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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킹오황 Jan 01. 2022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게 되지 않도록

처음에 할 때 잘해야

공직 생활을 하다 보면 느끼는 게, 예전에 잘못 처리된 일을 뒷수습하는 게 업무의 상당 비중을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저희끼리는 '전임자 똥 치운다'라고 표현하죠. 물론 전임자가 항상 잘못한 것은 아닙니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처리한 경우도 있고, 갑자기 보직이 바뀌면서 미처 마무리하지 못한 경우도 있습니다.


예전 일을 뒤처리하는데 힘쓰다 보면 새로운 일을 제대로 처리할 시간이 부족하게 됩니다. 그럼 나중에 또 보완해야 하는 악순환에 빠집니다. 사실 더 큰 문제가 있습니다. 처음에 제대로 할 때보다 나중에 보완하는 경우에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갑니다. 호미로 막을 수 있었던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것이죠. 과장님께서는 저에게 이런 점을 자주 지적하셨습니다. 처음에 할 때 잘해라고.




한 번은 감사원에서 10년 전에 지적한 사항에 대한 결과 보고서가 제출되지 않았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저보고 한 번 살펴보라 하셨죠. 저는 10년 전 자료를 뒤지고, 그때 그 업무를 관여했던 사무관(현재 과장)뿐만 아니라 타부처로 전입한 직원들까지도 핸드폰으로 전화해서 당시 상황을 물어보면서 그 경위를 몇 주 동안 파헤쳤습니다.


알고 보니, 담당자가 감사원 지적 사항을 다 이행해놓고도 깜빡했는지 이를 제출을 안 했던 단순한 문제였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과거 자료만 뒤늦게 제출할만한 명분이 없었습니다. 할 수 없이 현재 상황도 추가로 분석했습니다. 지금까지의 상황을 모니터링하느라 제출이 늦은 것처럼 작성했죠. 처음에 담당자의 실수만 없었더라면 저는 몇 주동안 경위를 파악하고 안 해도 되는 분석까지 하며 보고서를 작성할 필요가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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