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즐겨 읽었던 책이 있었다. 한 괴짜 선생님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 선생님은 일부러 팔자걸음을 걷고, 샴푸 대신 비누로 머리를 감았다. 그 외에도 특이한 점들이 많았는데, 어린 마음에 나는 그런 것들이 좋아 보여서 따라 하기도 했다.
그러고 보면 어릴 땐 남들이랑 다르게 살고 싶었던 것 같다. 혹시 나도 초능력이 있지 않을까 하면서 몇 분 동안 숟가락을 째려보기도 했었고, 장풍이라도 쏴보려고 온몸에 힘을 주어 기를 모으려고도 했었다. 학교 교실에 장기판을 놔두고 쉬는 시간마다 아이들과 장기를 뒀으며, 맛있는 반찬을 안 뺏기려고(?) 화장실 문 바로 앞에서 친구들과 도시락을 먹었던 적도 있었다. 당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흥선대원군을 꼽았는데, 그 이유는 본인의 야망을 일부러 숨기고 망나니처럼 살면서 주변을 속였다는 점이 나에게 큰 매력이었기 때문이었다.
수업 시간에도 특히 수학(이나 산수) 문제를 풀 때는 선생님이 가르쳐준 방법 말고 다른 방법으로 풀려고 노력했다. 이렇게도 생각하고 저렇게도 생각하면서, 문제 풀이라는 게 하나의 길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고, 좀 빙 돌더라도 남들이 다 가는 길이 아닌 다른 길을 찾아가는 것에 희열을 느꼈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보니, 이런 성향은 웃기게도 어렸을 때가 가장 나를 빛나게 했다. 초등학교 땐 남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튀려는 모습이 선생님에겐 귀엽게 보였나 보다. 친구들도 나를 공부는 잘하는데 이상한 애라면서 재미있어했고, 나도 솔직히 그 시선을 즐겼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들 수록 그런 모습은 이득보단 손해가 컸다. 중학교 땐 힘 좀 쓰는 애들(수업시간에 튀는 애들에게 가만히 있으라며 눈짓 손짓으로 위협하는)의 눈치를 봐야 했고, 고등학교 대학교 땐 점점 군중 속으로 숨어 원오브뎀(one of them)이 되는 게 살기 편하다는 걸 배우기 시작했다. 팀 프로젝트를 하면서도 괜히 새로운 걸 하자고 의견을 내면 결국 내가 해야 했고, 학교 운영에 건의 사항을 내면 선생님들이 일 키우지 말라는 식으로 나를 말렸다.
그런 내가 공무원이 되었다. 공직사회에서 가장 금기시되는 행동 중에 하나가 바로 튀는 행동이다. 지금까지 잘 집행되고 있는 사업을 굳이 과거부터 꼼꼼히 들여다봐서 뒤엎을 필요가 없었고, 국 총괄이 각 과에다 제출하라고 요청한 자료를 남들은 1페이지로 내는데 나만 10페이지로 내면 안 됐다. (반대로 내가 적게 쓰는 것도 안 된다) 과장들이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다른 데는 어떻게 하는데?"였다. 적당히 남들처럼 해서 문제 안 되는 게 미덕인 곳이었다.
처음 몇 년은 잘 버텼다. 그땐 내가 아는 것도 없으니 위에서 시키면 시키는 대로 했다. 열심히 하라면 열심히 했고, 적당히 하라면 적당히 했다. 원래 이렇게 하는 거라고 하면 큰 반항 없이 수긍했다. 그런데 시간이 갈수록 내 성향이 공공사회의 관행을 잘 받아들이지 못했다.
점점 경력이 쌓이고 아는 게 많아질수록 내가 스스로 판단하여 결정하기 시작했고, 어쩔 땐 여느 공무원들이 생각하는 기준에서 살짝살짝 벗어나는 경우도 생겼다. 공무원으로서 튀는 행동이 눈에 걸렸는지 어떤 과장님은 나에게 언젠가 크게 사고 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걱정도 하셨다. 오히려 나는 문제가 되더라도 이걸 적극행정이라고 부르고 싶은데, 아직까지 사고가 난 적이 없다.
어쨌든, 나도 내 스타일에 확신이 있는 건 아니다. 내 어릴 적부터 형성된, 뻔한 관행에 따라가기 싫어하는 반골(?) 기질이 공무원으로서 적절한 건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 부처에 전입올 때 당시 기관장이 보통 공무원들과 다른 내 특이한 이력을 보면서 "우리 조직에 새로운 활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것 같다"라며 승인해 준 사실을 생각하면, 이런 사람이 한 명쯤 있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라며 자기 합리화를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