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한 방정방정 깨방정

by 말랭자매

잔디의 이갈이가 시작되었다. 대부분은 눈치도 못 채게 자연스럽게 빠졌는데 운이 좋게도 잔디가 자고 있을 때 귀엽게 흔들리는 이빨을 발견했다. 만져보니 흔들흔들해서 이걸 우리 어렸을 때 이 빼듯이 실로 뽑아야 하나, 이마를 탁 쳐줘야 하나 고민을 했다.

그런데 그런 고민도 잠시, 다음 날 바닥에 흰색의 무언가가 떨어져 있어 주워서 보니 잔디 이빨이었다. 이갈이 시기에 이빨이 간지러워서 인형이나 장난감을 잘근잘근 씹는데 아마 그러다가 빠졌나 보다.


운이 좋게도 잔디 이빨을 발견했고 소독을 해서 보관했다. 하나하나 다 귀여운 잔디. 손재주라곤 없는 내가 네 덕분에 별 아이템을 다 만들어 본다.

잔디의 이갈이가 끝날 때쯤 중성화 수술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여러 질병을 예방할 목적으로 중성화 수술을 권하는 추세지만 전신마취를 감당해야 할 적확한 이유가 필요했다.

중성화 수술을 결심한 가장 큰 이유는 잔디가 새끼를 낳았을 때, 물론 너무나 귀엽겠지만, 내가 감당하기에 버거울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다. 평생 세 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이 한 마리 강아지에게도 먹이고 씻기고 데리고 다니는 것 하나하나 신경 쓰느라 시간과 에너지가 많이 드는데, 둘 이상을 키운다는 것은 나의 체력과 노력이 두 배가 아닌 그 이상이 들 것이고, 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제대로 수행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잔디를 중성화시키기로 결정했다.

지인들에게 여러 후기를 전해 들으며, 수술한 날은 축 처져 있어 너무 불쌍해 보이니 꼭 보양식을 챙겨 먹이라는 말에 무염 황탯국 레시피도 전수받았다.


수술 당일이 되었고, 수의사 선생님께서는 걱정하지 말고, 수술 후 회복까지 두 시간 정도 후에 다시 오면 된다고 하셨다.

병원 근처 카페에서 마음을 졸이며 다른 사람들의 후기만 검색하면서 두 시간이 지나가길 기다리다가 마지막 남은 10분은 못 참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잔디 데리러 왔어요."

"보호자분 오셨네요. 잔디 수술 잘 됐어요. 잔디요!"


원장님께서 잔디를 호명하자 입원실에서 웬 강아지가 폴짝폴짝 뛰어나오더니, 성인 허벅지 높이의 울타리 문을 간호사 선생님께서 열어주기도 전에 점프로 넘어서 달려왔다.

잔디였다.


"하하하. 나 또 이런 애는 처음 보네. 수술 안 한 것 같아. 이 친구 저 친구 인사하느라 힘이 넘쳐. 수술 잘 됐으니까 오늘은 산책하지 말고 쉬어요. 약 잘 먹이고."


정말 웃기는 잔디였다. 누가 잔디 아니랄까 봐 수술 한 날도 방정방정 깨방정. 그래도 황탯국은 해줄게!


잔디, 고생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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