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디와 매일 산책을 하면서 하루에 만 보 정도는 기본으로 걸었다. 이러다 '살 빠지는 거 아니야?' 라며 살짝 기대했지만, 응~ 아니야~
여름엔 해가 뜨거워서 아스팔트 바닥에 닿으면 잔디 발패드가 탈 것 같아 새벽과 밤 시간을 이용해 산책했다. 겨울엔 아무리 털복숭이 강아지라도 추우니 해가 떠있는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서 산책을 나갔다.
어떤 계절이든 어찌어찌 산책을 하겠는데, 비 오는 날은 정말 난감했다. 우비를 사서 입히면 우비가 불편한지 잔디가 걷질 않고, 우산을 같이 쓰고 나가면 이건 사실 둘 다 비에 젖자는 말이나 똑같아서 자칫하면 잔디가 감기에 걸리기 십상이었다.
잔디가 지루해하는 비 오는 날이 싫어졌다. 비 오는 날 덕에 잔디의 노즈워크 실력만 나날이 늘어갔다.
5분도 안 되는 시간에 숨겨둔 간식을 다 찾아버려서 새로운 장난감에 숨겨주는 것도, 휴지심에 간식을 숨겨주는 것도, 팔이 빠질 것만 같은 터그 놀이도 한계가 있었다. 비야, 하루 종일 오지 말고 중간에 잠깐 멈춰서 우리 나갈 틈 좀 줘라! 우리 눈치싸움 그만하자!
잔디의 산책을 위한 리드줄과 하네스도 정착하는데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멋모르고 오프라인에서 14000원 주고 산 기본 하네스는 온라인에서 7000원에 판매하고 있었다.
기본 하네스는 잔디의 사춘기(개춘기) 전까진 잘 썼으나 잔디가 성견이 되면서 힘도 세지고 덩치도 커지면서 다른 하네스가 필요해졌다. 그리고 기본 하네스는 발부터 입히는 것인데, 겨드랑이 쪽에 줄이 닿아 발진을 일으키곤 해서 더욱 다른 하네스와 리드줄이 필요했다.
두 번째 리드줄은 손잡이로도 사용할 수 있고 늘려서 어깨나 허리에 매서 잔디와 내 몸을 연결시킬 수 있었다. 손이 자유롭다는 장점이 있고, 잔디랑 조깅하고 싶을 때 유용했다. 하지만 잔디랑 가는 방향이 꼬이면 리드줄을 푸는 것이 손잡이만 있는 하네스보다는 훨씬 불편했다. 얇은 천 재질로 되어 있어 리드줄이 묶이기 쉽고 매듭이 생기면 풀기도 어려웠다.
다음은 다시 손으로 잡는 리드줄은 선택했고, 얇은 천이 아닌 인조가죽으로 된 것을 주문했다. 가죽이기 때문에 이전 리드줄처럼 매듭이 생길 위험성도 없었다. 그렇게 리드줄 정착을 하나 싶었지만,
잔디가 한 번 뛰자 끊어지고 말았다. 산책길 옆이 도로여서 잔디가 차도로 뛰쳐나갈까 봐 심장이 철렁했다. 잔디도 리드줄이 끊어지자 평소와 다르게 몸이 가볍다고 느꼈는지 그 자리에 멈춰서 사고는 발생하지 않았지만 정말 아찔한 순간이었다.
마지막이길 바라는 리드줄로 다시 한번 교체했다. 두꺼워서 매듭지지 않으면서 천으로 되어있어 끊어질 위험성이 적은 것으로 마련했다. 이번엔 정말 닳고 닳을 때까지 쓰고 싶다.
잔디랑 산책을 하면서 강아지들도 생김새가 모두 다르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강아지를 키우지 않았을 땐 몰티즈가 지나가면 모두 하얀 솜뭉치에 까만 콩 세 개로만 보였었다. 강아지를 키워보니 같은 종의 강아지라도 눈이 처져 있는 정도, 코(muzzle)가 튀어나온 정도, 털의 곱슬 정도가 모두 달랐다. 신기하고 귀여운 생명체들.
우리는 그렇게 오늘도 동네를 구석구석 탐험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