시간은 줄어만 갔고, 결국 그 좋아하는 게임을 포기했다. 어쩌다가 일찍 퇴근하는 날에는 운동 아니면 독서 정도만 겨우 하면서, 일로서 뜨거워진 머리를 식히고 있다.


12월 초에는 내 고등학교 친구가 결혼한다. 40대 중반에 초혼의 결혼식이라 안 갈 수가 없다. 그런데 토요일 서울에서 하는 결혼식에 참석 못할까 봐 지금까지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등학교 친구들은 이런 날 도저히 이해하지 못한다. 아니 공무원이 바쁘면 얼마나 바쁘다고, 토요일 하루 시간을 못 낼 수도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그러는데, 솔직히 나도 내 처지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 시기에 이 자리에 있는 내 잘못이지 뭐.


그래 좋다. 일이 많아서 어쩔 수 없이 야근 초근 하는 건 이미 이 자리에 올 때부터 각오하고 있었다. 그런데 초근 수당도 못 받으면서 일하는 건 많이 아쉽다. 정확히는 한 달에 57시간까지의 초근 시간만 수당이 지급되기 때문에, 그 시간을 넘겨서 하는 노동은 무임금으로 하는 것이다. 아무리 국가나 국민을 위해서 일을 한다 해도, 주말이나 밤늦게 아무런 보상(보수) 없이 사무실에 앉아 있다 보면 허탈한 기분도 든다. 


웃기게도 나는 상황이 좋은 편이다. 다른 부서는 초근 시간이 부족해서 초근 수당을 못 받는다고 한다. 즉, 부서에서 정해진 초근 인정 시간을 다 쓰면, 개인은 57시간을 못 채워도 수당을 받지 못한다는 말이다. 1년 동안 그 부서에 쓸 수 있는 초근 시간 총량이 정해져 있어서, 연말이면 다들 부족해지는 일이 벌어진다. 그나마 내가 있는 이 자리는 우리 부처 대표적인 격무자리로 인정받고 있어서 초근 시간이 모자라는 일은 없다. 57시간까지의 초근 수당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고마워해야 하는 입장이라고 해야 하나... 헷갈린다.


며칠 전에는 과로로 인한 것인지, 12월부터 시작하는 새벽 수영에 대비해서 일찍 일어난 것 때문인지 입술이 터지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상사에게 오늘은 피로해서 좀 일찍 들어가겠다 그랬더니, 그 후로 며칠 동안 나보고 몸은 괜찮냐며, 자기가 안건 다 볼 테니 나보고 일찍 들어가라고 그러신다. 진심으로 날 걱정하는 느낌도 들고, 한편으로는 내가 갑자기 몸져눕기라도 하면 그 많은 안건은 누가 보나 하는 걱정을 하시는 것 같기도 하다. 내가 또 일찍 들어가라는 지시는 잘 지키기 때문에 며칠 좀 살살 일했더니 몸이 회복된 듯하다. 이 기운으로 12월을 버텨야 할 것 같다.



이런 일기 같은 글을 왜 적냐는 핀잔을 주는 아내의 모습이 뻔히 상상이 되지만, 그래도 이런저런 이유로 한동안 글을 자주 못 적었다는 변명 같은 푸념 한번 늘어놔 보았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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