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에 부모님을 뵈러 갈 때 꼭 챙기는 게 있습니다. 바로 잔돈입니다. 신용카드면 다 되는 시대에 웬 잔돈이냐고요? 그건 바로 고스톱을 치기 위해서입니다. 집에서 저녁을 먹고 나면 바로 판이 벌어집니다. 부모님과 저, 그리고 아내 이렇게 4명이서 옹기종기 앉아서요.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결혼 후 아내와 함께 고향에 내려가면, 부모님과 이야기 꽃을 피웁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루 이틀. 나중엔 이야깃거리도 없고 해서 금방 각자 방에 들어가 부모님은 텔레비전을 보고, 저희는 책을 보면서 따로 놀게 되었는데요.
언젠가 어머니가 고스톱을 치고 싶다고 한 말을 들은 제 아내는 고스톱을 연습하기 시작했습니다. 세종시에 올라오자마자 휴대폰에 고스톱 게임을 깔아서 시간만 나면 게임을 하는 게 아닙니까. 제가 게임 좀 쉬어가며 해라 그러면, 이게 다 우리 부모님을 위해서 하는 거라고 당당하게 말하며 게임을 계속하더군요.
그 후부터 명절만 되면 부모님과 고스톱을 치는 것이 당연하게 되었습니다. 처음에 저는 고스톱을 치는 게 귀찮기도 하고, 어른들과 이렇게 돈을 걸고 하는 게 맞나 싶어 주저했었습니다. 그렇지만 제 아내는 이럴 때 아니면 언제 어른들과 함께 놀아보겠냐며 저를 설득하는 바람에 마지못해 시작했죠.
지금은 고스톱을 치기로 한 게 참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이 70 넘은 부모님이 머리를 써가며 고스톱에 열중하고, 돈을 따면 웃고 떠들기도 하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이거든요. 현명한 아내를 둔 덕분에 늦은 나이에서야 제가 이렇게 효도를 하는구나 싶습니다.
그동안 저는 웬만해서는 돈을 잃은 적이 없었는데, 지난 명절에선 가장 크게 잃었습니다. 부모님이 다 따셨죠. 제가 일부러 잃어드린 것도 아니었습니다. 저희 집안사람들은 게임을 할 땐 최선을 다해 이기려고 하거든요. 그래서 그런가 부모님은 게임이 끝나고도 내내 아들 돈 딴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비록 속은 쓰리지만, 부모님이 즐거워하셨으면 된 거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