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킹오황 Jan 28. 2022

할아버지 민원인의 전화

사무실에 종종 전화하시는 할아버지 민원인이 계셨습니다. 제가 담당하는 지원 사업에 혜택을 못 받으신다며 자주 불평을 하셨죠. 그날도 그분이 전화로 저에게 훈계를 하시고 저는 듣고만 있었는데, 갑자기 의외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 사무관은 안 된다는 말을 왜 그렇게 착하게 말하나? 친절하게 조곤조곤 말하는 걸 끝까지 다 들어보면 결국 안 된다는 것이지 않는가. 그런데 말투는 또 그러니깐 내가 화를 못 내겠네."


"선생님, 천천히 말하는 건 제 말투가 그래서입니다. 일부러 의도한 것은 아닙니다."


처음엔 민원인의 말씀이 이해가 잘 안 갔습니다. 친절하게 대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잖아요. 선배에게 이런 상황을 말씀드렸더니 선배가 그랬습니다. 민원인이 감정이 많이 상해서 저에게 큰 소리도 내고 화도 내고 싸우고 싶은데 제가 동조를 안 해주니깐 김이 빠지는 거라고.




저는 민원인을 응대할 때의 태도에 관해 과장님께 들은 게 있었습니다. 과장님께서는 중앙부처 사무관에게 사무실로 전화를 하는 민원인은 특별하다고 하셨습니다.


"민원인들이 처음부터 중앙부처에 전화하지 않는다. 먼저 주민센터부터 연락하기 시작해서 시청, 도청을 거쳐도 잘 안 될 때 중앙부처를 찾게 된다. 이 사무관이 전화를 받았다는 건 그 민원인이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지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안 되는 건 안 된다고 할지라도 그 민원인의 말씀을 잘 들어줘라. 그것만으로도 민원인의 마음이 풀릴 것이다."


저는 그 과장님께 많은 가르침을 받았지만, 이 말씀이 특히 더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업무에 큰 지장이 있지 않는 범위 안에서 최대한 민원인의 이야기를 들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이전글 사무관이 이런 일도 하나?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