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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무너진 날

by 말랭자매

여느 때와 같은 날이었다. 아침, 점심 산책을 마치고 저녁 산책을 하는데 잔디의 변이 심상치 않았다. 일반 설사를 넘어서서 압력이 높은 호스에 물이 나오는 부분을 손으로 눌러서 물이 참지 못하고 새어 나오는 것처럼 폭발적인 물설사였다. 잔디는 밤새 물설사에 시달렸고, 아침이 되자마자 잔디를 데리고 병원에 달려갔다. 여러 검사를 했지만, 기생충 때문일 것이라는 소견을 들었다.

약을 먹여도 스프링클러 같은 이 설사는 멈출 줄을 몰랐다. 잔디는 집에서 설사를 해결하기 싫은지 집에서 안절부절못했고, 계속 현관 앞을 왔다 갔다 했다. 내가 잔디의 그런 사인을 눈치채서 하네스를 채우고 현관을 나서면, 잔디는 전력으로 뛰었다. 그 간격은 점점 짧아졌고, 잔디는 잔디가 원하는 장소에 가지 못하고 길에서 실수하기도 했다.

점점 잔디가 지쳐가는 것이 보였고, 난 그런 잔디를 안고 우는 날이 많아졌다.


2주 동안 약을 먹었지만 전혀 나아지질 않았다. 병원을 옮겼고, 혈액 검사를 받았다. 결과를 말해주러 오는 원장님의 표정이 안 좋아 보였다. 'IBD'로 추정되고, 예후가 좋은 병은 아니니 큰 병원에서 장 생검을 해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했다.


병원을 나오자 멍해졌다. IBD라고? 그게 뭔데? 그게 뭔데 예후가 안 좋은데? 예후가 안 좋다는 건 뭔데?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 어떤 것에도 답을 할 수 없었고, 무력했다. 무력하다고 느껴지자 눈물이 흘렀고, 그 자리에서 한참을 울었다.

일단 정보를 수집했다. 하지만 검색을 해도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없는 병이었다. 아픈 강아지의 보호자들이 모여있는 커뮤니티에도 가입해서 검색해 봤지만 치료 후기가 거의 없었다. 그 말은 이 병이 희귀하다는 뜻이었다. 사람에서도 희귀한 병인데, 강아지에서는 더욱 희귀하고, 확실한 치료법도 없어 보였다. PUBMED에서 논문 검색을 했고, 전적대를 다닐 때 심각한 질병이라고 배웠던 크론병도 IBD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다. 막막했다.

Inflammatory Bowel Disease. 염증성 장 질환. 평범한 단어들로 조합된 이 질병이 이렇게 무서운 것인지 몰랐다. 대학 동물병원에 가기 전에 일단 스테로이드로 치료하며 저알러지 사료 등으로 식이 조절을 하기로 했다. 이 기간 동안 간식도 금지였다. 내가 잔디 주려고 간식을 얼마나 많이 사놨었는데. 잔디에게 주지 못하는 잔디의 사료와 간식은 모두 보호소에 보냈다.

보호소로 보낸 잔디 사료와 간식들


스테로이드 치료를 받으며 잔디는 6.6kg이 되었다. 잔디야, 비행기 기내에 같이 안타도 되는데. 비행기 같은 거 안타도 되니까 그냥 네가 건강했으면 좋겠어. 네가 이렇게 꼬리 내리고 있는 모습 처음 봐. 항상 네가 꼬리를 올리고 있어서 강아지들은 원래 다 그런 줄 알았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 보니까 말도 못 하는 네가 얼마나 아플지 상상도 안가. 내가 꼭 방법을 찾아볼게. 꼭.

6.6kg 잔디



오늘은 눈이 너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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